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마지막 젖줄 탐진강이 사라진다

탐진강은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버드나무골의 궁정산 계곡에서부터 55㎞의 짧은 여정이 시작된다. 발원지를 떠나 남동쪽으로 흘러 장흥으로 들어서면 여기저기 솟아있는 낯설은 가지산(506m) 봉우리를 만나 수줍은 듯 이리 저리 모습을 숨기고, 유치면 용문리에 닿으면 슬며시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 송정리까지 겨우겨우 다다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멋쩍을 정도로 그 모습이 초라하다. 유치면 소재지인 송정리에서부터는 역시 영암군에서 흘러오는 작은 유치천이 보태어져 그럭저럭 강의 면모를 갖추지만 그래도 굽이쳐 내달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하지만 어디 숨차게 내달리는 힘만으로 강의 쓸모를 잴 수 있으랴. 흘러 넘치지 않아도 들녘을 촉촉히 적셔주는 꿀같은 젖줄이 된다면, 넉넉한 가을걷이를 끝내고 땀방울을 훔치는 농부들에게 시원한 샘물이 된다면, 수정처럼 맑은 거울이 되어 아낙네들의 섬세한 빗질까지 비춰준다면 그게 가장 쓸모있고 소중한 강이 아니겠는가.
송정리에서 그런대로 제법 몸을 불린 탐진강은 강진만을 향해 다시 길을 재촉한다. 조금 내려가면 금사리와 단산리의 들판을 지나는데, 이제껏 불려온 물줄기를 구석진 논밭까지 서운하지 않게 풀어놓고, 조금 더 내려가 강진군에서 흘러오는 옴천천과 만나게 된다. 이렇게 다시 기운을 얻은 탐진강은 장흥읍내를 거쳐 강진만 남해바다로 소리없이 녹아들어간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제 얼마후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강이면서도 여정의 길목마다 넉넉하게 시원함을 베풀어주던 탐진강의 모습은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수달과 백로, 희귀 물고기들의 천국
탐진강은 남도 지방에서도 아주 보기드물게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강이다. 하류에는 국내에서 서식지가 10여곳에 불과한 천연기념물 256호인 무태장어가 살고 있다. 무태장어는 제주도의 천지연 폭포, 경북 영덕, 거제 신현면 등지에서만 발견되는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종으로 알려져 있다.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강줄기 중간 중간을 제방으로 막기 전만해도 상류인 가지산 계곡까지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은어가 올라와 섬진강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렸던 강이다. 물론 탐진강에는 지금도 1급수에만 산다는 꺽지, 칼납자루, 버들매치, 진몰개, 모래무지, 갈겨니 등 토종 희귀 민물고기들이 널려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31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으며 금강 이북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얼룩동사리도 발견되고 있다.
탐진강에는 특히 깨끗한 수질과 풍부한 물고기를 먹이삼아 단종위기에 처해있는 천연기념물 330호인 수달이 살고 있다. 단산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금도 밤에 그물을 쳐 놓으면 가끔 수달이 고기를 따먹고 그물을 찢어 놓는다"며 아직도 상당수의 수달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있게 주장했다. 
