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역 수돗물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_ 윤기웅



지금 당장 어떠한 피해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수수방관하다가 1,4-다이옥산이 체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할 때
그 사태의 심각성과 파장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물을 직접 정수하고 공급하는 담당공무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수돗물을 안전하다고 믿고 마십니까?”


1991년 3월 16일, 구미공단내 두산전자에서 페놀원액 30톤이 불법 방류되어 낙동강으로 그대로 흘러든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낙동강 페놀사태’ 때, 수돗물을 마신 많은 주민들은 복통을 호소했으며 임산부는 기형아를 출산하거나 유산하는 등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당시 환경처와 대구시는 사건의 철저한 원인규명과 피해확산 예방보다는 사태수습에만 급급했고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올 6월, MBC는 『시사매거진2580』을 통해 영남지역 정수장에서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이 검출된 사실을 보도했다.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이미 2000년부터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 검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쉬쉬한 채 방치해 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시민 건강에 미칠 위해성을 알고도 이를 널리 알리지 않은 당국의 이번 행태 역시 직무유기를 넘어 공중 건강에 대한 공권력의 테러라 할 만하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안일한 태도는 변한 게 없는 듯 하다.

수돗물, 안전하다고 믿고 마십니까?
“깨끗한 수돗물, 안심하고 그냥 드십시오” 수도꼭지에서 바로 물을 받아 마시고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을 마신 양 환한 표정을 짓는 시청 공무원의 모습, 바로 우리가 보았던 공익광고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 광고가 텔레비전에 방송되던 그 때에도 수돗물은 이미 1,4-다이옥산에 오염된 것으로 판명나 있었다.

2000년부터 낙동강 수계 정수장에서 검출된 1,4-다이옥산의 농도는 이미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기준인 50㎍/ℓ(리터당 마이크로그램)을 넘어 70.1㎍/ℓ이라는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했고 2001년도에는 네 배가 넘는 217.6㎍/ℓ이라는 치명적인 수준까지 치달았다. 그러나 대구시는 1,4-다이옥산이 수질검사 항목(법정항목 55개, 자체관리항목 71개)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여 상부에 음용수로 안전하다는 거짓 보고를 해왔으며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욱 통탄할 일은 환경부가 ‘미량유해물질 위해도를 평가한 결과 먹는 물로서 안전하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국무회의에도 그렇게 보고했다는 사실이다.

1,4-다이옥산과 같은 수질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하루이틀만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어떠한 피해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수수방관하다가 1,4-다이옥산이 체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할 때 그 사태의 심각성과 파장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물을 직접 정수하고 공급하는 담당공무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수돗물을 안전하다고 믿고 마십니까?”

왜 하필이면 낙동강 수계에서?
1,4-다이옥산이 하천수에서 검출된 것은 1995년부터 1997년 3년간 일본 카나가위 지방의 강물에서 0.1∼16.0㎍/ℓ정도가 검출된 사례를 제외하고는 없다. 더구나 이렇게 고농도로 검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경기를 비롯한 타지역에서는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하필 영남지역에서만 1,4-다이옥산 농도가 이처럼 크게 나타나는 것일까?

주원인은 원수인 낙동강 수계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구미공단의 합성섬유공장이다. 1,4-다이옥산은 주로 합성섬유의 일종인 폴리에스테르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화학반응의 부산물로 발생한다. 당국은 배출수 검사 기준도 없이 합성섬유공장에서 나오는 공단 폐수를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그냥 내보내도록 방치하고 있었고 이렇게 흘러든 오염물질은 미처 정수되지 못한 채 각 가정으로 들어갔다. 영남 지역의 섬유, 화학 공장들이 계속해서 가동되고 있고 그에 따른 오폐수들이 무방비 상태로 계속 방출된다면 앞으로 1,4-다이옥산 뿐 아니라 더 많은 유해물질이 문제를 일으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페놀과 비슷한 독성을 가진
1,4-다이옥산


