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 제 꼬리를 먹는 뱀

제 꼬리를 먹는 뱀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용은 깊은 샘과 연못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물은 모든 생명체
에게 자연이 내린 생명수이다. 물이 없이는 아무 생물도 살 수 없다. 동양의 용은 바로 이 생명
수를 지키는 상서로운 동물로서 때가 되면 하늘로 날아올라 신적 존재가 된다. 반면 서양에서 용
과 뱀은 악마의 상징이다. 서양, 특히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용은 모든 것을 모아 자기 안에
가두려 하는 탐욕의 화신이다. 하느님이 오염으로부터 지키라고 맡긴 생명의 샘을 마치 자기 것
인 양 주인 행세를 하며 온갖 횡포를 다 부린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것의 가치도 모르고 어디
에 소용되는지도 모르는 채 남에게 내어주는 법이 없다. 하느님 덕에 남에게 빌붙어 살면서도 막
무가내로 자기 삶의 방식에만 따르라 하며 심술을 부린다. 이런 용은 영웅이나 성자가 나타나 퇴
치할 때까지 계속 횡포를 부린다. 그뿐 아니라 거짓으로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하여
인간이 하느님을 거부하게 만든 것도 뱀이었다.
이런 뱀의 상징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굴 안의 황금 덩어리를 지키거나 바닷가 바위에 묶인 처
녀를 지키는 괴물의 이미지를 그대로 물려 받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 신화의 뱀은 오히
려 동양의 용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샘을 지키던 뱀을 죽인 테바이의 건국 영
웅 카드모스는 그 뱀을 죽인 죄를 씻기 위해 말년에 스스로 뱀이 되어 북쪽 나라로 갔다. 또 델
포이 신탁소를 차지하기 위해 뱀 퓌톤을 죽인 아폴론도 그 죄를 용서 받기 위해 제우스의 명령
에 따라 테살리아의 템페 강에 가서 몸을 씻고 와야 했다. 신의 신분으로 말이다. 그리고 4년마
다 그 뱀을 기념하기 위해 체육 제전 퓌티아를 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뱀은 대지 어머니 신 가
이아의 자식으로 땅의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했다. 이런 뱀의 이미지를 악마의 이미지로 바꾼 것
은 그리스도교였다. 그리스도교의 금욕적 기준으로 볼 때 삶에 대한 욕망을 상징하는 뱀은 부정
적인 동물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뱀은 삶의 원초적 욕망 상징
신화에서 뱀은 주로 먹는 것과 관계되는 삶의 아주 원초적인 기능을 상징한다. 삶이란 다른 생명
체를 먹는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뱀은 물 흐르듯이 스르르 기어다니면서 불과 같은 혀를 날름거
리며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배회한다. 뱀이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광경은 너무 적나라하여 섬뜩
한 원초적 본능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참혹하고 잔혹한 것이 어찌 뱀뿐
이랴. 사자가 얼룩말을 찢어 먹는 모습도 이에 못지않게 섬뜩하다. 다만 뱀의 기다란 근육질의
모습이 우리와 너무 달라 섬뜩함이 더 강하게 느껴질 뿐이다. 삶은 어차피 서로 잡아 먹고 먹히
는 일의 연속인데 공연히 뱀을 시비할 것도 없다. 우리의 식도도 음식물을 삼킬 때 뱀처럼 꿈틀
거린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봄이 가고 겨울이 오듯 세상의 모든 일은 돌고 돈다. 생명도 마찬
가지이다. 무릇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체를 잡아 먹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
하고 보기 좋게 차려 놓은 음식도 모든 재료는 방금 전까지 싱싱하게 살아 숨쉬던 동물이나 식물
이기 마련이다. 고급 음식일수록 재료가 신선해야 하지 않은가? 산다는 것은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의 연속이다. 프랑크톤을 비롯한 작은 생물을 새우나 작은 물고기가 잡아먹고, 초식 동물은
풀을 뜯어 먹는다. 새우와 작은 물고기는 더 큰 물고기가 잡아 먹고 초식 동물은 육식 동물에게
잡혀 먹힌다. 그리고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 인간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사람도 생물인지
라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이 죽으면 쉬파리가 알을 쓸어 구더기가 끓고 이어서 온갖 박테리
아와 곰팡이가 달려들어 맛있게 먹어치운다. 이렇게 자연은 먹이 사슬의 큰 고리를 완성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순환, 우로보로스
이런 먹고 먹히는 사슬의 큰 고리는 마치 제 꼬리를 물고 뜯어 먹으며 생명을 이어가는 큰 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신화에서 이런 뱀을 우로보로스(Ouroboros)라고 한다. ‘oura’는 그리스
말로 ‘꼬리’라는 뜻이고 ‘boros’는 ‘걸신들린 자, 게걸들린 자’란 뜻이다. 따라서 우로보
로스는 어원적으로 제 꼬리를 걸신들린 듯 먹어치우는 뱀이라는 뜻이 된다. 자연이란 이렇듯 자
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생명체를 잡아 먹고 또 다른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자
신을 잡아 먹히는 게걸스러운 우로보로스이다. 그러니 새삼 뱀이 잔인하게 먹이를 삼키는 것을
시비할 것도 없다.
세대와 세대 사이에도 우로보로스의 원칙은 성립한다. 앞선 세대는 뒷 세대를 위해 스스로 노화
하고 죽어간다. 생명의 진화에서 개체는 스스로 오래 사는 쪽보다 시간이 되면 스스로 죽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종족 보존을 위해 개체 보존을 포기한 것이야말로 지구상에 지금과 같은 수많은
종의 생명체가 번영을 구가할 수 있게 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 우로보로스는 아주 섬세한 균형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만일 자라는 속도가 먹는 속
도보다 빠르면 영양 실조에 걸려 죽을 것이고 먹는 속도가 자라는 속도보다 빠르면 머리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거대한 먹이 사슬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꼬리를 먹어치
우는 우로보로스의 머리 쪽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머리가 너무 게걸스러운 나머지 문제를 일으
키고 있다. 산업 사회 이후 인류의 발전은 빛의 속도이지만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자신의
고유한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이 속도의 차이가 혹시 머리만 큰 뱀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볼 시기가 되었다. 인류는 뱀의 이미지를 동양의 용과 같이 상서롭게 꾸밀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뱀처럼 게걸스러움으로 혐오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뱀
의 이미지를 원하는가?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깨달음의 문제다. 우리가 잡아 먹는 꼬리
는 결국 우리와 한 몸이기 때문이다.

유재원 jwyu@hufs.ac.kr
한국외대 언어학과 교수





겨울잠과 뱀

뱀은 외부 온도가 섭씨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소화불량에 걸리고 만다. 장기간 태양빛을 받지 못
해 몸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으면 소화효소가 분비되지 않아 먹이가 내장에서 썩어 바로 죽기 때
문이다. 그러니 먹이도 없는 추운 겨울이 되면 긴 겨울잠에 들 수밖에 없다. 변온동물인 뱀은
최장 8개월까지 물 한 방울 안 먹고도 견딜 수 있는데 이는 몸의 온도가 내려가면 신진대사가 거
의 정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식으로 긴 시간을 견디는 뱀은 장수하는 동물에 속한다. 수십
년을 사는 아나콘다나 보아뱀, 그리고 십년을 채우는 우리나라의 뱀들은 모두 개나, 물고기 등
다른 동물에 비해 오래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온도가 올라가고 먹이가 생기면 곧 활동기의
신진대사를 회복한다. 자료제공 : 심재한 박사(『꿈꾸는 푸른생명 거북과 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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