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9] 미얀마의 밀림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미얀마의 밀림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장주경/자유기고가


매년 전세계 환경운동가를 대상으로 환경상을 수여해 온 미국의 골드만 재단(www.
goldmanprize.org)은 지난 6월 올해의 아시아 지역 수상자로 미얀마의 카사와(Ka Hsaw
Wa)를 지명했다. 국제적인 환경상을 받기엔 비교적 젊은 나이라고 짐작되는 스물 여덟 살,
그는 이미 10년 가까이 환경운동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에게는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나라로, 영화 [비욘드 랭군]의
나라로만 어렴풋이 알려져 있는 나라, 미얀마. 아직도 아웅산 수지의 가택 연금이 풀리지 않
았다거나, 그래서 그녀가 남편의 장례식에도 가보지 못했으며, 미얀마 정부가 어처구니없게
도 반정부 시위자의 세 살 짜리 딸을 체포했고, 우리나라 산림청과 임업협정을 체결했다는
이야기 등이 간혹 신문의 이곳저곳을 단편적으로 장식할 뿐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지 못하
는 나라이다.
대체 그런 후진 군사정권국에도 ‘환경’과 같은 선진적(?)인 이슈가 제기될 틈이 있는가라
는 우문이 우리들에게는 도리어 자연스럽기조차 하다. 미얀마와 같은 나라에서는 야생동물
보호라든가 수질오염 개선과 같은 문제보다도 인권보호가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아닐
까. 하지만 사정은 그와 같지 않다. 미얀마에서 환경과 인권은 서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문
제가 아니라 그 두 가지가 너무나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나
라이다.
열 여덟의 나이로 1988년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참석했던 카사와는 경찰에 잡혀 삼
일간 감금을 당한 채 고문을 받았다.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던 비폭력 민주화 시위는 사
웅 마우의 친위 쿠데타로 무산되었고 반정부 시위 주동자 색출이 시작되었다. 카사와 또한
본국에 남아 있지 못하고 몇 달간에 걸친 망명 여행을 떠났다. 그는 우선 태국 국경 부근의
밀림지대로 도망을 쳤다. 그 자신 오랫동안 반정부 독립 투쟁을 해왔던 미얀마의 소수민족
카렌족 출신으로서 그는 당시의 밀림지대의 원주민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된다. 마
침내 망명에 성공한 그는 태국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환경 단체인 EarthRights
International(이하 ERI) 창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그후로 줄곧 그는 미얀마의 환
경과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태국 국경 부근의 밀림지대에서 목도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음을 불
사하고 미얀마의 환경과 인권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만들었던 것일까. 아니 미얀마에서는
왜 환경운동이 목숨을 걸어놓고 해야 하는 일인가. 우리는 이런 의문들을 답하기 위해 미얀
마의 정글 속으로, 산맥과 강을 따라 열대 우림 깊숙이 들어가 보아야 한다.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자. 숲에서 연기가 일고 있다. 화전을 위해 숲을 태우는 연기인가. 아
니면 마을 잔치가 벌어져 돼지라도 잡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의 실수로 화재가
일어난 것일까.
당신은 길을 가다 말고 제자리에 우뚝 선다. 당신은 그 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연기가 일고 있는 곳은 당신의 마을이
다. 당신은 걸음을 재촉한다. 마을에 당도하기 전 당신의 이웃이 화급히 당신 쪽으로 뛰어오
는 것이 보인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파랗게 질려있다. “빨리 도망가.” 그가 당신에게 말
한다. 당신은 그 말의 뜻을 알면서도 마을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마을의 당신
집에는 노모와 아내, 그리고 어린 당신의 아이들이 있다. 이웃이 당신의 팔을 잡아당긴다.
“이미 모두들 떠났어.” 그때 몇 발의 총성이 들려온다. 마을은 이미 군대의 손에 넘어갔
다. 당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을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또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라. 당신은 일터에서 무사히 마을까지 들어왔다. 당신의 집으로 들
어가려는 찰라 대문간에서 군인을 만난다. 군인들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으로부
터 한 시간 내에 가족과 가재도구를 챙겨 이 마을을 떠난다, 모두 불에 타 죽기 싫으면.”
마을을 떠나라는 말만 있지 어디로 가라는 말은 없다. 한 시간 내에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당신은 살해될 것이다. 마을을 떠나야하는 시간은 보통 한 시간에서 삼 주까지 주어진다. 허
겁지겁 마을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당신은 당신의 집과 마을, 숲이 타오르는 연기를 볼 수
있다.
이런 일은 결코 가상 상황이 아니다. 오래 전 일도 아니다. 지금도 미얀마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다. 원주민들의 마을과 숲은 군대의 점령과 더불어 황폐해지기 시작한다. 군대
가 점령한 마을을 원주민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그들은 밀림을 떠도는 부랑민이 되거
나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기도 한다.