1,4-다이옥산은 페놀과 비슷한 독성을 가졌고 발암물질로 의심되는 유독성 물질로 WHO 산하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정한 2B 그룹에 속한다(디디티, 납 등이 이에 해당). 무색 액체로 산업용 용매 또는 안정제로 쓰이며 섬유제조, 합성피혁, 의약품, 농약, 전자제품, 화장품 등의 제조에 주로 사용된다. 이번 사례처럼 화학반응 부산물로도 발생한다. 이 물질은 동물실험에서 발암을 일으키고 디엔에이 변이를 일으키는 물질로 판명됐다. 장기적으로 흡입하면 1차적으로 폐와 장에 변성을 일으키고 2차적으로 신장과 간장의 괴사를 불러온다. 고농도 노출의 경우 중추신경의 장애를 일으켜 의식불명이나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
끓이면 안전하다고?
수돗물 파동이 일어난 후 대구시는 수돗물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물을 끓여 1,4-다이옥산이 얼마나 제거되는지 알아보는 끓임 실험(Boiling-Test)을 했다. 대구두류정수장의 물을 100밀리리터 비커에 넣고 5분 동안 가열, 남아있는 1,4-다이옥산의 양을 알아본 결과 수돗물을 끓였을 경우 최소 86퍼센트에서 100퍼센트까지 1,4-다이옥산이 제거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끓임 실험 자체가 신빙성이 없는 것은 전문가들의 1,4-다이옥산에 대한 견해에서 알 수 있다. 1,4-다이옥산은 활성탄 흡착으로는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없고 증류방법도 1,4-다이옥산이 상대적으로 높은 끓는점을 가지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정수 및 폐수공정에서도 기존에 사용되어온 오존, 과산화수소, 염소 등 산화제들과의 반응성이 매우 낮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1,4-다이옥산은 그 물리적 성질과 화학적·생물학적 안정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처리가 어렵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이 같은 조건에서 검증되지 않은 끓임 실험의 결과로 진상을 호도하는 것은 여전히 대구시민의 안전을 뒷전으로 한 처사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수돗물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우선 원수 자체의 오염원을 줄여야 한다. 안전한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배출원에 대한 검역을 활성화하고 정수 처리되지 않은 폐수를 내보내는 사업체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등 관계법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물론 공장 스스로가 양심적 자세로 친환경적인 운영을 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둘째, 유연성 있는 수질 검사를 해야 한다. 4년 전부터 1,4-다이옥산이 수돗물에서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시는 그것이 수질검사 항목 안에 들지 않는다 하여 아무런 손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수질검사 항목 안에 있든 없든 1,4-다이옥산이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시민들에게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이치에 맞다. 페놀 또한 큰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수질검사 항목에 추가됐고 1,4-다이옥산도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6월 항목에 추가됐다.

셋째, 상수도 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구시와 상수도사업본부에 대한 대구 시민의 신뢰도는 이제 거의 마이너스 수준이다. 시민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먹어보고 문제가 생기면 대책을 세울 것인가? 수돗물의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조금이라도 빨리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상수도 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주마다 또는 달마다 시행되는 수질검사의 결과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시민에게 제공하는 것뿐이다.

우리 물, 우리가 지키자
오염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수돗물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대체 음용수를 사용하고 수돗물은 불쾌하고 꺼림칙하지만 생활용수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번 1,4-다이옥산 사태는 물에 대해 무관심했던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대구시가 우리에게 안전한 수돗물을 공급해 주리라 믿고 가만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권리와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구시민들이 대구시의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길만이 좀 더 나은 정책이 시행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환경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1,4-다이옥산 파동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시민들에게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민들의 역할은 이제 그것을 어떻게 감시하고 참여하는가에 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뿐이다.


윤기웅 namonuri@kfem.or.kr
대구환경운동연합 환경조사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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