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을 선택할 진짜 권리 _ 정남순



‘어떻게 이런 일이…’ 지난 3월 보도된 울산시의 정수장 수돗물 수치조작 사건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그 기사는 울산시가 2001년도부터 범서정수장 등에서 붕소 등의 유해물질이 먹는 물 수질기준치를 초과하였는데도 기준치 이내인 것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4월에는 마침내 환경연합의 조사와 울산시의 자체 감사 결과에 의해 울산 수돗물 정수장의 검사결과는 은폐되거나 조작됐다는 주장이 사실로 밝혀졌다. 농소정수장 원수에서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의 일종인 테트라틀로로에틸렌과 사염화탄소가 기준치를 넘었으나 불검출로 보고됐고, 범서정수장 원수에서는 붕소가 기준치를 초과했으나 자료를 조작, 기준치 이하로 낮추었다는 것이다.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행정의 극치를 보는 느낌이다.

수돗물 수치조작은 그렇지 않아도 불신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돗물에 대한 우리의 최소한의 믿음마저 무참히 무너뜨리고 말았다. 내가 날마다 마시는 수돗물이 비록 약이 되는 물 정도는 아니어도 적어도 해가 될지도 모르는 물은 아니어야 할 것 아닌가. 적어도 그 정도의 믿음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믿음조차 가져서는 안 된다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심지어 희미한 믿음조차 깨끗이 포기하도록 강요당한 셈이다. 우리는 단지 경악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생각, 그것이 울산 수돗물 소송을 시작하는 이유다.


수돗물 소송, 희망을 갖자
울산시의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결국 피해주민들은 울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전체 피해주민은 2만8천여명에 이르지만 현재 400여명의 피해주민이 원고로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이다. 승소할 경우 이어지는 파급효과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송의 승패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유사한 사건을 참고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수돗물과 관련해 과거 두 건의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하나는 수돗물의 원수인 낙동강 수질을 문제 삼아 부산 시민들이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건이고 다른 하나는 두산그룹의 낙동강 폐놀 무단방류에 대하여 대구시민들이 두산그룹과 대구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낙동강 원수 수질의 건은 기각됐고 페놀 건은 조정으로 종결됐다. 조정으로 끝나지 않고 법원에서 끝까지 책임소재가 밝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어쨌든 두산그룹과 대구시가 스스로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당시 재판부는 낙동강 수질 소송이 기각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국가와 부산시는 상수 원수인 낙동강 수질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지키지 못했고 이는 의무위반으로 명백하게 위법하다. 따라서 시민들이 수돗물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당연하고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인정된다. 그러나 국가에게는 책임이 없다’ 잘 나가다가 끝머리에 이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좀 더 자세한 이유를 보자. ‘국가에게 상수원의 수질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지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국가는 책임이 없다.’ 이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부산 시민들도 참을 수밖에 없었으니 울산 시민들도 참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다행히도 울산 수돗물 사건은 부산의 경우와는 다른 점들이 있다. 부산의 경우 원수의 수질이 문제가 되었지만 울산은 정수장 수질이 문제라는 점, 수치조작이라는 고의적인 은폐행위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앞의 판결문과 같은 이해하기 힘든 그런 판결은 나오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수돗물을 선택할 진짜 권리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정수기와 생수에 드는 추가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환경·보건적인 측면에서는 원수의 수질이 개선되고 먹는 샘물 공급을 위한 과도한 지하수 개발과 이로 인한 고갈을 방지할 수 있다.

누구나 좀 더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가 있다. 더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나 생수를 선택할 권리도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수돗물을 마실 수가 없어 정수기나 생수를 구입해야만 한다면 그건 분명 선택이 아니라 강요다. 우리에겐 수돗물을 선택할 진짜 권리가 필요하다.


정남순 jns@kfem.or.kr
환경법률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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