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살처분에 저항하다

산안마을에서 키우는 병아리.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지만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돼 살처분 위기에 놓였다 사진제공 산안마을
 
2021년 신축년의 새해가 밝은 날,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화성 산안마을로 향했다. 눈 내리는 산안마을은 아름다웠지만 전운이 감돌았다. 언제 강제 살처분조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활동가들은 마을에 꾸려진 상황실에서 신년 덕담 대신 긴박한 상황을 공유하며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을 서로 토로했다.
 
병아리들에게 풀을 베어 먹이고, 동물복지적 환경에서 닭들을 기르며 달걀로 경제활동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대안적 마을공동체 산안마을에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떨어진 것은 지난 12월 23일이다. 크리스마스 직전 3일 안으로 산안마을의 산란계 3만7천 마리를 모두 죽여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을은 긴급 회의를 열었고 고심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잘못된 살처분 명령에 저항하기로. 
 

산안마을의 방역 노력 물거품 만든 탁상행정 살처분

 
12월 23일 산안마을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 명령은 하루 전날 산안마을에서 1.8km 떨어진 화성시 향남읍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H5N8형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확진되었기 때문이다. 발병 농장의 31만여 마리의 닭들은 모두 살처분 되었다. 해당 농장 반경 3km 안에는 산안마을을 포함한 농장 6곳에서 35만7천 수의 가금류를 사육하고 있었다. 화성시는 이 농장들 모두에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내렸다. 예방적 살처분 명령 이전의 위험도 평가는 없었다. 
 
산안마을은 공장식 축산 일변도의 현대 축산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생산성과 경제성 중심의 농장 경영이 아닌, 닭의 입장에서 최고의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을 37년째 기울여 왔다. 
 
2014년과 2018년 각각 800m 떨어진 인근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확진되어 산안마을에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지만, 화성시와 협의하여 자체 방역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무의미한 살처분으로부터 닭들과 농장을 지켰다. 
 
이후로는 이러한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자 방역선진형 동물복지농장을 조성키 위해 자부담과 지원 예산을 포함하여 총7억여 원을 별도 투입하여 확고한 방역 라인을 구축했다. 2019년 경기도가 방역 우수 농장의 모델을 제시하겠다며 도입한 방역선진형 농장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런데 애써 만든 방역선진형 동물복지농장 조성의 의미는 온 데 간 데 없고 산안마을은 이번에 ‘예외 없는’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됐다. 근거는 ‘거리’뿐이었다. 산안마을이 발병 농장 3km 이내에 속하기 때문이란다. 과거 800m 거리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에도 예방적 살처분 없이 자체 방역 강화로 건강한 닭들을 지켜냈던 산안농장이다. 방역선진형 농장 사업으로 자체 방역은 더욱 철저해졌는데 왜 이제 와서 더 먼 거리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으로 인해 감염되지 않은 닭들을 죽여야 하는가.
 
산안마을의 소식이 세간에 알려지며 문제가 되자 화성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서둘러서 방역심의회조차 열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살처분 명령을 내리는 자는 법적으로 지자체의 장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정작 지역의 위험도 평가는 처음부터 실종되었던 셈이다. 과학적 근거와는 무관한 정부의 3km 예방적 살처분 방침과 상부의 명령만이 화성시를 통해 산안마을에 하달되었을 뿐이다. 이 역시 산안마을이 잘못된 살처분을 받아들였더라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지자체들이 탁상행정 살처분 명령을 내리고 있는 걸까. 해당 살처분이 방역에 필요함을 설명하는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살처분에 과학적 근거는 없다

 
산안마을의 닭. 산안마을은 동물복지농장이자 2019년 경기도가 도입한 방역선진형 농장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산안마을
 
지난해 11월 26일 정읍 육용 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처음 발병한 이래 정부는 무조건적 3km 예방적 살처분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살처분 수는 342개 농장, 1897만 마리로(2021.1.15. 기준) 늘어났다. 살처분 된 동물 수가 무려 2천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류독감은 산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 경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전국 65개 농장(2021.1.17 기준)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확진됐다. 살처분 피해는 큰 반면, 조류독감 사태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확산 추세가 수평적 전파가 아닌 산발적 감염이라는 점에서 3km 예방적 살처분이 과도하다는 각계의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과학적 근거 없는 예방적 살처분 명령은 중앙 정부의 획일적 방침으로 인해 전국의 모든 농장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정부는 2018년 조류독감 SOP(긴급행동지침) 개정을 핑계로 발병 반경 3km 예방적 살처분만이 원칙이라고 주장하지만, 지침이 법령의 범주를 넘을 수는 없다. 현행법은 3km 예방적 살처분을 허용하기는 하나 무조건적 3km 예방적 살처분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3km 이내라 하더라도 살처분의 제외는 지자체와 협의하여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사실 이 부분은 SOP에도 마찬가지로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산안마을과 같이 합리적 논거를 가지고 살처분의 제외를 건의해도 이를 묵살하고 있다. 절차 문제를 거론하며 화성시나 경기도가 이를 건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예외는 없다’고 주장한다. 많이 죽이는 것이 방역을 잘하는 게 아닌데도 법령상 위험도 평가 등에 입각해 살처분 제외를 협의할 수 있는 부분마저 어기면서 동물 대학살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경시에 다름 아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초지일관 과학적 방역의 필요성을 강력히 어필하며 무한반복되고 있는 대량 예방적 살처분보다는 백신을 도입하여 살처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오랜 기간 주장해 왔다. 현재 정부가 언급하는 조류독감 SOP에 따르면 고병원성 조류독감도 항원뱅크를 구축하여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도록 기반도 마련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조류독감 예방 백신 도입을 꺼린다. 구제역 백신 또한 2010년과 2011년 사이 35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 대량 생매장 살처분 사태 이후 비로소 도입된 바 있다.   
 

