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전자파가 안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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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에 보내기 위해 세워진 송전탑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1810년에 설립된 의과대학 겸 연구기관이다. 이 연구소는 1885년 노벨의 요청에 따라 노벨 생리학상 및 의학상 수여기관으로 지명되었고, 1901년 이후로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심사•선정해 오고 있다. 그런데 1993년 이 기관에서 연구해온 두 사람의 학자가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다. 송전선 인근 300미터 이내에 거주하는 16세 이하 아동들의 백혈병 발병률이 1.5배에서 3.8배 더 높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스웨덴 국민과 언론은 뜨거운 관심을 가졌고,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이 결과를 주목했다. 그리고 스웨덴 정부는 1994년 매우 중대한 발표를 하게 된다. 송전선 전자파에 노출되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발전소 및 변전소 인근에 새로운 학교나 주택 신축을 억제하고, 가정•학교 및 작업장에서도 높은 자기장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송전탑 전자파 장기간 노출 위험

 
전자파의 인체위해성 연구는 1970년대 말부터 계속되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연구를 주목하는 이유는 정부가 송전선 전자파의 인체위험을 인식하고 안전보호지침을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1995년 미국 국립방사선방호학회도 송전탑 전자파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소아백혈병에 걸릴 위험이 커지므로 전기장에 의한 인체보호기준을 설정할 것을 각국에 권고했다. 이후 미국의 캘리포니아, 브랜트우드 및 어바인 지역에서는 전자파에 한계치를 두는 규정을 만들었고,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에서도 전자파에 대한 인체보호기준을 설정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학교•유치원•신설주택 등에 송전선 전자파를 제한하고, 이격 거리를 설정하는 등의 노력을 펼쳐왔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전자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2002년 세계보건기구가 송전탑 등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를 ‘인체 발암가능 물질’로 지정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언론에 잠시 보도되는 정도였고, 국민적 관심사로 지속되지는 못했다. 한국전력의 송전선 설치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도 지역이기주의로 매도되거나, 매우 지엽적인 사안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다 최근 한국전력이 765kV 송전탑 건설문제로 밀양 어르신들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히자 다시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송전탑 반대를 님비현상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에는 매년 평균 421서키트 킬로미터(c-km)의 송전선로가 설치되었으며, 460개의 송전탑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로 인한 민원만 하더라도 총 183건에 이른다.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송전선과 송전탑은 2024년까지는 2012년 대비 약 19퍼센트나 증가될 계획이라 한다. 특히 전력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송전선으로 보내야할 전력용량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154kV에서 345kV로, 345kV에서 765kV로 전압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압비중이 높아지면 전자파 발생량도 그만큼 높아진다. 이제 고압 송전선로 전자파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 
 
 

‘3밀리가우스 연중 노출’에도 안전하다는 한전

 
특히 2009년 한국전력이 대한전기학회에 용역을 발주하여 2010년에 보고받은 『가공 송전선로 전자계 노출량 조사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보고서는 한국전력이 송전선로 건설로 인한 민원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전국 242개소 지점의 전자파 노출량을 직접 측정하고 연평균 노출량까지 추정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765kV 송전선의 경우 80미터 이내에, 345kV의 경우에는 40미터 이내에, 154kV의 경우에는 20미터 이내에 거주할 경우 3밀리가우스(mG)이상의 전자파에 연중 상시 노출되는 것으로 나왔다. 앞서 언급한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2.9mG에 노출된 아동군의 백혈병 유발률은 1.5배, 3mG에 노출된 군은 3.8배였다. 그리고 2000년에도 알봄(Ahlbom)은 4mG이상, 그린랜드(Greenland)는 3mG 이상의 전자파에 노출되었을 때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2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발표되자 한국전력은 즉시 반박했다. 전자파가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들을 검증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가 2007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전자파의 노출로 인한 암 발병을 확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2007년 6월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는 전자파로 인한 단기간 고노출은 명확히 규명되나, 장기간 저노출 영향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전자파의 장기간 저노출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증거 역시 내놓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는 ‘전자파 노출에 대한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전자계 노출을 줄이도록 하고, 이를 위해 전자계 노출의 인체영향에 대한 연구, 저비용의 노출저감 기술개발 등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보건기구가 2002년 송전선 전자파에 대해 ‘인체 발암가능 물질’로 지정한 뒤 지금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은 2009년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전자계 건강영향에 대한 역학연구』 결과 보고서를 들어 송전선로 전자계 노출과 소아암 발병이 관련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2005년 환경부가 발표한 『송전선로 주변 학교 학생의 극저주파 자기장에 대한 노출평가』에 따르면 송전선과 거주지 거리가 100미터 이내인 초등학생의 멜라토닌과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유의하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 바 있다. 같은 주제를 대상으로 연구하더라도 정부부처에 따라 다른 연구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한전은 생활가전제품을 예로 들어 송전선 전자파는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2013년 7월 한국전파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생활가전제품의 경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 전자파는 10분의 1이상 줄어든다. 한국전력이 근거로 든 냉장고 역시 30센티미터 거리에서 전자파가 0.02mG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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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송전탑 반대를 외치는 밀양 주민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국민의 안전 위해 사전예방 원칙 따라야