군대 점령에 의한 강제이주는 대개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
리고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에 걸린다. 비를 가릴 지붕도 없이 맨땅에서 잠을 자고 때로는
다른 마을의 식량을 약탈하기도 한다. 죽거나 병드는 것은 물론 여자들의 경우는 상시적으
로 강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몇 주 혹은 몇 달을 그렇게 버텨 마침내 국경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들을 국제법상의 난민으로 수용하기 꺼려하는 이웃
국가들의 냉랭한 대접뿐이다.
불에 타버린 지역은 ‘검은 지역’이라는 딱지가 붙고 군인 외에는 아무도 출입할 수 없다.
그곳은 군인들이 함부로 총을 쏠 수 있는 곳이라서 간혹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원주민들이
있으면 곧장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원주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살던 마을로 되
돌아오려는 이유는 그곳에 미처 들고 나오지 못한 식량을 조금이라도 구해보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박한 꿈은 여지없이 깨어진다. 남은 쌀(물론 이미 먹을 수 없을 만큼 부패
했거나 오염됨)을 구하려다 발각된 주민들은 체포된 현장에서 살해될 수 있다. 군대에 의한
강제이주는 이처럼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인권유린과 더불어 진행된다.
대체 숲속에 왜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있는 것일까. 임박한 전쟁 때문에 마을을 급히 이주
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규모 군사훈련이라도 있는 것일까. 대답은 모두 아니오, 이
다.
물론, 군인들이 숲을 불지르고 마을을 점령하는 데는 ‘폭동세력’들의 식량, 재정, 인원양
성의 근거를 없앤다는 명목도 있다. 1962년 네윈 정권이 들어선 이래 삼십 년 이상 지속되
어온 군사 독재정권에 대항해 싸우던 수백만의 ‘폭도’들이 1988년에 일어난 무력 진압을
피해 미얀마의 국경을 띠처럼 두른 열대 우림의 숲으로 숨어든 것이다.
하지만 숲을 불지르고 그곳에 군대가 주둔해야만 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미얀마에
서 군대는 ‘개발’의 첨병이다. 모든 독재 정권에 있어서 군대는 늘 국민의 지지 없는 권
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미얀마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미얀마에서 군대는 그 이
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군대가 아니라면 미얀마에서는 국가 규모의 개발 사업 자체가 불가
능하다. 군인들은 자국민들에게 총을 겨누어 그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강제 노동에 투입함으
로써 국가에 봉사한다. 개발 대상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을 내쫓거나 그들을 개발 사업에
강제로 투여하기 위해서 숲속에 그렇게 많은 군인이 필요한 것이다.
숲이 파괴되고 숲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유린을 당하는 것도 실은 군사정권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광범위한 ‘개발’ 때문이다. 무장 군인을 동원해서 미얀마 정부가 추진하고
자 하는 ‘개발’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 대표적인 경우로 야다나(Yadana) 가스 파이프
라인 건설 계획을 살펴보자.
1992년 미국의 유노콜(Unocal)사와 프랑스의 토탈(Total)사는 미얀마 정부(SLORC, 국가법
질서위원회. 현재는 SPDC, 국가평화발전위원회)와 야다나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협약에 조
인했다. 이 계획은 테나세림 밀림 지대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으로 단
일 사업 최대 규모의 외국 기업 합작 투자사업이다. 미얀마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 한다
는 요구를 무시한 채 두 다국적 기업은 미얀마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SLORC는 파이프라
인 건설의 안전 보장을 약속했고 이를 위해 협약이 조인되기 전부터 건설 예정지에 군대를
투입했다.
군대는 파이프라인이 지날 루트를 整地하거나 도로를 닦고 헬기장을 건설하기 위해 체계적
인 인권유린과 환경파괴를 자행했다. 원주민 거주지와 밀림을 불지르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
시켰을 뿐 아니라 공사 현장에 원주민들을 끌어들여 강제노동을 시켰다. 파이프라인 건설
예정지를 순찰하는 군인들을 위해 무기와 식량을 나르는 일도 원주민들의 몫이다. 야다나
계획이 수립된 이후로 밀림 지대의 살인과 강도, 강간과 같은 문제들이 더욱 심각해졌다.
SLORC의 군대가 밀림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남는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파이프라인이 지
나갈 태국 국경 부근의 테나세림 산맥 지대는 동남아시아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열대 우림
중 하나이다. 군대의 주둔으로 이 지역에서의 불법적인 사냥, 벌채, 야생 동물 무역 등이 급
증했다. 야생 코끼리와 호랑이, 리노, 코뿔새 등과 같은 세계적인 희귀 동물의 서식지였던
밀림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이 지역은 또한 몽족, 카렌족, 타보이얀족과 같은 수많은 소
수민족들의 고향이다. 이 소수민족들은 군대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 유린으로부터 뿐만 아니
라 자연의 파괴에 의해서도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나라에서 공공근로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것을 환영할 것이다.