매일 음성 판정에도 강제 살처분 위협 계속

 
산안마을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 명령은 산안마을 감염 여부 검사 실시 전 이미 발부된 상태였다. 살처분 명령은 12월 23일 떨어졌고, 산안마을의 860개 샘플 시료 채취는 25일 이뤄졌다. 간이 검사 결과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정밀 검사 결과에서도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모두 항원 음성인 것으로 지난 1월5일 최종 통지되었다. 매일 실시되고 있는 추가 검사에서도 양성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강제 살처분 행정대집행 계고장은 4차까지 발부된 상태다. 4차 계고장에 따르면 산안마을은 1월 17일까지 살처분을 이행하여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시 행정당국이 강제 행정대집행으로 살처분을 한 뒤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12월 28일 1차 계고장이 발부되고 나서 산안마을은 카라와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집행정지는 여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산안마을의 고병원성 조류독감 정밀검사 음성 판정 결과는 중앙정부의 무시무시한 살처분 철벽 방침 앞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산안마을은 부당한 살처분 명령을 세상에 알리며 살처분 명령 취소를 기다리고 있다. 잘못된 예방적 살처분에 반기를 들자마자 사료가 끊길 위기에 놓였으나 현장의 소식이 알려지며 가까스로 닭들의 사료를 들일 길을 마련했다. 예방적 살처분 명령 중지를 요청하는 긴급 탄원에 단 하루만에 2천여 시민이 동참해 준 영향력도 컸다. 
 
하지만 살처분 명령 취소는 간단하지 않다. 아니 아직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2017년 참사랑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에 내려진 잘못된 살처분 명령은 장장 3년에 걸친 본안소송 끝에 결국 취소되지 않았다. 대법원 재판 과정에서 익산시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에 위험도 평가는 없었으며, 익산시 스스로 위험도 평가에 따른 살처분 명령의 주체임을 부정하는 등 참사랑 농장에 대한 살처분 명령이 얼마나 가볍게 내려진 탁상행정에 불과했는지 수많은 내용들이 밝혀졌다. 그러나 사법부는 법에 명시된 위험도 평가 등이 실제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긴박한 상황’에서 ‘행정에 일부 미흡함이 있었을 뿐’이라고 축소해 버리며 탁상행정 살처분 남발의 손을 들어주는 과오를 범했다. 
 
당시 살아남은 5천 마리 닭들이야말로 해당 조류독감 종식 선언 이후에도 고병원성 조류독감에 감염된 바 없이 건강했던, 잘못된 살처분 명령의 살아있는 증인이었다. 이들을 살리기까지 참사랑 농장이 치러야 했던 가시밭길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랴. 참사랑 농장의 투쟁은 과학적 방역에 대한 요청이요, 무의미한 생명희생에 대한 경종이었다. 그리고 이제 산안마을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엉터리 동물방역 퇴출하고 과학적 방역 실시하라

 
방역선진형 동물복지농장으로 닭들을 조류독감으로부터 지켜온 산안마을이 정부의 예방적살처분 명령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제공 산안마을
 
조류독감 음성 판정을 받은 닭들을 왜 예방적 차원에서 죽여야 할까. 특히 최대 잠복기 넘어 음성 판정 받은 닭들까지 계속 살처분 하라는 건 예방적 방역이 아니라 동물을 무의미하게 살해해서라도 행정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편의와 책임 회피 때문이 아니던가. 이처럼 과학적 근거 없는 탁상행정을 방역이라고 불러도 될까. 
 
발병 농장을 벗어난 살처분 명령, 특히 반경 3km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지역의 방역심의회나 위험도 평가, 감염 여부 검사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 방역이기를 포기한 처사다. 게다가 살처분 대상을 과학적 근거 없이 확대하면서 ‘예외는 없다’고 아집하는 탁상행정 천태만상은 그만큼 국내 동물방역이 엉터리임을 역설할 뿐이다. 
 
현행법은 위험도 평가에 따른 살처분 명령과 살처분의 예외를 허용하고 있는 반면, 위험도 평가도, 살처분 예외도 없는 현실이다. 잘못된 살처분 명령을 취소하려면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취소하는 입법 운동이라도 해야 행정이 움직일 것인가. 산안마을에 내려진 잘못된 살처분 결정이 의식 있는 행정 속에서 부디 그보다 일찍 해결책을 찾길 바란다. 
 
 
글 / 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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