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내쫓은 토교저수지 낚시대회 강태공은 없었다

두루미 내쫓은 토교저수지 낚시대회 강태공은 없었다


박수택 SBS논설위원, 한국환경기자클럽 회장 ecopark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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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도래지 토교저수지 ⓒ윤순영)

 

낚시는 다른 취미 레저와 다르게 나름의 도(道)와 예절이 있다. 정신과 의사이며 수필가였던 고 최신해(崔臣海) 선생은 ‘비를 맞아가면서 밤을 지새우는 걸 보면 모르느냐, 낚시는 바로 철학이다. 이건 물가에 앉아 있는 고독한 철학이다.’라며 낚시를 극찬했다. 낚시에 관한 명언이나 일화는 고금동서 구분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대접해 부르게 된 것은 중국 고대 은 왕조 말기에 위수에서 칠십 노인 여상(呂尙)이 낚시하다 훗날 주(周) 왕조의 문왕이 된 발(發)을 만나 그를 도와 왕업을 일으킨 고사에서 비롯한다. 주 문왕은 여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일찍이 부친 태공(太公)이 목마르게 나타나기를 바라던(望) 분이라면서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 여상의 성이 강(姜) 씨였기에 강태공(姜太公)은 이후 낚시꾼의 대명사로 굳어졌다.


그의 낚싯바늘엔 고기의 입을 꿰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가시 모양의 미늘이 없었다고 한다. 물고기를 낚아 올리자고 낚시한 것이 아니었으니 이런 경지를 가리켜 ‘취적비취어(取適非取魚)’라고 한다. 낚시질을 함은 고기를 잡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라는 뜻인데, 오늘날에도 강태공 칭호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고기잡이에 욕심내지 말고 아름다운 자연을 벗으로 삼을 줄 아는 여유와 아량이 필요하다. 이런 심성을 드러낸 선인의 시조를 한 가락 읊어보자.

 

‘강호에 비 갠 후(後)니 수천(水天)이 한 빛인 제 / 소정(小艇)에 술을 싣고 낚대 메고 내려가니 / 노화(蘆花)에 나니는 백구(白鷗)는 나를 보고 반긴다.’ <김우규>

 

비갠 뒤 물이나 하늘이나 한빛으로 푸르다. 푸른 물에 작은 배를 띄워 타고 술 마시며 낚시하며 여유롭게 흘러가는데, 갈대숲 위로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나를 반겨준다. 김우규는 18세기 조선 영조 때 명창 가객으로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거침없고 호방한 기상을 드러냈다. 새들은 겁이 많아 사람을 피하기 마련인데 쪽배를 탄 시인과 갈매기는 갈대밭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이쯤 되면 낚시는 ‘질’이 아니라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철새도래지에서 1200명 낚시대회 개최
선인들의 낚시는 그렇게 고아했는데 요즘엔 도는 그만두고 멋도 예절도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강원도 철원에서 벌어진 1200명 집단 얼음낚시대회 소동을 보자. 대회가 열린 곳은 철원군 관인면 양지리에 있는 토교저수지로 DMZ에 인접한 민간인 통제구역(민통 지역)안에 있다. 민통 지역에 있을 뿐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저수지가 철원평야지대에서 손꼽히는 겨울철새도래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규모 낚시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 문제다. 철새도 흔한 오리, 기러기뿐 아니라 두루미, 재두루미, 흰꼬리수리, 독수리 같은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이 모여들어 쉬거나 자는 곳이 토교저수지다.


2012년 2월 6일 한겨레신문을 통해 생태적으로 민감한 민통지역 저수지에서 2월 12일 1200명이 모이는 대규모 낚시 대회가 열릴 예정이며 조류 전문가, 환경운동단체들이 조류 생태 환경이 교란될 것을 염려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호조 철원군수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군수는 철새에게 영향이 없을 거라면서 한겨레 보도는 오보라고 잘라 말했다. 강추위로 저수지가 얼어서 두루미가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이 얼면 삵 같은 천적이 얼음 타고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근처 한탄강 계곡으로 잠자리를 옮긴다는 설명도 붙였다.


두루미 서식 환경 파괴 문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두루미-떠나가는 천년학』, SBS스페셜 2008년 1월 방송)를 제작하느라 1년 가까이 국내외로 두루미를 찾아다닌 경험으로 볼 때 군수의 말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토교저수지 얼음 위에서 잠을 자고 해가 높이 떠오른 뒤에 모이터로 날아가는 두루미를 영상으로 기록한 사실이 있기에 다시 물었다.


“낚시행사가 두루미에 미치는 영향이 어떨지 조류 전문가들에게 조언이나 자문을 구하고 협의하셨습니까?”


“철새 전문가와 협의하지는 않았고, 대신에 새 촬영하는 사람들, 주민들에게 물었죠. 새가 저수지에서 잔다고 해도 8시 전에 저수지를 떠나고 낚시는 9시부터 시작하니까 지장이 없습니다.”


