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어떻게 우리를 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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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피해 사망자 127명의 사망 일지를 표시한 영정 달력 플래카드

 

지난 2006년, 한 남자아이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 어머니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을 때 보여주기 위해 병상을 지키며 일지를 남겼다. 하지만 아이는 입원한 지 40여 일 후 세상을 떠났다. 생후 22개월의 짧은 생애였다.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었다.

아이가 죽기 전, 어머니는 나무 한 그루를 종이 가득 그려 넣고 ‘이 나무처럼 푸르르렴……아들!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적어 남겼다. 보여주지 못한 그림은 지난 8월 31일에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추모제 자료집의 표지가 됐다. 어머니가 아이를 보낸 뒤 쓴 마지막 병상일지는 장하나 국회의원이 추모사 대신 낭독했다. 행사장의 모든 사람이 흐느껴 울었다.

 

127송이 국화 그리고 8월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는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 열린 행사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자매를 잃은, 혹은 자신도 피해자인 아이들이 따라와 유독 아이들이 많은 행사였다. 

행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망자의 합동 추모식과 함께 피해자 모임을 공식화해 피해 구제 대책 마련과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행사장엔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자 중 사망자 127명의 사망 일자를 표시한 영정 달력 플래카드가 걸렸다. 추모제엔 참가자들이 127송이의 국화를 헌화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작은딸을 잃고 본인과 큰딸도 폐이식 수술을 받은 중증 피해자 백현정 씨는 큰딸의 손을 잡고 꽃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저기, 동생 있네.” 백 씨가 영정 달력의 날짜를 가리켰다.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 선언문’을 낭독했다. 어머니를 잃은 딸, 어린 동생을 잃은 소녀, 아내를 잃은 남편, 휠체어를 탄 피해자가 돌아가며 읽다가 울먹이곤 했다. 정부와 기업의 공식 사과, 책임 규명, 구제법 제정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구제와 지원을 위한 상설 기구의 설치를 요구했다.

8월 31일은 피해자들에게 의미 있는 날이다. 2년 전 이날 질병관리본부는 당시 영유아와 산모들의 원인 미상 폐질환과 사망에 대한 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가습기살균제 사용집단에 피해자들과 같은 폐손상이 발견된 것이다. 정부는 성분 PHMG와 PGH의 흡입독성을 확인한 뒤 제품 수거를 명령했다.

 

여전히 고통스런 피해자들

가습기살균제 속 독성 물질은 수증기와 함께 작은 입자 상태로 분무돼 피해를 초래했다. 가습기는 겨울철에 환기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영유아, 노약자, 주부들의 피해가 컸다. 피해사례 중 영아가 사망한 사례는 무려 44퍼센트를 차지한다. 가족 피해자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한 가구에 사망자나 중증 피해자가 있을 경우 가족도 피해를 당한 경우가 많다. 

폐질환은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치료비 부담도 크다. 장동만 씨는 딸이 사망하고 아내도 폐손상 피해로 중환자실에 있는 가족 피해자다. “아내의 한 달 약값만 200만 원이 나갔고, 110만 원 하는 약으로 바꿨더니 신장이 다 망가졌다.”라며 “받는 혜택이라곤 고속도로 통행료 50퍼센트 할인뿐이고 매번 장애인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창문을 내려 보여줄 때마다 수치스럽다.”라고 한다. 생후 14개월부터 10년을 투병해온 임성준 군의 어머니 권미애 씨는 아들의 치료에 든 비용만 1억 원이 넘을 것이라 말한다. 집에 먼지만 있어도 이사를 감행한 것이 수차례다.

피해자들은 가족 단위 피해, 금전적 부담, 심리적 외상으로 가정이 와해되는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청소년 아들이 어머니 사망 후 방황하거나, 중증 피해자인 어머니에게 감기라도 옮을까 유치원도 못 다닌 어린 자녀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임산부인 아내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나자 결국 남편은 아이를 자신의 형에게 입양 보내 먼발치에서 아빠 아닌 삼촌으로 바라보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아픔은 ‘나 때문이다’는 자책이다. 피해자이면서도 그 제품을 자신이 썼다는 이유로 자신을 가해자처럼 여기는 것이다. 생후 24개월 된 딸을 잃은 백승목 씨는 “감기인 줄 알았는데 병원에 입원한 지 40시간 만에 기도삽관하고 중환자실 가기 싫다고 울던 딸이 2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라고 증언했다. “좋은 것인 줄로만 알고 자다가도 일어나 열심히 가습기살균제를 넣었는데 그게 내 손으로 내 자식 코를 틀어막은 짓이었다.”라며 그는 울먹였다. 병상일지의 주인공 어머니도 “정말 가슴 아픈 건 미련하게도 좋은 것인 줄 알고 그것을 아이 얼굴에 가까이 대고 쐬게 했다.”라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녀의 자책에 피해자들은 절절하게 공감해 울지 않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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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을 낭독중인 피해자들. 구제 대책 마련과 책임 규명을 위해 피해자들이 직접 나섰다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피해자와 가족들은 2011년 정부 발표 이후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동시에 지원과 보상을 호소했다. 1인 시위, 기업 항의 방문, 국회 청원, 대통령에게 편지로 호소, 손해배상소송 등으로 나섰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들은 가습기살균제 사태 이후 투사가 되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해주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몸을 돌보고, 경제적 부담을 해결하고, 생업에 몰두해야 하지만 가만히 있어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 것을 알기에 시간을 내 공부를 하고 관계자를 만나 지금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힘이 있었기에 늦게나마 정부와 국회가 움직이고 대책 마련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의 확산은 막았으나 피해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사람들이 보상 다 받고 끝난 일인 줄로 알아 억울하다.”라고 말한다. 정부 부처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기업은 정부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번 행사의 타이틀이 ‘국가는 우리를 어떻게 버렸나?’인 것도 이 때문이다. 피해자가 백방으로 뛰어다닌 뒤에야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한 탓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사망자, 중증 피해자, 경증 피해자에 가족피해, 산모, 영유아, 성인 등 사례가 다양하기 때문에 일괄 보상을 할 수 없다. 피해자들은 사망자 가족에게 벌어진 피해를 보상하고, 의료비 부담이 큰 중증 피해자들을 즉시 구제할 것을 요청한다. 동시에 경증 피해자의 일상적 어려움도 도울 수 있는 지속적인 지원도 요구한다.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의의가 크다고 본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도움은 한계가 있고, 내가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조직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기인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목표는 다양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입장을 구제안에 반영하는 것이다. 각자 나름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힘든 싸움을 통해 얻어내게 될 구제 방안에 사각지대가 있어 지원받지 못하게 되는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그들은 힘을 모으고 있다.

 

글 이혜복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운영위원 cello510@nate.com  

사진제공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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