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 특집/ 미군폭격장 50년 매향리의 비극/ 전만규

미군폭격장 50년 매향리의 비극

매향리 미군 국제 폭격장의 명칭은 쿠-니 사격장(Gooni range)이다. 이 이름은 옛 지명 ‘고온
리’에서 유래한다. 이 마을에 미군 국제폭격장이 자리잡은 것은 54년부터의 일이지만 마을 앞바
다인 농섬과 윗섬, 구비섬에 폭격연습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6.25가 한창인 51년 8월부터였
다. 처음부터 미군은 주민들과 상의 없이 마을 앞(민가에서 7백m) 구비섬에 폭탄투하를 시작했
다. 그리고 전쟁 후 지금까지 50년 넘게 폭격연습은 계속되고 있다. 매향리라는 행정구역명으로
불리게 된 것은 마을앞 해변 언덕의 매화나무 군락이 봄이면 매화향기를 바닷바람에 실어 마을
안쪽까지 보낸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그 매화나무들은 소파(SOFA) 체결 직후인 1968년 육상 기
총사격장 조성 때 매화나무 군락의 모래언덕을 밀어버린 탓에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사격장 규모는 민가로부터 1천2백미터 거리의 농섬을 기점으로 반경 2천4백미터 이내(위험
지역) 6백90만평의 해상과 표적 목표물에서 민가가 겨우 5백미터 거리일 뿐인 육상 소형폭탄 투
하연습 및 기총사격장 50만평으로 이뤄진다. 이들 부지는 1968년 소파(SOFA) 체결 직후 국방부
를 통해 주민들로부터 강제수용됐다. 그리고 곧 미군에게 무상공여됐다.
매향리 폭격장 이름에 ‘국제’가 들어가는 이유는 태평양지구 미공군 사령부 산하 전폭기들 모
두가 이곳에 폭격연습을 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군기지에서는 물론이고, 멀리 오끼나와·괌·
태국·일본 등지에서조차 전폭기들까지 날아와 폭격훈련을 하는 것이다.
최근 매향리를 폭격하는 전폭기들은 F-16·A-10·아파치 헬기 등 11종이다. 폭격연습은 실전용
과 연습용 폭탄투하·로켓포와 기관포 사격훈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90년도 옛 소련 붕괴 전에
는 연중 5~6회 정도 연습용 원자폭탄 투하훈련까지 실시됐는데 매회 30기 가량이 투하연습을 했
다. 폭격은 연중 계속되며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60시간 연간 약 2백50여일 동안 진행
되고 있다. 1일 12시간 동안 편대별로 20분에서 30분씩 40∼50대의 폭격기가 날아와 4백∼6백회
의 사격·폭격연습을 진행하는 것이다.
매향리 앞바다에는 본래 구비섬·웃섬·농섬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거북이처럼 생겼던 구비
섬은 20여년간의 폭격연습으로 없어졌고 웃섬 또한 10여년간의 폭격연습으로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됐다. 각종 바다새들의 서식처였던 울창한 숲의 섬, 농도(濃島) 역시 20여년간의 폭격
때문에 당초 3천평 크기에서 1천평으로 줄어든 형편이다.
매향리 폭격장을 미군들이 포기하지 않고 고수하는 것은, 훈련중인 전폭기가 계기고장 등으로 불
시착할 수 있는 비행장이 가까이 있고 높은 산이 없으며, 안개 끼는 날이 드물고, 해상의 중형폭
탄 투하·육상의 소형폭탄 투하와 기총사격이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지리·지
형적 위치 덕에 조종사의 폭격 결과를 확실히 채점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매향리에는 표적지를 향하는 초음속 저공비행의 굉음과 기총사격의 폭발음이 항시적으로 존재한
다. 오폭과 유탄의 위협 또한 상존한다. 현지 미군과 군속들은 전폭기가 매향리 상공에 들어오
면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귀마개를 착용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전폭기의 살인적 오폭과 굉음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폭격소음은 공해 차원을 넘어 주민들에겐 고문과 같다. 전폭기가 주택 지
붕 위를 닿을 듯이 저공비행할 때는 조종사의 헬멧이 보일 정도다. 전폭기들의 살인적인 굉음에
아무런 대책없이 노출돼 있다. 주민들은 거개가 이명과 난청에 시달리고 있다. 다음의 사례들은
주민들이 자기 땅에서 얼마나 국민 대접 못 받으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삶을 살고 있는가
에 대한 비극적인 증거들이다.
△ 1999년 11월 08일 미 공군 폭탄투하 목표물인 농섬과는 직선거리 약 10킬로미터 정도에 위치
한 쌍섬에서 평소대로 매향리 어민들 30여명이 8척의 어선에 타고 조업중이었다. 미 공군 F16기
2대가 각 2회의 포탄(BUD-33*12Kg) 4발을 고의적으로 발사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KBS-TV 뉴스를 통해 1일 3회에 걸쳐 방송되었지만, 미군 측이나 한국 정부 그 누구도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 2000년 5월 8일 오전 8시 25분 A-10기가 매향리 상공에 들어왔다. 오전 8시 45분까지 농섬에