탐진댐 건설을 위해 실시한 환경영향평가에서도 탐진강 발원지에서 가까운 유치면 용문리 일대와 신월리 부근 강변의 바위절벽 등지에 수십마리의 수달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을 정도이다. 하류지역에 해당하는 부산면 일대에서도 서식흔적이 발견되는 등 탐진강 전역에 수달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탐진강에서는 황소개구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부산면사무소의 한 직원은 “수달은 사람의 발길을 아주 싫어하고 물고기가 많은 1급수의 하천에서만 살고 있다"며 “댐이 생기면 환경변화에 민감한 수달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85%가 산으로 둘러싸인 탐진강 유역은 다행히 농공단지와 축사단지는 물론 큰 마을도 형성되지 않았다. 다만 십여 가구의 몇몇 마을들이 옹기종기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탓에 탐진강은 본래의 깨끗함을 간직할 수 있었고, 인근 생태계 또한 건강함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탐진강 상류지역 산자락에는 요즘도 멧돼지와 주민들 사이에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간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중상류지역인 유치면 늑용2구 금사리에는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해마다 수백마리의 백로와 왜가리가 온통 마을을 뒤덮는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아주 짜증이 날 정도로 백로와 왜가리들이 야단법석을 떠는디, 많을 때는 수천마리도 넘을 거지라. 갈때가 없는지 요새는 새들이 더 늘었당께. 사진사들하고 새박사들도 얼마나 찾아 오는지..." 이 마을에 사는 이용주(59)씨의 귀찮은 듯한 말투에는 오히려 자랑스러움이 역력하게 배여 나온다. 백로와 왜가리의 집단도래지인 이곳은 현재 전남도에서 조수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이처럼 생태계의 천국 탐진강은 비록 수량이 적어 강줄기의 흐름이 시원스레 이어지지 않지만 비가 잦은 지역이라 강물은 언제나 일정한 깊이를 유지하고 있다. 영산강, 섬진강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젖줄로 꼽히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환경영향평가
탐진댐 건설이 계획된 것은 지난 86년 9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설부는 사업계획 및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공사를 추진하려 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당초 계획을 무기한 유보했다. 하지만 전남지역의 상수원인 영산강의 오염으로 인해 목포지역이 식수난에 시달리자 이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지난 94년 6월 건설부와 수자원공사는 또다시 탐진댐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은 이에 맞서 ‘생태계 파괴와 농작물 피해, 지역경제의 침체 등이 우려된다'며 댐건설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고, 군의회는 탐진댐건설 반대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탐진댐 건설을 둘러싸고 정부와 지역 주민들간의 갈등이 점점 불거지는 가운데 95년 8월에는 자치단체의 공무원들까지도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건설교통부가 ‘지역 주민의 여론이 담긴 의견서를 8월 말까지 통보해 달라'고 장흥군에 협조 공문을 보내자 군수가 ‘이를 보류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당시 주민들의 반발을 자극했던 요인중에는 정부의 밀실행정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정부는 그동안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우려해 86년 타당성 조사에서부터 95년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채 베일속에 사업을 추진해왔던 것이다. 정부는 민선자치시대에 접어들면서 뒤늦게 이를 공론화하고 수차례 주민 설명회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주민들의 반대 시위로 번번히 무산되고 말았다.
96년도에 접어들어서는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싼 공방이 시작됐다. 당시 <탐진댐 건설반대 투쟁위원회>는 환경영향평가 초안작성을 맡았던 용역팀을 고발한 것이다. 용역팀이 영향평가초안을 작성하면서 문화재를 비롯해 연안 어장오염 등의 현황조사나 예측, 환경오염 저감방안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게 주민들의 주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평가서 초안이 다른 자료 일부를 그대로 도용했고, 당초 96년 5월 장흥군에 제출된 초안에는 환경영향평가 참여자가 38명이었던 것이 6월에는 51명으로 변경됐으며, 평가에 참여하지도 않은 교수 명단이 버젓이 올라와 있는 등 환경영향평가서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한 주민과의 전화통화만을 믿고 ‘현지주민 80%가 댐 건설에 동의한다'는 등의 보도자료를 낸 것도 화근이었다. 
이렇게 탐진댐 건설을 놓고 10년여의 진통을 겪고 있지만, 이제 주민들은 댐 건설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수몰예정지역인 유치면에는 전남도 탐진댐 건설지원사업소 직원들이 마을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보상가를 계산하기에 바쁘고, 주민들은 탐진댐 건설 반대 움직임 보다는 마지막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겠다며 <생존권보장대책위>를 결성해 보상금의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생태계와 문화재, 주민생존권을 
수장시켜 버릴 탐진댐

지난 11월 11일, 본댐이 들어서는 장흥군 부산면 지천리 지동마을에는 2백여명의 수몰지역 주민들이 모였다. 주민들은 사전 통보도 없이 지상물 감정을 실시한다는 소식에 격분한 것이다. 이날 주민들은 “같은 처지의 다른 지역에 비해 보상이 불리하게 진행된다"며 “비닐하우스, 철골조 원예시설, 기타 꽃과 유실수 등 지상물에 대한 영농보상 합의 없이는 감정을 거부한다"고 주장해 결국 감정평가는 실시되지 않았다.
