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프가 말하지 않은 밥 한 그릇의 무게

밥보다 더 맛있고 귀한 음식이 올라온들 밥상의 가장 앞을 차지하는 건 밥이다. 나머지는 그저 밥을 먹기 위한 반찬에 불과하다. 반찬 간도 밥을 중심으로 맞춘다. 오죽하면 ‘밥’상이겠는가. 그저 그 자리에 오른 건 아니다.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 김치 한 조각 얹어도 그만이고 간장과 들기름 넣고 비벼도 한 그릇 뚝딱이다. 바닥에 누른 밥도 그냥 둘 수 없어 물을 넣고 끓여 마셨다. 싹 비운 밥그릇에 숭늉을 담아 마셔야 밥상을 치웠다.
 
그 밥 먹기 위해 누구는 밥벌이를 하고 그 밥 먹이기 위해 누군가는 농사를 짓는다. 밥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어떤 쉐프도 알려주지 않은 밥맛을 찾아 나섰다.  
 
농부의 하루는 땅에서 시작하고 땅에서 끝난다
 

볍씨 한 알이 밥 한 공기가 되기까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들녘을 메운 벼들이 가을바람에 일렁인다. 아직 황금빛이 부족하지만 알알이 영근 이삭들에 벼는 고개를 숙였다. 풍년이다. 이곳 농부들이 친환경 순환농법으로 키운 논이다. 
 
시작은 볍씨에서 시작된다. 진달래꽃이 피면 볍씨를 물에 담가 볍씨를 고른다. 볍씨 선택은 맏며느리 고르기와 같다는 속담처럼 볍씨 고르기는 그해 농사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농부는 좋은 볍씨를 골라 모판에 심고 싹을 틔운다. 모판에 모가 자리를 잡아가면 논에 물을 대고 써레질이나 트랙터로 논을 갈아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며 모내기 준비를 한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모내기를 마쳐야 하는 농부의 마음은 바쁘다. 물댄 논에 줄을 맞춰 모내기를 끝내면 우렁이를 들여보낸다. 농부를 도와 잡초를 제거해줄 든든한 농군이다. 농사는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달려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논과 함께 농부의 마음도 타들어가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논둑과 함께 농부의 마음도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농부는 하늘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이 되면 그때부터는 풀과의 전쟁이다. 논두렁이며 밭두렁이며 기를 쓰고 올라오는 풀들은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논을 점령해버린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에 독한 제초제를 쓰면 되겠냐며 농부는 한여름 땡볕에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풀들을 뽑아냈다. 농부는 우렁이가 있어 그나마 수월했다며 우렁이 농군을 칭찬한다. 그렇게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랐다.  
 
가을볕에 이삭이 황금빛으로 익으면 수확을 한다. 이삭을 털어내고 도정 과정을 거쳐 껍질이 벗겨지면 그제야 쌀이 모습을 보인다. 왕겨만 벗겨낸 쌀이 현미다. 여기서 겨를 얼마나 더 깎아내느냐에 따라 5분도미, 7분도미, 9분도미, 백미로 나뉜다. 
 
쌀의 米자를 풀어 88번(八十八)의 정성이 들어가야 볍씨가 쌀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볍씨 한 알이 쌀 한 톨이 되기까지 자연의 고마움과 농부의 수고로움이 있다. 호저면 농부들은 단지 쌀만 생산하는 건 아니다. 도정과정에서 발생하는 왕겨는 소의 깔짚으로 사용하고 쌀겨나 청치 등은 사료로 사용된다. 또 소의 깔짚으로 사용한 왕겨는 소의 배설물과 함께 발효돼 거름으로 만들어진다. 고추, 감자, 옥수수, 호박, 복숭아 등을 키우는 거름이다. 이들은 밥과 함께 반찬이 되어 상에 올라올 것이다.  
 
농부의 든든한 우렁이 농군
 
 
볏짚과 왕겨는 소를 키우고 소는 밭의 작물을 길러낼 거름을 만들어낸다
 
 

밥맛 떨어뜨리는 것들

 
농부에게 일 년 중 가장 설레고 기쁜 계절, 가을이다. 벼를 수확하며 한 해의 성과를 거둬들인다. 하지만 추수를 앞둔 농민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풍년이 들어 좋지만 농산물 가격 폭락이 걱정이다. 거기에 정부가 나서 밥쌀용 쌀 수입을 추진하면서 농민들은 애가 탄다. “쌀값은 계속 떨어지고 생산비는 자꾸 오르고, 거기에 수입개방이 되면 가격은 더 하락할 텐데, 농민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겠어요. 농민들이 농사 안 지으면 농산물 부족해 수입을 늘려야 할 텐데, 외국에서 생산을 중단하거나 가격을 높여 불러 봐요. 이건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농민 원유건 씨는 답답하다. 
 
한 나라의 식량안보를 가늠하는 식량자급률은 계속 떨어져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사료포함)은 23.1퍼센트에 불과하다. 주식인 쌀조차 지난 2009~2010년 쌀값 폭락 이후 10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더니 2013년에는 89.2퍼센트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7월 말 미국산과 중국산 밥쌀 3만 톤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농어촌이 고령화, 인력부족, 시장개방 등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농업은 대박산업”이라며 “수출산업으로 키우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부들에겐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바닥 드러내는 쌀독 채울 생각은 않고 자동차 팔아 밥 사 먹자더니 더 나아가 그나마 남은 쌀 팔아 밥 사먹자는 꼴이다.  
 
농업은 단순히 경제활동이 아니다. 농업·농촌기본법에도 농업은 식량안보, 환경보전, 전통문화, 생활공간 등 경제적·공익적 기능을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농업이 경제활동에 국한되고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될 때 대단위 관행농업은 불가피하며 식량안보니 환경보전 등 공익적 가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우리의 밥상도 그 안전성을 크게 위협받을 것이 자명하다.  
 
 

쌀 한 톨의 무게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농민들이 뿌듯한 계절이 이때지. 들을 내다보면 이삭들이 패서 고개를 숙이고 점점 누렇게 익어간단 말이야. 그걸 볼 때는 마음이 풍요롭지. 그래서 돈만 바라보고 농사는 못 짓는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 6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온 허균 할아버지에게 농사는 천업이다. 
 
이른 새벽부터 논밭에 나갔던 농민들이 성당에 하나 둘 모였다. <원주생명농업>은 농번기로 바쁜 농민들을 대신해 점심을 준비해 제공하고 있다. 슬쩍 그 자리에 낀다. 오늘 메뉴는 쌀밥과 닭계장, 깍두기, 김치 등이다.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쌀과 채소, 닭으로 만든 밥상이다. 
 
밥 한 숟가락 뜬다. 한 알의 볍씨가 따뜻한 밥이 되어 입에 들어간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 빛도 그 안에 스몄네 /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가수 홍순관의 노래 『쌀 한 톨의 무게』 중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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