일반 연습폭탄(BDU-33)을 수십차례 투하연습을 한 A-10기에서 오전 8시 47분경 강력한 MK폭탄(약
2백30Kg) 6기가 투하됐다. 주한 미대사(보즈워스)의 말대로 오산기지에서 발진하여 군산 앞바다
직도에 투하하기 위하여 가던 중 엔진고장으로 균형을 잃을 정도였다면 매향리 폭격장으로 들어
오자마자 폭탄을 투하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폭기는 약 20분간이나 일반 연습폭탄(BUD-33)
투하훈련을 했다. 또한 전폭기의 엔진고장으로 나머지 실전용 폭탄의 투하가 불가피했더라면 폭
발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평소대로 1∼2기씩만 폭탄투하를 했어야 하
고, 투하지점을 농섬에서 바깥쪽으로 잡아야 했다. 그러나 당일 이 전폭기는 농섬에서 마을 안쪽
으로 한꺼번에 6기의 폭탄을 쏟아냈다. 일반 연습폭탄을 투하하던 20분 동안에 마을에 위험한 기
체상황을 타전해 마을 주민들에게 폭발충격에 대비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
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20분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군산 앞바다 직도가 아닌 대마
도나 하와이까지도 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전폭기와 미군
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을 가옥 대부분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지며, 임산
부가 놀라 하혈 하고 축사의 새끼 밴 젖소 수십마리가 유산을 하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사건이 확대되자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확실한 주민피해 보상과 전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를 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주한 미대사(보즈워스)가 조
선일보 기고문을 통하여 5.8사고로 매향리 주민들이 입은 어떠한 피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표
했다. 이 발표 전에 구성된 <한미합동조사반> 또한 보즈워스의 말을 받아 ‘아무런 피해가 없
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표를 했다. 살인적인 폭격연습은 재개되었다.
분노한 주민들은 현장에서 기자회견를 열었다. 이날 주민대표(전만규)는 미군의 행태에 격분, 철
조망을 넘어들어가 폭격연습중임을 알리는 황색깃발을 찢었다. 그리고 미군이 아닌 한국 사복경
찰에 의해 체포연행되어 구속기소됐다. 이에 공분을 느낀 전국민들의 여론이 비등했다. 이어 사
회 각계의 연대에 의해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 폐쇄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국
민대책위원회의 활동은 육상 기총사격 중지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주둔
군으로서 온갖 범죄를 자행하고도 사과 한 마디 없던 미군이 폭격연습을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나
마 중지하게 만든 것은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매향리의 연대투쟁이 반미감정으로까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8월 18일 국방부는 「매향
리 종합대책」이라는 기만적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달 후인 9월 20일과 21일 농
섬 위험지구 외측 매향 3리 마을 선착장과 어장에 BDU-33 포탄과 기총탄두가 날아들었다. 대체
한달도 안전을 보장 못하는 대책이 어떻게 대책일 수 있는가.
현재 매향리 주민들은 그간의 고통과 피해를 법적으로 확인받고자 민사의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
송을 진행중이다. 또한 매향리 대책위 지도부(전만규·최용운·추영배·김용환·김종일)가 군사
시설보호법 위반, 집시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 되었던 형사사건 1심 형량(징역 1년 집행유예 2
년, 징역 10월에 선고유예 등)의 무죄를 주장하는 법정투쟁을 2심 항소심을 통해 전개하고 있
다. 우리의 죄목은 자기 땅에서 평화롭게 살고자 했다는 것이다. 누가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었는
가.

전만규
매향리 미군국제폭격장 폐쇄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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