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 of the Earth 86]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공장식 축산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해외여행의 범주가 지금과 같이 다양하지 않았다. 요즘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여행 트랜드와 관련 상품이 언론과 SNS을 달군다. ‘미세먼지 탈출 여행’, ‘한 달 살기’, ‘퇴사 여행’ 등 다양해진 여행 유형만큼 실제 출국자 수 또한 증가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0년 1248만 명이었던 한국인 출국자 수는 2018년 2868만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1월에는 291만 명이 출국하며 월별 출국자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 총출국자 수는 인구의 58퍼센트인 3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출국자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바야흐로 우리는 여행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쉼을 주는 푸른 바다와 숲 그리고 맑은 하늘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언젠가는 돈으로도 이 모든 것을 살 수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경제 성장과 인간의 편의를 위해 달려온 지구는 생태계를 품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고 그 부작용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여행을 필수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추구하는 풍토가 만연함에도 정작 우리는 지구에 잠깐 머물다가 가는 여행자이자 손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 싼 값에 먹고, 입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동물이 평생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곳에 갇혀 일생을 보내야만 하고, 방글라데시의 여성 노동자들은 좁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패스트 패션 기업에 넘길 옷을 만들어야만 한다. 각종 폐기물은 국적을 불문하고 산과 바다에 차고 넘쳐 처리 불가능한 상태이다. 개인의 삶이 다른 이의 삶에 지독하게 영향을 끼치는 이 시대에 기후변화, 폐기물 등과 같은 전 인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삶을 바꾸는 방식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제도 개선을 위한 정치적인 차원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조금 불편하게 바꾸더라도 공공선에 기여하는 일상의 실천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공장식 축산   

 
『사피엔스』의 저자로도 유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지난 2015년 가디언지에 기고한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라는 글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기며 현재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한 영화감독이 그의 말을 빌려 강연에 나섰다가 축산업을 혐오하고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며 업계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결국 이 사태는 축산관련단체협의회와 해당 감독 및 동물복지단체 대표들과의 한 차례 면담을 통해서야 일단락되었다. 축단협 회장은 이 사태를 마무리하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축산업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수용할 수 있지만 축산업에 대한 혐오감이나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는 발언에 대해서는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미 지난 수년간 되풀이되는 구제역과 살충제 계란 파동 등을 겪으며 공장식 축산의 문제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수준이 단순히 ‘밀집된 공간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축산 방식’ 정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다시 유발 하라리의 글로 돌아가 보자. 그의 말에 따르면 수렵채집인이었던 인류가 한 지역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 농부로 탈바꿈하며 지구상에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출현시켰다. 바로 ‘가축(domesticated animals)’이다. 처음에 인간은 포유류와 조류를 포함해 20종이 채 되지 않는 가축을 길렀다. 물론 당시 야생에는 수만, 수천종의 다양한 동물이 조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이 사육하는 가축은 지구상 모든 대형동물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이렇듯 인간에 의해, 또 오로지 인간을 위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가축은 생존 경쟁에서 수적으로 “성공”했으나 생애 전 주기에 걸쳐 끔찍한 나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가축 중 하나인 닭의 운명은 크게 육계와 산란계에 따라 나뉜다. 육계는 한 달도 안 되는 시간동안 숨 막히게 좁은 곳에서 비정상적으로 몸집을 불린 다음 도살당한다. 닭의 평균 수명이 7~13년이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시장에 흔히 보는 식용 닭은 사실 ‘왕병아리’인 셈이다. 산란계 역시 A4용지 한 장만한 케이지에서 평생을 제대로 한 번 움직여보지도 못한 채 알만 낳다가 죽는다. 알을 낳는 과정은 엄청난 양의 칼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란계 닭들은 만성적인 뼈 질환에 시달리고 툭하면 날개와 다리가 부러진다. 이런 고강도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닭들은 서로를 쪼아 죽이는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농장주들은 이를 막기 위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부리를 잘라낸다. 산란계로 태어난 수평아리는 알을 낳지 못하고, 육계만큼 성장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산채로 그라인더에 갈려 동물성 사료가 된다. 닭의 운명은 그 용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참혹함에는 정도가 없다. 오히려 내게는 오래 살아야만 하는 닭의 삶이 더 비참해 보인다. 소와 돼지의 사육 환경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라는 말은 결코 특정 세력을 향한 혐오 발언이 아니다. 인간이 동물을 다룬 잔혹한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동물이 처한 끔찍한 사육환경에도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이야기가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게 전쟁인데 동물 얘기할 때냐고. 그러나 공장식 축산은 21세기 최대 위기로 손꼽히는 기후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난해 10월 인천 송도에서 채택한 특별보고서에서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려면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NRDC)가 발표한 ‘10가지 기후파괴 식품’ 중 동물성 식품(소고기, 양고기, 버터, 치즈, 돼지고기, 닭고기 등)이 무려 9개를 차지했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15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합친 것 보다 높은 수치이다. 가축이 트림과 배설물 등을 통해 내뿜는 메탄가스와 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각각 23배, 300배 더 강력한 온실효과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가축을 기르고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대규모 산림이 파괴된다. 그중에서도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브라질 아마존이 최전선에 있다. 파괴된 아마존 산림의 약 70퍼센트가 소를 기르는 목장(cattle ranching)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수자원 고갈은 또 다른 문제다. 토마토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데 214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그러나 같은 양의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15,5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토마토의 72배다. 참고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물을 많이 사용하는 한국의 1인당 일일 물 사용량은 287리터(2016년 기준)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가축분뇨는 5101만 톤으로 이는 60킬로그램 성인 약 8억 명의 체중을 합한 것보다도 많은 양이다. 축산농가수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지만 공장식 축산이 확대되면서 사육 동물 수와 그 분뇨 또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규모를 불리는 농장에 비해 처리시설 확충은 미흡한 실정이라 매년 민원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인근지역 주민들은 부적절하게 처리된 분뇨로 수자원 오염, 악취 등의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결국 공장식 축산의 과실을 맛보는 것도, 그 부작용을 감당해야하는 것도 인간이다. 
 

어차피와 최소한의 투쟁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3.9킬로그램에 달한다. 이 중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고기는 바로 돼지고기다. 돼지고기 소비는 1970년 1인당 2.6킬로그램에서 지난해 25.2킬로그램이 되었다.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국내 육류 소비량과 생산량은 앞으로도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 4월 환경연합을 찾은 『아무튼 비건』의 김한민 작가는 공장식 축산의 대안을 “어차피와 최소한의 투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고 처음부터 비관하기 보다는 “적어도 ~는 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지켜보자는 것이다. 
 
그는 유럽을 중심으로 공장식 축산에 저항하는 비건(Vegan)이 하나의 활발한 사회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선택으로만 간주되던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사회적인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비건이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매김해 하루에 한 끼는 채식으로 먹는 경우를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다른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제품을 구매하고, 정부와 기업에 더 높은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보자. 그리고 식탁에서 고기와 유제품을 점차 줄이는 것으로 이어가자. 위의 노력을 실천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 적어도 육식하지 않는 사람을 어딘가 하자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눈초리를 거두어 보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의 투쟁이 우리 주변을, 국가의 정책과 제도를, 그리고 지구 전체를 바꿀 수 있다. 
 
글 / 김혜린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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