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 겨울철에 더욱 굶주리는 야생동물

겨울철에 더욱 굶주리는 야생동물



산을 오를 때 가뿐 숨을 가라앉히고 편히 휴식을 취할 때면 간혹 인기척에 놀라 뛰어가는 고라니
나 토끼와 같은 야생동물을 목격하게 된다. 더구나 운이 좋을 때는 멧돼지나 노루, 산양도 우연
찮게 마주치게 된다. 이런 야생동물을 볼 때면 언제나 가슴 속은 고동치는 심장소리로 차 오른
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삶을 눈 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
이 파괴의 사슬에서 벗어나 아직까지는 건재함을 확인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하지만 아쉽게
도 이런 소중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만큼 야생동물을 보기란 이
제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증가하고 있는 야생동물의 개체수
20여년 전만 해도 고향 마을의 야산에 오르면 쉽사리 토끼와 고라니 등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처럼 돼 버렸다. 야생동물 개체수의 이런 급격한 감소는 인간의 삐뚤어진 보신
문화와 쾌락, 탐욕에서 비롯된 밀렵과 수렵으로 매년 야생동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분
별한 개발에 따른 자연파괴로 인한 생태계 파괴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 십년 사이에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밀렵에
대한 당국의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도 많이 생겨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
고 있고 각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나서서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
런 긍정적인 변화 탓인 지 90년대 후반부터 다시 조금씩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
세다.

진정으로 야생동물 살릴 수 있는 방법 찾아야
겨울은 야생동물들에게 있어 수난을 겪는 시기이다. 산에는 먹이감이 없어지고 먹이를 찾아서 산
을 헤매야 하는 계절이다. 이 때문에 고라니나 토끼와 같은 많은 야생동물들은 밤마다 인가 근처
까지 내려와 수확과정에서 밭에 떨어진 배추 등을 뜯어먹기도 한다. 하지만 인가가 드문 백두대
간의 주요 산줄기에 사는 야생동물들은 폭설로 뒤덮인 산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탈진해 죽
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00년 3월 강원도 고성군 휴전선 철책과 맞닿은 고진동 계곡에서 목격된 산양들의 떼죽음
이 겨울철 야생동물의 먹이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천연기념물 217호로 세계적인 희귀동물인 산양이 먹이부족으로 한꺼번에 십여 마리가 죽어있는
것이 대구문화방송 취재팀에 목격된 적이 있다. 이곳은 군부대에서 겨울철 내내 산양들에게 먹이
를 공급해 주는 곳인데도 그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겨울철에 이런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야생동물들을 살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 바로 겨울철 야생동
물 먹이주기 운동이다. 동물보호단체들에 의해서 먼저 시작된 이 운동은 각종 텔레비전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자 홍보효과가 만점이라고 생각했는지
많은 중앙정부부처와 각종 지방자치단체들은 물론 군부대까지 경쟁적으로 나서서 매년 야생동물
먹이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운동이 단순한 홍보효과만을 노려 실제로 야
생동물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생색내기용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먹이주
기 행사에 수백 명이 동원되고 언론사에 먹이주기 행사와 관련된 보도만 나가면 그것으로 만족하
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먹이주기와 관련된 세밀한 계획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형식적
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 살고있는 야생동물들이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가축용 사료를 산에다 뿌려주는 일이나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상공에서 감자나 배추 따위를 던져 눈 속에 파묻혀 먹지도 못하게 하는 일
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또 먹이는 특정지역에 어떤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지를 파악해 그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줘야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먹이주기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초식동물이 많이
살고 있는 곳에 육식동물의 먹이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형식적이고 얼굴
내기용이 아닌 진정으로 야생동물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야생동물 먹이주기 행태 개선을 위한 두 가지 방안
때문에 필자는 현재 잘못된 야생동물 먹이주기 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보
고자 한다.
첫째는 산에 난 임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산림의 경영을 목적으로 산에 낸 임도를
타고 다니다 보면 많은 야생동물들을 볼 수가 있다. 이는 동물들이 임도를 많이 이용을 하고 있
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람이 산에 접근하기 용이하게 만든 임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먹이주기
에 많은 비용도 들지 않고 야생동물들이 꼭 필요로 하는 먹이들을 적절하게 공급해 줄 수 있다
고 생각한다.
둘째는 우리나라의 농촌과 산촌에 남아도는 휴경지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버려진 채 이용되지 않는 휴경지에 밀 등을 심거나 야생동물의 먹이가 될 수 있는 농작물을 심
고 가꾸는 것이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정부에서 보상비로 지원해 주면 된다. 휴경지를 이용하
는 이런 방법을 쓰면 야생동물들을 인가로 끌어들여 농경지에 더욱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고의 전환을 이룬다면 오히려 이 방법은 야생동물로부터 농경지를 보
호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가와 떨어진 곳의 휴경지를 이용해 먹이공급처
를 만들어 버리면 야생동물들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가 가까이 내려오는 일이 줄어들 것이
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 제공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야
겨울철 야생동물 먹이주기의 당위성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것이 있다. 그것
은 우리의 이런 행위들이 그들을 간섭하고 가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제공
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먹이주기를 하더라도 이들이 절대 야성을 잃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야생동물들이 사람에게 길들여져 야생에서 살아가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
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생동물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할 것이다. 어느 산에 어
떤 동물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그들은 어떤 생태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 없이는
자칫 야생동물 먹이주기는 무의미한 일회성 행사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
직 야생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많이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발주해서
이뤄지는 연구라고는 개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환경영향평가나 야생동물 서식 조사가 대
다수를 차지해 왔다. 또 학계의 연구도 이런 부분에 집중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이런 행태에서 벗어나 보다 능동적으로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연구 결과물들을 활용해 야생동물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복원하는 사업을 펼
쳐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생동물의 보고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야생동
물을 그냥 산에 사는 동물 정도로만 간주하지 말고 소중한 자원이자 자산으로 인식하고 우리들
의 건강한 삶의 척도로 받아들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심병철 simbc@tgmbc.co.kr
대구문화방송 기자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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