마리아와 빅토르, 체르노빌의 자발적 정착민

Chausov Viktor 할아버지는 올해 83세이다. 체르노빌 사고 후 강제이주했다. 할머니 Sapura Maria(81세)와 함께 고향인 체르노빌 Kupovate village에 자발적으로 재정착하셨다. 사고 전에는 체르노빌에서 건설가로 일했다
 
이념은 사고와 영토를 가르지만, 사건은 그 경계를 넘어선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사고 이후 이곳 체르노빌 제한구역에는 보이지 않는 망령들이 떠다닌다. 떠다니며 그 땅을 지배한다. 하나는 폐허의 공간을 휘감고 있는 방사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공간을 고향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남겨두고 간 마음, 돌아오리라는 믿음, 버려져 망령이 된 슬픔이다.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의자, 아무렇게나 열려있는 창문, 군데군데 벗겨져 마치 생선의 비늘을 연상케 하는 빛 바랜 벽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위로 두껍게 쌓인 먼지들, 그 풍경 사이로 체르노빌의 망령들은 숨죽인 채 떠다닌다.
 
Chernobyl Samosely_Shavkuta Maria
 
34년 전, 체르노빌 원주민들은 모두 강제로 소개당했다. 당국이 내린 그들의 귀향 금지령은 그들의 삶이 타지에서 끝난 뒤, 더 오래 뒤에도 철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 둘 그들은 금지된 땅으로 되돌아온다. 
 
‘사모셜르(самосели)!’ 체르노빌핵발전소 폭발 반경 30킬로미터 내부의 가장 심각한 오염지역, 강제 소개됐던 그 땅으로 되돌아온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말로 사모셜르는 ‘자발적 정착민’을 뜻하지만, 그들은 당국의 소개령과 진입 금지령을 어긴 불법 정착민들이다. 
 
Rayenok Tetyana 할머니는 올해 80세로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 강제 이주했다가 Teremtsi village 언덕 위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오셨다. 사고 전에는 협동농장에서 우유짜는 여자로 일했다. Tetyana 할머니 집을 처음 방문 했을 때 할머니는 닭과 고양이, 개 등의 동물과 함께 겨울을 나고 계셨다
 
마리아와 빅토르(Maria and Victor)는 50명에서 150명 사이로 추정되는 사모셜르 중의 하나다. “며칠이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폭발 후 강제 소개될 때 그들이 들은 당국의 약속은 영원히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평균연령 80대, 통계조차 없는 사모셜르, 삶에 미련이 없는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간절한 미련, 그것은 귀향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귀향한 안식처에서 영원한 안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체르노빌에 살고 있다. 
 
글 사진 / 정성태 포토그래퍼, 다큐멘터리스트
 
정성태 작가는 두 개의 장기 포토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체르노빌핵발전소 폭발이 불러온 주민 강제 소개의 역사가 그 하나이고 해방전후 공간 속에서 우크라이나로 강제 이주된 한인 후예들인 까레이스키의 삶의 기록이 다른 하나다.
 
* 더 많은 사진은 월간 함께사는길 3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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