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 of the Earth 90] 기업에 레드카펫 깔아주는 ISDS

일본의 경제 보복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우리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를 빌미로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우리나라를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는 등 경제 보복에 나섰다. 이에 우리 정부도 곧이어 일본을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하였으며, 자발적인 시민들의 모임을 중심으로 ‘안 사요, 안 가요, 안 팔아요’로 요약되는 일본 여행 중지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뜨겁게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14일에는 폭염에도 일본의 역사 왜곡과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수만 명의 시민이 광화문에 모였다. 
 

투자자와 국가 분쟁해결 어떻게?

 
쉐브런의 기름유출로 인해 에콰도르 아마존 열대 우림이 검게 오염됐다. 에콰도르대법원은 환경오염 정화 및 주민 피해를 보상하라고 했지만 쉐브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2009년 ISDS 청구를 시작했다 ⓒRainforest Action Network
 
그런데 재판의 당사자로서 패소한 일본 전범 기업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선 확실한 한 가지는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이들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 매각 절차를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이 가만히 앉아서 자신들의 자산이 매각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지, 이를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온전히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 전범 기업들의 반격 카드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가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자산 매각을 막기 위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할 수 있다.
 
ISDS란 무엇인가?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규제 혹은 정책 변경으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보았다고 판단할 경우(미래의 이익 포함) 국제 민간 중재 기구에 투자유치국을 회부해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이다. 이는 국가의 사법 주권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환경·노동·조세 등 다양한 공공 분야에서 국가의 정책 자율권을 침해한다. 외국인 투자자는 ISDS 제도를 이용해 막대한 액수의 배상금을 국가에 청구할 수 있으나 국가는 이 제도를 이용해 기업에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뿐더러, 중재 자체를 요청할 수도 없다. 설령 사건이 중단되거나 판결이 국가에 유리하게 난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법적 변호 및 중재인 선임 등에 엄청난 양의 공적자금을 지출해야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단 하나의 ISDS 사건에 들어가는 법률 비용과 중재 수수료만 평균 800만 달러(약 96억 원)에 이르며 이 중 절반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여러 다양한 분야의 공공정책 개선에 쓰일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세금이 ISDS 분쟁을 통해 돈을 버는 소수의 법조 엘리트들과 기업에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환경·사회 관련 공공분야 공격하는 ISDS

 
특히 에너지, 천연자원 등과 관련된 환경 분야는 ISDS의 메인 타겟이다. 이는 공익에 목적을 둔 정부의 환경 정책과 규제 권한이 훼손되고 국가 예산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스웨덴의 전력회사 바텐폴(Vattenfall)이 2009년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가 대표적인 예다. 바텐폴은 2007년 엘베강이 흐르는 함부르크시 근처에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잠정 허가를 받았다. 함부르크 환경 당국은 최종 건설 허가를 내리기 전에 발전소에서 방류되는 폐수가 엘베 강을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폐수에 대한 품질관리 조항을 추가하였다. 바텐폴은 이러한 조치가 사업을 좌초시켰다고 주장하며 ISDS를 이용해 총 19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독일 정부에 청구했다. 이 사건은 함부르크시가 바텐폴에 추가로 주문한 환경 요건을 철회하기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바텐폴이 지은 석탄화력발전소는 2014년부터 2월부터 가동되고 있다.
 
바텐폴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환경·사회적으로 파괴적인 개발 사업을 규제하거나 중단하려는 수많은 국가가 기업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ISDS를 당해 엄청난 양의 배상금을 물어주어야 하는 일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다국적 연구(Transnational Institute) 등 국제 시민단체는 ‘기업에 레드카펫 깔아주는 투자법원(Red Carpet Court)’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들은 2015년 이후 제기된 10건의 최근 ISDS 사례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거대 자본권력이 어떻게 공공영역을 공격하고 정의를 탈취하는지 적나라하게 조명했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 헌법재판소가 수백만 명의 콜롬비아 시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의 채굴 활동을 금지하자 캐나다 광산 회사인 에코오로(Eco Oro)는 7억 6400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콜롬비아 정부에 청구했다. 크로아티아는 두브로브니크 시(구시가 전역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름다운 지중해 도시)에 있는 고급 골프 리조트에 발급한 불법 허가를 취소했다는 이유로 5억 달러의 배상금을 청구 받았다. 루마니아는 캐나다 광산업체 가브리엘리소스(Gabriel Resources)가 제안한 로제아 몬태나 금광사업이 불법이라 선언한 이후, 57억 달러(한화 약 6조8천억 원) 달하는 충격적인 비용을 청구 받았다. 위의 사례는 보고서에 상세히 기술된 주목할 만한 10건의 ISDS 사례 중 3건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약 1000건의 ISDS 사건이 보고되었으며, 이 분쟁으로 인해 각국 정부는 총 623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청구 당했다. 이 수치는 2018년 모든 개발도상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흐름의 90퍼센트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ISDS 공개판결과 합의로 지급을 명령받거나 동의한 총금액은 880억 달러로 이는 호주, 일본, 유럽 및 북미 이외의 다른 선진국에 대한 모든 외국인직접투자와 맞먹는 규모다. 한국도 ISDS가 휘두르는 혈세 수탈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2012년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의해 처음 국제중재에 회부된 이래 지금까지 10건의 분쟁에 휘말렸으며, 총 117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 당했다. 그 증가세가 가히 폭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불과 2년 전인 2017년에는 한국을 대상으로 한 ISDS 중재 요청은 3건, 총 청구금액은 49억 달러(약 5조5천억 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 전범 기업의 ISDS까지 추가된다면 그 금액은 더욱 불어날 것이 자명하다. 
 

기업에 레드카펫 깔아주는 ISDS 폐기해야  

 
ISDS는 종종 우리 지역사회 혹은 국가의 현실과 단절된 복잡하고 동떨어진 국제법 체계로 간주된다. 사실은 그 반대다. ISDS는 우리 삶에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인권, 사회권, 환경권을 위협하고 민주주의의 주요 원칙을 훼손하면서 지역과 국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ISDS 사례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에 ISDS는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경우, 검토를 통해 ISDS가 포함된 여러 투자협정을 종료했을 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권리를 크게 제한하는 새로운 양자 간 투자협정(BIT) 모델을 개발했다. 유럽에서도 ISDS를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7월 이낙연 총리가 “ISDS는 소송비용이 과다하게 들고 결과 예측 가능성이 매우 낮은 문제가 있다. 강자의 횡포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이것이 폐기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화려하게 깔아놓은 레드 카펫을 걷어치워야 할 때이다.
 
 
글 / 김혜린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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