군수는 철새를 보호하거나, 철새 때문에 농사 피해를 보는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낚시객에게 아침 점심 2끼 식사를 제공하고 식비로 1인당 1만 원씩 모두 1200만 원이 양지리 마을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철새 다큐를 찍고 있는 독립PD 김수만 감독은 이웃 화천군, 양구군이 겨울 산천어 축제로 유명세를 얻자 철원도 자극받아 얼음낚시를 들고 나섰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식재료 연료비 빼고 많아야 300, 400만 원쯤 남을 텐데 주민끼리 나눠봤자 한 집에 10만 원 정도 벌자고 두루미 잠자리를 훼손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찼다. 군수는 토교저수지의 생태교란 외래어종 배스, 블루길 퇴치 목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낚시대회를 철회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행사를 기획한 이춘근 서울시낚시연합회장도 ‘사람과 자연이 가까워지는 기회’라면서 자연 생태계 교란은 없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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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교저수지에서 열린 낚시 행사 ⓒ정인철)

 

결국 내쫓긴 두루미들
하지만 조류 생태를 아는 전문가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은 큰일이라고 발을 굴렀다. 환경연합과 생태지평, 녹색연합이 낚시대회 중지를 요구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서울시, 환경부에도 대규모 낚시 대회가 끼칠 악영향을 호소하고 행사를 철회하도록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DMZ지역 최초의 얼음낚시대회’를 둘러싼 논란은 SBS(2월8일 밤 8시뉴스)와 KBS(2월9일 아침 뉴스광장)뉴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환경부는 문제가 확대될 것을 염려하긴 했지만 적극 나서서 막지는 못했다. 다만 조류생태에 영향이 없도록 최대한 주의하라는 정도의 공문을 보내고 행사 당일 자연자원과 사무관과 국립생물자원관 조류 전문가를 행사장에 보내 살피는 선에 머물렀다. 중도에 문제를 알게 된 차관이 군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류했지만 허사였다. 토교저수지가 법규상 보호지역이 아니라서 생태계 교란이 예상돼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환경부의 해명이다. DMZ 지역의 우수한 생태계를 조사하고 보전에 힘쓰겠다고 여러 해 전부터 공언해 온 환경부가 생태 가치 높은 토교저수지를 진작 보호대상으로 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마침내 2월 12일 오전 7시 무렵, 해도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겨를에 대형 관광버스들이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 꼬리를 물고 들어왔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새벽부터 저수지 제방 위에서 망원경으로 빙판을 살폈다. 1000미터쯤 떨어진 저수지 한 가운데에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두 무리로 나뉘어 200마리쯤 모여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가 뜨자 두루미들은 2마리 또는 네댓 마리씩 날아올라 제방 위 활동가들 머리 위를 지나갔다. 낚시꾼들은 마을 부녀회가 끓여준 떡국으로 요기하고 당초 약속한 9시가 아니라 8시 20분쯤 저수지로 밀려 올라왔다.


“새 때문에 안 된다더니, 새가 어디 있어!” 제방 위에서 ‘낚시대회 중지’ 피켓을 들고 선 활동가, 지켜보는 기자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비아냥거리는 낚시꾼들도 있었다. 하얗게 눈 덮인 저수지 빙판에 흩어진 낚시꾼 천 명이 각자 긴 끌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40센티미터 두께의 얼음장을 네모반듯하게 엔진톱으로 잘라내는 사람도 두 셋 보였다.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담배 피우고 꽁초 던지며 침 뱉는 사람, 소주잔 기울이는 사람, 웃고 떠드는 사람.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의 잠자리 토교저수지는 여느 낚시터나 다름없이 지저분하고 소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마침내 걱정하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몰려든 자리에서 7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남아 있던 40마리쯤의 두루미, 재두루미가 소란 통에 날아오른 것이다. 조용하던 이른 아침 남쪽 제방을 넘어 가던 무리와는 달리 사람들을 피해 서쪽 산등성을 넘어 사라졌다. 김수만 감독의 망원렌즈 카메라에 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평소 둑 위에 앉아 쉬던 독수리들도 사람들에게 밀려나 하늘을 맴돌기만 했다. 새들에게 지장을 끼치지 않는다던 철원군과 서울시낚시연합회의 호언장담은 실언이 되고 말았다.

 

생태 무지 드러낸 철원
천 명의 낚시꾼이 올린 조황도 50센티미터 안팎의 대어 서넛을 포함해 배스와 블루길 스무 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외래어종을 잡아내는 목적도 있다더니, 이것도 헛구호로 그쳤다.


철원군의 농산물 브랜드는 ‘두루웰’이다. 철원군은 두루미를 상징 새로 내세우고 철새 도래지임을 자랑하지만 정작 두루미와 철새의 생태에는 무지함을 토교저수지 낚시대회로 새삼 드러내고 말았다.


지구상에서 2천 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 두루미가 한해의 절반을 머무는 곳이 철원이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보물이 되고도 남을 고장이다.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이솝우화가 떠오른다. 갈수록 두루미가 살아가기 어려운 철원군의 공무원들과 주민들께서 새롭게 읽어보시길 간절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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