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

복수초
 
겨울이 되면 식물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조금 빈둥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나무의 경우 잎을 떨구고, 수액의 농도를 높여 아주 더디게 성장하는 시기이며, 풀은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을 남기고 고사하거나, 뿌리에 양분을 저장하여 겨울을 보내기 때문에 꽃을 피우는 식물도 거의 없고, 잎도 없는 지루한 시기이니 말입니다. 물론 늘푸른잎 나무가 있고, 방석잎(로제트)으로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도 있습니다만, 역시 식물은 꽃을 보는 즐거움이 제일입니다.
 
특히 눈 속에서 피는 꽃은 인기가 좋습니다. 무채색에 가까운 겨울의 풍경 속에서 꽃의 화려한 색은 강렬한 인상을 주기 충분합니다. 식물을 처음 공부하던 시기, 한 신문기사에서 눈을 뚫고 피어난 복수초의 사진을 보며 꼭 한번 눈 속의 복수초를 봐야겠다고 다짐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연출로 만들어진 사진이 꽤 많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은 식물에게 매우 위험한 편이고, 꽃이 핀 후 내린 눈은 재난에 가깝습니다. 냉해를 입기 쉬운데다가, 겨울철에는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이 그만큼 부족하기 마련이니까요.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의 교란으로 꽃이 피는 경우나, 주로 새(동박새)가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동백꽃은 예외지만 말입니다.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식물의 경우 냉해 피해를 받기 쉽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시기에 꽃을 피워 번식을 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키가 작은 식물인데 숲이나 주변이 우거지기 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다소 온난한 남쪽 지역의 경우라면 겨울에도 꽃을 만나는 일이 그다지 드물지 않습니다만, 강원도나 경기도 북부지방의 경우 겨울에 꽃이 피는 식물을 보기란 흔치 않습니다.
 
별꽃
 
담벼락 아래 별꽃은 12월이나 1월에도 비교적 흔하게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담벼락이 바람을 막아주고, 복사열로 주변에 적당한 온도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숲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어지간한 계곡의 숲은 봄이 되어도 얼음이 쉽게 녹지 않을 정도로 추위가 강한 편이니까요. 미나리아재비과의 몇몇 식물은 이런 숲의 냉기를 극복해 내고 꽃을 훌륭하게 피워 냅니다. 복수초도 그 대표적인 식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도바람꽃
 
복수초는 눈 속에서 피어난 모습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습성 덕에 설련화 또는 얼음새꽃이라고 불립니다. 꽃의 형태가 둥근 집광판과 비슷하여 열을 모으기 좋아 곤충에게 충분한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아니어도 곤충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장소일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따뜻한 지역이 아니라면 복수초가 꽃을 피우는 시기는 완벽한 겨울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강원도 지역이나 경기 북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너도바람꽃이 복수초보다는 일찍 꽃이 피는 편이고, 복수초는 그 이후 나타납니다. 다만 너도바람꽃은 크기가 작아 찾기가 힘들고, 꽃받침조각도 흰색이어서 눈에서 만난다고 해도 화려함은 덜한 편입니다. 
 
왜현오색
 
겨울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눈을 이기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인 경우가 많습니다. 꽃이 피어야 하는 시기까지 아직 눈이 남아 있던가, 아니면 계절에 맞지 않게 눈이 내린 상황이겠지요. 그럼에도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 온 치밀한 전략과 추위에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사진 / 김경훈 자연탐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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