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밥상에 건설폐기물을 퍼붓는 자는?

지난 7월 13일 장산전망대에 올라가 임진강 건너 민간인통제구역 안을 살피니습지를 매립하고 있었다 Ⓒ정한철
 
“언니 우리 신랑은 애들이 밥을 흘리면 주워 먹으면서 밥 한 톨은 농부님들 땀 한 바가지라고 해. 어렸을 적 우리 아빠도 그랬어.” 
 
쌀 한 톨 농사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지 몸으로 터득해 온 우리네 아버지들의 밥상머리 교육이 우리 세대까지 이어졌었다.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늘 일하러 가고 없었다. 그렇지만 밥을 굶은 기억은 없었다. 밤늦게 지쳐서 들어오시면 감자와 호박을 듬뿍 썰어 넣고 칼국수나 수제비를 해주셨다. 쌀을 아끼기 위해 하루 한끼 국수나 수제비를 먹었다는 것은 내가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밭보다도 논 한마지기 갖는 건 모든 농민들의 염원이었다. 
 

쌀 한 톨 땀 한 바가지 

 
“그때는 손으로 모를 내니까 품앗이로 이 집 논 저 집 논 모내기를 하잖아. 근데 아버지 돌아가시니까 우리 집은 품앗이 할 사람이 없어 모내기를 못하잖아. 엄마가 뒤꼍에서 혼자 울고 있는 걸 봤어. 그 뒤 몇 해 동안은 외갓집에서 모내기를 해 주고 갔어. 엄마는 여자 혼자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서울로 이사를 간 거야.” 
 
나보다 열일곱 살 많은 큰언니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몇 마지기 안 되는 논조차도 여자 혼자서는 지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이사를 하는지도 모르고 서울로 온 나는 농사를 전혀 몰랐다. 그냥 개구리나 가재를 잡고 놀았던 추억만 있을 뿐이었다. 
 
2011년 고향 파주로 이사와 임진강 유역을 지키기 위해 농부님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눈동냥, 귀동냥을 했다. 지금은 농사의 많은 영역을 기계가 대신하고 때로는 농약(친환경농약 포함)을 뿌리는 일도 트럭에 기계로 싣고 다니면서 한다. 논둑에 풀은 제초제를 뿌리거나 예초기로 하지만 그 또한 사람 손을 필요로 하고 힘도 많이 든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 많다. 농촌에 일손이 없으니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한다.  
 

못자리 날 이장님 댁 넓은 마당에 사람이 ‘빠글빠글’

 
올봄 임진강 준설 반대 싸움을 같이 했던 옆 동네 김용성 이장님 댁 못자리 구경을 했다. 못밥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하셨다. 가벼운 맘으로 갔는데 마당에 사람들이 ‘빠글빠글’했다. 수백 개의 모판에 일일이 볍씨 전용 상토를 깔고 볍씨를 넣고 다시 상토로 덮는다. 그걸 차곡차곡 쌓아 지게차로 운반 가능한 만큼씩 비닐로 둘러쌌다. 이른 아침 시작했지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외국인 노동자들 몇 십 명 썼고, 이장님의 서울 친구, 읍내 친구, 동네 친구들이 총동원됐다.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들은 커다란 솥단지를 걸고 식사 준비를 했다. “모판은 언제 논으로 옮겨요?” “일주일 뒤에 볍씨 싹이 트면 그때 옮겨. 담주 토욜이니까 그때도 밥 먹으러 와.” 
 
모판 옮기는 날, 마정벌판 한가운데 이장님네 논으로 갔다. 모판을 트럭으로 옮겨 오면 수 십 명이 모판을 논에 깔았다. 일주일 사이 볍씨는 싹이 텄다. 모판을 깔고 물이 들어갈 수 있는 농사용 비닐을 덮었다. 중간에 비가 왔지만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모내기는 이양기로 한다. 그때는 모판을 걷어 트럭에 실어주고 모를 심을 논에서는 모판을 내려서 이양기로 전해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못자리 때처럼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다. 모가 크기 전까지는 물 관리가 최고 중요하다. 물꼬 관리를 위해 수시로 논을 오갔다. 논둑에 풀도 제거해야 한다. 논둑이나 논에 풀을 제거하는 것도 제초제를 뿌리기도 하지만 친환경 농가는 전적으로 사람이 해야 하기에 역시 외국인노동자들의 손을 빌렸다. 추수할 때는 벼를 베고 탈곡을 하고 대기하고 있는 트럭에 옮겨 싣는 과정 모두를 농기계가 해줬다. 옛날에는 낫으로 벼를 베어 옮기고, 탈곡기로 돌려 벼를 털어 냈다. 탈곡한 벼는 멍석을 깔고 햇볕에 말렸다.   기계화되기 이전에는 논농사 전 과정을 온 마을 사람들의 품앗이로 해결했다. 힘든 농사를 달래기 위해 농악을 했다.
 