 
사실 1993년 전자파의 인체위해성이 발표될 당시 스웨덴 사회에서도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웨덴 정부는 1990년 이후 에너지 관련 시설과 신축 건물에 이격거리를 설정하였으며,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건축할 때에는 2mG에서 3mG를 초과하지 않도록 권고치를 설정하였다. 또한 인근의 고압선로 및 송전철탑을 철거하고 시설을 이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국제비전리방사선보호위원회가 단기간 고노출 영향으로 제시하였던 833mG의 기준치를 일괄 적용하고 있다. 
 
사실 송전선에 의한 전자파의 인체영향에 대해 나 역시 확실한 결론을 짓고 있지 못하다. 많은 환경보건문제가 그러하듯이 이 문제 역시 명확한 결론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비록 과학적으로 확실히 증명이 되지 않더라도 국민건강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가 국민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하면서도 늘 이런 문제 앞에서는 후진적인 처사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악의 평범성’이란 나치치하의 성실하고 근면한 독일국민들처럼, 잘못된 시스템에 충실히 봉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폭력과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렇게 악이 평범해지는 근본원인은 사유하지 않음에서 나온다. 전기를 쓰지 말자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쓰는 전기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한다. 그러면 최소한 무심코 낭비하는 전력소비도 줄이고, 더 인간적인 에너지시스템으로 가는 길도 생각해 보지 않을까?

김창민 민주당 국회의원 장하나 의원실 환경정책담당 kimcm@kfem.or.kr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전력시스템을 위한 

전국 송전탑 네트워크 결성

 
송전탑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은 밀양 주민뿐만이 아니다. 청도 각북면 삼평리, 달성 유가면, 당진시와 아산시(북당진-신탕정 구간), 구미 신동마을, 울진 신화리 등 전국 곳곳이 송전탑 건설 또는 건설계획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들이 송전탑 문제의 본질과 제도적 모순을 알리고 잘못된 시스템 개선을 위해 뭉쳤다. 지난 8월 4일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전력시스템을 위한 초고압 송변전시설 반대 전국 네트워크>(전국 송전탑 반대 네트워크) 결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지난 30여 년간 정부와 한국전력은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과 압도적인 물리력을 이용하여 전국 방방곡곡 대용량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초고압전류를 힘없고 약한 시골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관통하여 대도시와 산업시설로 보내는 전력시스템을 유지하여 왔다.”며 “밀양 주민들의 8년에 걸친 헌신적인 투쟁이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개별지역의 투쟁만으로는 이 잘못된 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전력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우리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뭉치고자 한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서있는 한국전력과 정부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국적 연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라며 결성 이유를 밝혔다. 
 
전국 송전탑 반대 네트워크는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를 비롯해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 반대 주민대책위, 달성 유가면 345kV 송전탑 반대 주민대책위, 북당진-신탕정 345kV 송전탑 반대 주민대책위, 구미 신동마을 345kV 반대 주민대책위, 울진 신화리 765kV 송전탑 반대 주민대책위 등 주민대책위와 지역 환경운동연합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전국 송전탑 네트워크는 △전력수요관리와 지역분산형 전원을 통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전력시스템  구축 △현재 진행중인 송전탑 공사와 절차를 중단하고, 송변전 시설의 건설과 유지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기구 구성 △전원개발촉진법 폐지 △송•변전 시설 주변지역지원법(전기사업법 개정안) 제정 중단 등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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