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 낀 공권력 시민을 겨누다

Friends of the Earth 36
 
스탠포드 대학에서 진행된, 길거리에 장시간 방치된 희생자를 빗댄 ‘다이 인’ 퍼포먼스 ⓒPaul George
 
‘All men are created equal(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태어났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인종차별에 항의하고 경찰 공권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지난 12월 13일에는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앞을 포함하여 워싱턴, 뉴욕, 보스턴 등 미국 각지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지난여름 발생한 백인 경찰에 의한 두 비무장 흑인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사망 후에도 장시간 길거리에 방치됐던 희생자의 죽음을 빗대어 도로에 눕는 일명 ‘다이 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는가 하면, ‘I cannot breathe(숨을 쉴 수 없어요)’, ‘Hands up, don't shoot(손들었으니 쏘지 마세요)’ 등 희생자의 마지막 순간을 연상시키는 손팻말을 사용했다.
 
도마 위에 오른 사건 속 백인 경찰들은 최근 잇따라 불기소 처분됐다. 지난 11월 24일에는 흑인 청소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을 총살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Darren Wilson)의 불기소가, 지난 12월 3일에는 흑인 에릭 가너(Eric Garner)를 목 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관 대니얼 판탈레오(Daniel Pantaleo)의 불기소가 확정된 것이다. 이는 흑인 사회를 중심으로 미국 시민들의 뜨거운 공분을 일으켰다.
 
 

경찰 총탄에 죽은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숨진 퍼거슨(Ferguson) 지역 인근에서는 12개 상가건물이 불타는 등 방화와 폭력이 동반된 과격한 소요 사태가 빚어져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미주리 주 제이 닉슨 주지사는 11월 17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세인트루이스 시 일대의 치안유지를 위해 주 방위군을 세 배 동원했다. 소요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미주리 주는 지난 12월 17일 한 달 만에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동원했던 주 방위군을 원대복귀 시켰다.  
 
퍼거슨 사태의 발단은 지난 8월 9일 미국 중서부 미주리 주 퍼거슨 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편의점으로부터 50달러 상당의 물건 도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관 대런 윌슨은 인상착의가 비슷한 용의자 마이클 브라운(18)을 검문했다. 윌슨은 무슨 이유에선지 경찰차 안에서 브라운에게 두 발의 총을 쐈으나 브라운의 손가락을 스치거나 빗나갔다. 브라운은 도망쳤고 윌슨은 차에서 내려 브라운을 뒤쫓았다. 그런데 달아나던 브라운이 윌슨을 향해 돌아서서 다가왔고, 윌슨은 여러 발의 총탄을 난사했다. 이 중 여섯 발이 브라운의 머리와 팔 등에 맞아 치명상을 입혔고 브라운은 사망했다.   
 
경관 대런 윌슨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나 자신이 헐크 호건에 매달린 다섯 살짜리 아이같이 느껴졌다.”라며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키 195센티미터 몸무게 95킬로그램인 경관 윌슨이 비슷한 키에 체중이 130킬로그램이었던 브라운을 프로레슬링 선수 헐크 호건에 비유하며 총을 쏜 것은 공무집행 중 정당방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목격자 진술은 달랐다. 윌슨은 브라운이 자신을 먼저 때렸다고 주장했지만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에서 무고하게 사살됐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브라운이 저항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손을 머리 위로 올렸는데도 윌슨이 총을 발사했다는 것이다. 
 
“손들었으니 쏘지 마세요.” 목격자는 경관의 총탄에 죽은 마이클 브라운이 저항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Jamelle Bouie
 

법정마저 편파로 얼룩져

 
지난 11월 24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은 엇갈린 진술을 뒤로 한 채 윌슨에 대해 “윌슨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행동했다.”라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흑인이 대다수인 퍼거슨 시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배심원단 12명 중 9명이 백인이었다. 또한 통상 일주일이면 끝나는 대배심 심리 과정이 3개월 동안 25번이나 진행돼 이례적이었다.
 
또한, 담당 검사가 중립적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담당 검사 로버트 매컬러크는 배심원단에게 제공해야 하는 유죄 추정의 증거를 요약하지 않았으며, 방대한 자료를 아무 설명 없이 배심원단에게 넘겼다. 게다가 매컬러크 검사는 통상적으로 배심원단 앞에 세우지 않는 피의자를 앞세워 자신의 입장을 4시간 동안 설명하도록 했다. 희생자 유가족은 과거 흑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부친을 둔 매컬러크 검사의 교체를 요구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지난 7월 17일에는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의 톰킨스빌에서 백인 경관 대니얼 판탈레오가 흑인인 에릭 가너(43)를 허가 없이 담배를 판 혐의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 조르기’를 가해 숨지게 했다. 비무장 상태의 가너가 자신을 둘러싼 경찰들을 향해 수십 차례 ‘숨을 쉴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 판탈레오 경관은 계속 목을 졸랐고 가너는 결국 그대로 사망했다. 당시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며 과잉진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뉴욕시 대배심은 지난 12월 3일 대니얼 판탈레오에 대해서도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흑인에 대한 과잉 대응 사고는 계속 터졌는데, 지난 11월 22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는 장난감 총을 갖고 놀던 12세 흑인 소년 타미르 라이스(Tamir Rice)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경찰서 앞에서 정의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시민들 ⓒFibonacci Blue
 

정의와 평등은 어디에

 
퍼거슨 사태는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과 결정적 사법체계마저 백인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현실에 대한 흑인사회의 ‘이유 있는’ 분노에서 비롯됐다. 세인트루이스 교외에 있는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도시, 퍼거슨. 전체 인구의 약 70퍼센트가 흑인이지만 흑인 경찰과 흑인 시의원은 극소수이며 퍼거슨의 빈곤층 비율과 실업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망에 이르게 한 대런 윌슨 경관은 사직했지만, 흑인 인권운동가 앨 샤프턴 목사는 “윌슨의 일자리가 아니라 마이클 브라운에 대한 정의가 우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대런 윌슨은 11월 25일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양심에 부끄럽지 않으며 어떻게든 일어났을 일이다”라며 규정 준수를 강조했다. 이에 마이클 브라운의 어머니 레슬리 맥스패든은 하루 뒤인 26일 CBS 방송에 출연해 “설사 그것이 사고였다 하더라도 누군가를 죽인 다음 어떻게 그것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고 응수했다. 
 
퍼거슨 연대 시위는 미국 밖으로 확대되고 있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근원적 빈부격차, 공권력의 과잉진압, 무너진 법 형평성의 기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번 퍼거슨 사태에서 일부 시위에 수반된 폭력만 눈여겨봐서는 안 될 일이다.

김현지 환경운동연합 회원 arqu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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