“논김을 맬 때 논호미가 따로 있어. 논호미로 벼 포기 사이사이에 풀이 자라니까 그 흙을 뒤집어엎는 거야. 그걸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하는 거야. 소리를 하면서 박자를 맞추는 거야. 한 집 끝나면 다른 집으로 옮겨 가는데 그때 풍물을 하는 거야 호미는 뒤춤에 차고 농기 있잖아.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쓴 거. 농기 앞세우고 뒤로 풍물 치면서 다른 논으로 옮겨가. 그러다 딴 동네 풍물패 만나면 서로 인사하고 맞춰서 한판 두들기고 가.”
- 박덕연(마정리 두레패보존회 회장) / 『마정리사람들』(백정희. 아시아, 2020) 중에서 발췌  
 
내 기억으로는 추수할 때는 더 많은 인력과 손이 필요했다. 지금은 추수 때가 되면 마을 앞 정미소 벼를 실은 트럭이 밤늦게까지 줄을 선다. 건조기가 벼를 말려 800Kg씩을 담는 톤백에 담기 위해서다. 볍씨를 담은 톤백을 농협에 납품한다. 
 

농부님들이 차린 밥상에 개구리와 새들이 살고 있다

 
농부들은 개구리와 새를 위해 농사를 짓지 않는다. 농부이기에 사람을 위한 밥상을 차렸을 뿐이다. 그곳에 개구리가 알을 낳고, 뜸부기도 알을 낳고 저어새, 백로류, 두루미, 재두루미, 기러기들이 논에서 먹이를 먹는다. 수천 년 동안 그냥 그렇게 같이 살아왔다. 그 논에 물을 대준 것은 벌판 옆을 흐르는 강이 해줬다. 장마철 강이 범람하면 논이 물에 잠긴다. 범람은 논에 영양을 공급한다. 접경지역인 임진강과 한강하구 유역은 개발이 제한돼 넓은 벌판이 보존됐다. 강과 논이 있기에 수원청개구리가 있고, 두루미가 살 수 있다.        
 
도시에서 철새 탐조를 올 때는 논이 보이질 않았다. 오로지 두루미와 재두루미와 독수리만 보일 뿐이었다. 이곳에서 농민들과 같이 임진강과 이곳의 논을 지키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60일 장마 때 문산읍과 선유리 주민들은 대피소로 피난을 갔다. 마정리에도 대피명령 방송이 나왔다. 임진강이 범람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제방까지 여유가 60cm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 외에 이곳에서 뿌리박고 살던 사람들은 대피하지 않았다. 
 
<임진강준설반대농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해연 이장님이 이유를 설명해 줬다.  
 
“괜찮아. 왜 괜찮냐면 잠기면 문산이 먼저 잠겨. 글구 지금은 썰물이야. 밀물이 저녁 8시인데 그때 비가 많이 오면 정말 큰일이지. 지금은 괜찮아.” 그러면서 덧붙였다. “우리가 준설 못 막았으면 정말 클났을 거야.”
 
실제 문산읍 건너편 장단반도 논은 거의 물에 잠겼다. 문산읍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제방을 낮췄기 때문이다. 물 빠진 뒤 군인들이 총동원돼 장단반도 철조망을 다시 세웠다. 우리 동네 마정 벌판도 중간이 저수지가 됐다. 임진강 위에 있는 섬 초평도는 나무 끝까지 완전히 잠겼다. 철책선 안 하천부지 논은 사나흘이나 잠겼다.
 

