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숲길 그렇게 숲이 된다

 
가을 끝자락에 단풍을 보러 나섰다.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 2번 출구 앞에는 ‘경의선 숲길 ECO×PLAY’ 깃발을 든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경의선숲길을 함께 걸을 동행들이다.  환경교육센터 초록들 강사인 신원임 씨의 안내로 경의선숲길 걷기를 시작했다. 
 
경의선숲길은 2005년 서울역에서 수색역 구간의 경의선과 인천공항 및 김포공항 방향의 공항철도가 지하로 복선화되면서 지상에 남겨진 폐철도를 따라 조성된 공원이다. 2009년부터 공원 조성 사업이 시작돼 마포구 가좌역에서 용산구민센터까지 6.3km에 이르는 공원으로 탄생했다. 그중 가좌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이어진 연남동 구간은 뉴욕 센트럴파크에 빗대어 연남동 ‘연트럴파크’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경의선숲길은 여느 ‘숲길’과는 많이 다르다. 번화가를 관통하는데다 주변 주택과 상가의 경계도 모호하다. ‘숲길’이란 이름이 과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일행이 한 나무 앞에 멈췄다. 가지 끝마다 노랗게 물든 잎들이 7장씩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열매는 성게처럼 뾰족한 가시를 둘렀다. “마로니에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가시칠엽수예요. 뾰족한 가시껍질 안에는 밤처럼 생긴 알맹이가 나오는데 괜한 호기심에 열매를 맛보고 싶다는 생각은 접어두세요. 탄닌 같은 독성물질이 들어 있어 먹었다간 기관지가 부어 호흡이 곤란해질 수 있어요.” 원임 씨의 나무 이야기에 동행 모두 귀를 기울였다. 
 
좀 더 걷다 만난, 아카시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는 회화나무다. 지금이야 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만 해도 귀한 나무로 대접 받았단다. 회화나무를 집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인물이 나온다고 믿어 주로 서원이나 궁궐에 심거나 임금에게 하사받은 신하만이 심을 수 있는 귀한 나무였다고 원임 씨는 설명한다. 다시 새로운 나무를 만났다. 나무 아래 떨어진 하트 모양의 잎들을 주워 냄새를 맡았다. 달고나나 솜사탕에서 맡을 법한 달달한 냄새다. 계수나무다. 정작 꽃에서는 이런 향이 나질 않는단다. 그 옆에 붉게 물든 나무는 벚꽃나무다. 벚꽃나뭇잎도 벚꽃 못지않게 황홀하다. 단풍이라면 화살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키는 작아도 색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무성한 잎들에 가려졌던 화살촉 같은 줄기도 눈길을 잡는다. 대왕참나무도 붉게 물들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시상식에서 든 나무가 월계수가 아닌 대왕참나무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당시 베를린에는 월계수가 자라지 않아 대왕참나무 잎으로 월계관을 만들고 부상으로 대왕참나무 묘목을 수여했다고 한다. 
 
잎이 거의 떨어진 나무 위에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지은 둥지는 멧비둘기의 것이다. 그 건너편 나무에는 까치가 집을 지었다. 멧비둘기보란 듯이 튼튼하게도 지었다. “까치는 두 마리가 집을 지어요. 한 마리는 재료를 물어오고 다른 한 마리는 그 재료를 이용해 집을 짓는 거죠. 둥지 하나를 짓는 데 30센티미터 되는 나뭇가지가 1000개에서 2000개가 필요하다고 해요. 또 까치둥지를 짓는 나무 아래에는 한 차례 땔감이 될 정도로 나뭇가지가 쌓인다고 하니 참 신중하게 둥지 재료를 선택하는 거죠.”  
 
 
이 길을 찾는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나무와 풀들이 자리를 잡자 무당벌레, 나비를 비롯한 수많은 곤충, 참새와 박새, 직박구리를 비롯한 새들이 찾아왔다.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도 발견됐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경의선숲길에 조류 10종, 곤충 62종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대흥동 구간은 한강의 밤섬의 생태계와 이어져 있어 도심 속 대형 조류의 서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 번화가에도 경의선 숲길이라는 생태공간이 주어지자 다양한 생물들이 그 안에서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은 사람에게만 ‘힙’한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환경교육센터는 2018년부터 경의선숲길이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닌 다양한 생명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생태공간이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경의선 숲길의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 곤충과 같은 소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육생 비오톱을 조성하는 한편 경의선 숲길 각 구간의 역사, 문화와 생태에 대한 해설과 경의선 숲길에 서식하는 생물종 모니터링, 생태 전래놀이, 경의선 숲길의 아름다움과 생태를 느낄 수 있는 경의선 숲길 전 구간 종주 모임 등이 그것이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처음 생각은 잊은 지 오래다. 나무마다 빚어낸 다양한 단풍으로 하늘과 땅이 온통 가을이다. “10년 후가 더 기대되는 숲” 경의선 숲길을 시작부터 봐온 신원임 씨의 말에 덩달아 설렌다. 숲길은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다. 더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경의선숲길도 그렇다. 그렇게 경의선숲길은  숲이 되고 있다.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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