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 산양의 친구들

산양의 친구들


계미년 양의 해를 맞아 우리집 울 뒤 산양증식 시험장에서 산양 5개체를 관리하던 필자는 우리
야생산양으로 새해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려는 방송사와 신문기자들로 성화를 당했다.
요즘은 매스컴에서 종종 산양을 보도하여 일반인들도 산양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지만 필자가 처
음으로 산양에 관심을 갖던 10여년 전만해도 사진이나 영상자료는 고사하고 학자를 비롯한 전문
가도 산양의 실체를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산양은 전설적인 신비의 동물이었다.
필자가 처음으로 산양을 목격한 것도 그 무렵 우연히 동네 선배들이 밀렵한 뿔 달린 개(산양) 덕
분이었다. 당시 필자는 도시에서 귀향하여 민통선 근처에서 흑염소 방목을 시작했는데, 때마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림축산물 개방화 바람(우루과이 라운드)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신토불이’라는 구호와 함께 토종바람이 우리의 농촌을 휩쓸었다. 흑염소 농
가에서도 토종흑염소 보유 경쟁이 벌어졌다. 당시 필자는 서울에서 ‘흑염소 사육의 산업화 방
안’이라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축산대학 교수로부터 우리나라 토종흑염소의 선
조가 야생에 극소수 존재하는 산양일 것이라는 발표를 듣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필자는 산양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예전에
산양을 많이 보았다던 촌로는 산양은 사냥꾼과 천적의 눈을 속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암벽바
위 나무 끝에 뿔을 걸고 매달려 몸을 움츠려 바위 모양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는 신비의 동물이
라 했고, 동해안에 사는 어떤 한의사는 산양과 노루가 교잡하여 난 것이 사향노루라고 했다. 또
한 산양이 점프를 잘해 겨울철에 먹이를 찾아 휴전선 철책을 넘어 남하했다 봄에 북으로 돌아간
다는 예비역 하사관의 믿지 못할 목격담을 들은 것도 10년 전 그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인근 부대와 방목장 울타리 보수를 하고 있었는데, 동네 선배들이 동물 한 마리
를 마대에 넣어 머리만 나오게 하고 등에 진 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느 사
병이 그게 뭐냐고 묻자 어느 선배가 “음... 집나온 개 붙잡아 오는 거야”라고 태연히 대답했
다. 자세히 보니 분명 잘생긴 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뿔이 달려 있었다. 뿔 달린 개라…? 그
뿔 달린 개를 통해 필자는 처음으로 신비에 싸여 있던 산양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때 「문화재보호법」 등 엄격한 관계법으로 산양이 보호받는 야생동물이란 사실도 모르고 비
공식적으로 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방목하고 있는 흑염소와 같이 사육해 보
았지만 새끼는 나오지 않았고 노루와 같이 사육해도 사향노루는 탄생하지 않았다. 또한 산양은
넓은 흑염소 방목장의 2.4미터 팬스도 넘지 못했고 바위 끝 나무 위에 뿔을 거는 모습도 목격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산양이 천연기념물 217호이고 국내외적으로 귀중한 야생동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
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휴전선 근처 고산지대에 수십 마리밖에 생존하지 않는다는 기록을 접했
을 때는 왠지 모를 전율이 느껴졌다.
그 때부터 필자는 밀렵된 뿔 달린 개를 보면 그것이 이 땅에 존재하는 마지막 산양일 수도 있다
는 절박감에 조심스럽게 구입하여 방사하는 일을 반복했고, 이런 바보스런 행동은 아무런 죄의
식 없이 습관적으로 밀렵을 하던 선배들에게 곧 발각되었다. 그 후 그들은 마음이 동요되었는지
산양만큼은 밀렵하지 않는다는 묵시적인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과 어느 정도 신
뢰가 쌓였을 때 필자는 관계기관에 이 지역의 산양서식 사실과 실태를 알리고 보호 대책을 요구
했다.
사실 조사가 당국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산양을 연구 조사하는 정부 연구기관과 함께 산양 연구
를 하는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었고 미력하나마 공식적인 산양 증식 시험장 설치도 할 수 있
었다.
뿔 달린 개를 잡던 선후배도 든든한 동조자가 되어 <산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하 <산사모>,
www.sansamo.qp.to)의 모임의 모체가 되는 <산양의 친구들>이라는 동아리를 결성하는 변신을 이
끌어냈다. 그들은 현재 <산사모>의 기둥이나 다를 바 없다. 과거 행적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되
지 않는 지역정서를 고려하여 지금도 단체의 활동에 누가 될까 카메라 앞을 피하고 실명게재를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지만 분명 그들은 산양의 친구들이고 보호자임이 분명하다.
근래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곳에서 많은 산양이 목격되는 것은 이들의 업적이자 보람이다. 어느
날 한무리의 산양 흔적에 심취되어 족적을 따라가다 지뢰매설지대에 들어섰을 때 앞장서서 길을
터주던 이들의 모습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고 그 은혜는 평생 갚아야 할
필자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이 땅의 모든 야생동식물은 인간과 공생관계이고 먹고 먹히는 생태계에서는 생산자와 포식자의
관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종의 존속이 보장되고 멸종의 위협에서 해방되는 균형
과 조화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래 우리 고장에서는 농산물 야생조수 피해 보상제도가 시행되어 야생동물 보호론자들의 입지
를 세워주고 과거 뿔 달린 개를 잡던 사람들의 자존심도 살려주고 있다. 열악한 자치단체 재정상
황에서 정부도 시행 못하는 것을 조례를 제정, 우선적으로 시행한 것은 획기적인 환경정책 모범
사례로 정책 입안자 및 시행자에게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또한 이러한 일이 전국적으로 알
려지고 답습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야생동식물과 자연에 대한 겸허함을 갖고 인
식과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 뿔 달린 개를 사냥하던 사람들이 산양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변화된 것처럼.

정창수 jcs740@hanmail.net
<산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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