건설폐기물로 논을 메꾸고 있었다

 
지난해 말 추수가 끝난 뒤부터 수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덤프트럭이 쉼 없이 오갔다. 벌판 한가운데는 겨우내 공사를 했다. 농수로 공사를 하는 거란다. 농사철에는 공사를 못 해 겨울에만 해야 하니 3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모내기철이 되어 뜸부기는 왔는지, 수원청개구리는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지 궁금해 벌판에 나갔다 깜짝 놀랐다. 벌판 한가운데 대파 재배를 하는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20여 동이나 새로 생겼다. 그곳은 수원청개구리와 뜸부기가 짝을 부르는 노래를 하던 곳이다. 수원청개구리와 금개구리가 쉬는 것을 봤던 농수로는 폭이 4미터나 되는 거대한 시멘트 농수로로 변해 있었다. 임진각으로 향하는 길의 왼쪽 논은 통보리 밭으로 변했고, 오른쪽 논 한쪽은 객토(농사를 짓기 위해 논에 흙을 부어 높이는 건 ‘객토’, 논을 완전히 메꿔 밭으로 바꾸거나 택지로 용도전환을 하기 위해 흙을 부어버리는 건 ‘성토’)를 하고 있었다. 마음만 불편했는데 곳곳에서 이상한 건설폐기물 같은 것을 논에다 붓고 나중에 멀쩡한 흙을 덮어 가린다고 한다. 민간인통제선 안에도 곳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어떤 이는 장산의 논이 다 메꿔질 거라고 한다. 논을 메꿔 밭으로 만들고 나면 곧바로 땅값이 평당 10만 원씩 오른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마정, 사목, 장산 곳곳이 메꿔지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맘먹고 오른 장산전망대 아래 논이 메꿔져 있었다. 그 높이가 거의 산성 수준이었다. 하우스 앞의 논도 메꾸는 중이었다. 장산은 겨울철 재두루미 40여 마리가 먹이를 먹고, 독수리 먹이도 주는 곳이다. 여름에는 뜸부기도 수원청개구리도 새끼를 키우는 곳이었다. 이 사실을 다룬 기사를 SNS에 올리니 탄현, 대동, 오금리도 같은 형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논을 메꾸면 주변 논들은 물에 더 잠긴다.   
 
국가 소유부지인 하천부지 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농민, 어민 몇 명이 같은 날 저녁 전화를 했다. 심지어 이양기가 빠져 좋은 흙으로 객토를 해달라고 했는데 스티로폼이 둥둥떠 올라 농사를 포기한 농민도 있었다. 
 
농민들 뒤에서 이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 마침 지난해 홍수로 논이 물에 잠기니 농부들은 반겼다. 대부분의 땅주인은 외지인이어서 밭으로 바꾸면 땅값까지 오르니 신났다. 
 

건설폐기물을 논에 부어도 된다는 농지법 시행규칙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원인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건설폐기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등 우리나라 법률 곳곳에서 농토에다가 듣기 좋게 ‘순환토사’라고 포장한 이름의 건설폐기물을 메꿀 수 있도록 해놨기 때문이다. 건설폐기물처리 규정을 보니 순환토사에는 아스팔트, 콘크리트, 유리, 타일 등등이 들어가 있다. 안 되는 게 뭔가 싶을 정도였다.   
 
그중 가장 깜짝 놀란 것은 「농지법」 시행규칙 별표1. 3항 성토 조항에 버젓이 ‘순환토사’를 논에 부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다는 거다. 이 조항은 2016년 12월 7일 개정됐다. 시행규칙이니 장관 소관이다. 박근혜 정부 말 국정농단으로 시민들이 한겨울 추위에 촛불 들고 탄핵을 외치던 그 시점에 관료들은 이 짓거리 했다. 그나마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2m 이내 범위에서 더 제한할 수 있다는 행정규칙 있다. 자치단체 조례로 50cm 이내로 제한을 두면 논에 건설폐기물을 쏟아 붓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관련법들을 모두 뜯어고치는 것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그래도 고쳐야 한다. 당장 행동에 옮기자.
 
어느 가난한 시인은 밥이 하늘이라고 했다. 당연히 밥을 생산하는 논도 하늘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 관료들은, 개발업자들은, 부동산업자들은,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논을 돈으로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쓰레기처리장 취급하고 있었다. 
 
기후위기는 지금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농민들은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해 애끓었다. 기후위기와 농촌 노동력 부족은 식량위기로 이어져 식량안보를 거론할 지경이다. 이런 처지에 관료들이 기후를 조절하고 하늘 같은 밥을 짓는 논을 쓰레기장으로 여기고 있다. 천벌을 받을 일이다.  
 
글 사진 / 노현기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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