공공 근로 사업은 실업 해소의 효과를 가져와 가계 안정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미얀마에
서는 그러나 사정이 다르다. 미얀마 국민들은 정부의 공공근로 사업 계획이 발표되면 불안
과 공포에 떤다. 사업 계획 발표는 곧 강제노동 선고와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간 군대는 마을 촌장에게 한 가족 당 한 명씩의 일꾼을 노동 현장에 보내야 한
다고 통보한다. 마땅히 자원봉사를 해야 했던 불교도의 제도에 명목상 근거를 둔 행위이다.
만일 일주일 노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운송료’라고 불리는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대부분
의 사람들은 세금을 낼 돈이 없어 현장에 나간다. 평생 일주일 정도라면 강제노동도 할만
하겠지만 자주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군대가 들어와 일꾼을 모아가는 마을도 있다. 가족 중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뿐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일을 하기에 너무 어린 아
이이거 임신 중인 여자, 혹은 노인이라고 해도 피할 수 없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
전인 자연환경을 강제된 노동에 의해 스스로 파괴하게 된다.
일단 현장에 나간 사람들에게는 물조차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하루 14시간의 중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1990년부터 시작된 예타보이(Ye-Tavoy) 철로 건설의 예에서도 그것
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철로는 중장비를 동원해서 건설되지만 미얀마에서는 그
렇지가 않다. 농부들을 이용해서 손쉽게 건설을 할 수 있는데 군부가 왜 비싼 중장비를 수
입하거나 개발하려고 하겠는가. 아무런 장비가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건설 현장에 나간 농
부들은 자신들의 농기구를 가지고 노동을 한다. 철로 보수 공사는 물론 철로를 위한 정지작
업, 바위를 깨고 덤불을 제거하는 고된 일을 단지 괭이와 삽으로 해내야 한다. 대낮의 어마
어마한 열기를 견디며 그들은 휴식도 없이 일을 한다. 일을 더디게 하거나 걸음을 천천히
걸으면 구타를 당하기 쉽다. 밤에는 남녀가 따로 분리되어 야영을 한다. 이는 매우 합리적으
로 보이지만 기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야간에 군인들이 부녀자를 강간하기 위해서라는 보고
가 있다. 야다나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예정지에서도 동일한 강제노동이 벌어지고 있다.
밀림의 무분별한 벌채, 야생동물의 사냥, 오염과 같은 환경파괴 문제는 군대에 의한 강제이
주, 강제노동,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은 심각한 인권문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련성을 가지
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얀마에서 환경운동을 하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미얀마의 밀림 깊숙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은 순전
히 카사와와 같은 인권 환경 운동가들의 덕택이다. 1990년대 초부터 카사와는 미얀마 내 환
경과 인권의 희생자들을 인터뷰하여 이 정보를 국제 기구에 전달했다.
미얀마 군사 정권은 전국적인 파이프라인 건설과 관련된 가스 채굴권뿐 아니라 광범위한 벌
채권과 어획권, 보석 채굴권 등을 외국에 팔아 넘겼다. 그 와중에 군부는 자국민에 대한 심
각한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카사와는 목숨을 걸고 군무장 지역을 여행하며 군대에 의한 감
금과 고문, 강간, 협박 등의 사례를 취재해 외부 세계에 알려왔다.
1995년에 그는 ERI의 창립 멤버로 활약했다. ERI는 인권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법과 국
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을 목표로 세워진 비정부기구(NGO)이다. 본부는 미얀마에 가까운
태국 국경 지대에 있고 방콕과 워싱턴, 시애틀 등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ERI의
주요 사업은 에너지 프로젝트(오일와치, 국제재정지원사업, 야다나 가스파이프라인 건설 반
대 사업)를 비롯해 버마프로젝트, ERI 학교운영, 여성 권리 프로젝트 등 매우 광범위하다.
(이 환경단체가 하는 일과 마얀마의 환경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ERI의 홈페이지를 찾
아가면 쉽게 얻을 수 있다. www.earthrights.org)
카사와는 야다나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예정지에 대한 유일한 정보원이었다. 그 정보는 미
연방 법원에 제출된 수많은 보고서와 증거, 소송의 기초가 되었다. 그 소송은 미정부가 자국
기업의 외국에서의 인권유린을 최초로 인정한 소송이 되었다. ERI에서는 야다나 계획을 둘
러싼 인권과 환경 유린을 기록한 장문의 보고서 [총체적 거부]를 발간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카사와의 노력으로 야다나 가스 계획과 나란히 진행되는 태국 파워플랜트 건설에 수백만 달
러를 지원하려던 세계은행의 계획이 취하되었다. 카사와를 비롯한 환경운동가와 ERI와 같은
환경 단체의 반대 운동으로 당초 1998년 7월부터 건설되려 했던 야다나 파이프라인 건설 계
획은 시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공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카사와는 말한다. “우리의 숲과 나무, 야생동물과 강을 파괴함으로써 미얀마 군부 일당은
우리 자신까지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비록 그들은 돈과 총과 권력을 가지고 있지
만 우리는 인권과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진실과 정의를 가지고 있다”라고.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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