수자원공사측은 ‘지난 7월 조사에 의하면 수몰 예정지인 장흥군 유치면과 부산면 12개 마을의 비닐하우스, 철골조 원예시설, 다년생 수목 등 3백46개소 가운데 1백20개소(34.6%)만이 댐예정지 고시 이전에 조성되었고, 나머지 1백55개소(44.8%)는 댐고시 이후에 설치 식재된 불법 시설. 나머지 71개소는(20.5%)는 설치시기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하며, 개정된 보상에 관한 건설교통부령에 의하면 수몰예정지역으로 공고 또는 고시된 때에 실제로 재배하고 있는 작물만 보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영농행위의 하나인 비닐하우스가 단지 고시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불법이라면 우린 뭘 가지고 먹고 살라'며 현실에 맞는 영농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영농보상을 제한하면 주민들의 보상액으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해도 지금과 같은 농지와 생활터전의 확보는 어림도 없는게 현실이다. 강신천(64)씨는 “궁색하고 쥐꼬리만한 보상액을 현실화하지 않으면서 꽃이나 유실수 재배 등을 투기성이 있는 불법행위로 몰아가는 것은 수몰민들의 생존권을 내팽개친 강도짓"이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탐진댐 건설 계획에는 생태계와 주민들의 생존권 파괴는 물론 남도의 문화유산도 수장시킬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담수지역으로부터 불과 5백여미터의 거리에는 국보 2점과 보물 8점 등을 보관하고 있는 보림사가 있다. 이들 중 국보 44호인 보림사 삼층석탑과 석등, 보물인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와 창성탑 등은 탐진댐 건설로 훼손이 우려되며, 특히 월인석보와 임진란 이전의 목조 조각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천왕산(四天王象)은 습기에 치명적이다. 보림사 외에 수몰되는 문화재에는 강성서원, 16기의 고인돌과 고분군, 그리고 도요지 등이 포함돼 있지만 구체적인 보존계획 없이 모조리 수장시킬 예정이다.

한번 잘못 지은 댐, 대대로 애물단지
최근 일본 니가타현에서는 댐 예정지에 검은독수리가 산다는 이유로 건설을 보류시켰다. 미국에서는 90% 정도 진행된 댐건설이 민물고기 1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수년간 중단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댐 건설의 무자비함을 반증해 볼 수 있는 가슴아픈 대목이다.
‘댐공화국'이라는 오명 속에 국토의 강줄기와 자연하천의 모습은 기억속에서조차 영원히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충주댐, 소양댐, 안동댐, 대청댐 등 거대한 다목적댐만 10여개, 오는 2001년까지 남강, 밀양, 탐진댐 등 또다시 6개의 댐을 건설할 예정이고, 2011년까지 계획된 것을 모두 합하면 우리나라에는 30여개의 댐이 들어서게 된다. 
댐을 막는다고 해서 홍수가 조절되고 용수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댐 상류지역은 홍수 때마다 고질적인 물난리를 겪어야 하고, 밑바닥에 쌓인 퇴적물과 흐름이 막혀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강물은 심하게 오염돼 쓸모는 오히려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96년 여름에 무너져내린 연천댐과 84년 수급대책이 급하다는 이유로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세워진 임하댐의 붕괴우려 등이 댐 건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좋은 예일 것이다. 한번 잘못 지어진 댐은 허물수도, 살릴 수도 없는 골칫거리의 애물단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60년대 이후 국토의 구석구석까지 불어닥친 개발열풍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도의 마지막 강줄기이자 생태계의 보고 탐진강, 본댐이 들어서는 지동마을의 보상만 합의되면 금방이라도 포크레인이 들이닥칠 판이다. 남도의 마지막 젖줄은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가고 있다. 

글 / 김달수 기자
사진 / 이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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