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가리라 / 명호

4대강에 운하를 만들어 모두 연결하겠다는 한반도운하 계획이 발표되던 지난 겨울, 성직자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을 만들고 김포 애기봉을 출발했다. 한강 - 팔당 - 남한강 - 달래강 - 영강 - 낙동강 - 영산강 - 새만금 - 금강을 거쳐 다시 서울까지, 먼 길을 함께 걸었다.

순례의 길 소풍의 길
순례길은 애초 거창한 계획과 구호를 가진 여정이 아니었다. 이 길은 ‘한반도운하’라는 미망의 계획이 추진됐던 배경을 찾아보고 그 속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제일주의 가치관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 모색의 길이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2월 12일에 시작된 발걸음이 5월 24일 서울 보신각으로 돌아오기까지 103일이 걸렸고, 두 발로 걸은 거리는 3천 리에 달하며, 그 길에서 우리 강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3만여 명의 소중한 마음이 함께 만나 참회와 성찰의 기도를 드렸다. 석탄일도, 부활절도 길 위에서 맞이했으며, 개신교와 불교, 원불교와 천주교가 비록 서로 다른 예복을 입었지만 한 천막에서 함께 하며 서로의 발 냄새를 맡았다. 모두 강의 평화를 기원했고, 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수많은 지역주민들을 만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지혜를 나누었다.
운하 계획의 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작된 순례였으나 하루 이틀 걷다보니 운하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강들이 전해주는 수많은 이야기에 감동받던 날들이었다. 마치 소풍 가서 보물찾기에 나선 어린이와 같이 개비리길, 파진산길 등 우리 산하 곳곳의 비경을 만나며 설레는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생명의 소리를 전해 듣다
이명박 대통령은 낙동강과 영산강 일부 구간을 보트를 타고 움직이며 강이 썩어 하수구 같다고 조롱하고, 이재오 전 국회의원은 강을 살리는 길은 운하밖에 없다는 오만한 발언을 했다던가? 하지만 순례단은 같은 길에서 해와 달, 바람과 별, 비와 눈, 갈대와 버드나무, 물고기와 철새 등이 만들어놓은 신비로운 생명을 보았다. 순례단이 두 발로 확인한 어느 곳에서도 자연을 뒤엎어 시멘트 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순례단은 막힘 없이 흐르는 강물이 전해주는 수많은 생명의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물론 때때로 골재채취 현장과 각종 폐수로 탁해진 물길과 마주치기도 했다. 갑문에 가로막혀 흐름이 사라진 서울의 강은 강이라 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대구 인근에서는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쏟아지는 금호강과 진천천이 낙동강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보았다. 또 부산의 하수구에서는 끊임없이 검은 폐수가 낙동강에 유입되고 있음을 목격했고, 영산강은 4개의 댐에 상류가 막힌 채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나오는 처리수에 의해 간신히 유량을 유지하고 있음도 목도했다. 금강 역시 도시를 하나 지날 때마다 만나는 검은 폐수가 끊임없이 흘러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로 향하던 낙동강, 영산강, 금강의 물길은 인간이 막아놓은 하구둑에 가로막히고야 말았다.

사람의 길 자연의 길
순례단은 이렇게 자연이 만든 유산을 보았고 그 소중한 자연유산을 망치는 우리 사회의 어리석음을 만났다. 강물이 강물답게 흐르게 하는 것은 갑문과 리프트가 아니다. 강물이 강물로 흐르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온전한 자연의 모양새일 때 가능하다. 아무런 가치 없이 인식되는 모래와 자갈도 강물에 생명력을 넣어주고 있었으며 인간이 만든 폐수를 정화시켜주고 있었다.
순례단은 자연에서 느꼈던 수많은 감동을 인간이 만든 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높은 빌딩과 빠르게 이동하는 자동차 무리에서는 자연이 전해주던 감동이 없었다. 인간이 만든 욕망의 산물에는 자연에서 들리던 생명의 소리가 없었으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는 자연에서 전해오던 평화를 누리기 힘들었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부당한 세상을 향해 타오르는 촛불과 분노의 함성이었을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차단하는 시설로 가득할 운하는 반생명, 비인간화의 상징이다. 물질을 최상으로 여기는 인간의 무지와 탐욕의 산물이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으며, 자연에게는 자연의 길이 있고, 강물에게는 강물이 가야 할 길이 있다. 사람의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되듯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흐르는 강물도 그 길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자연이 자연답지 못한데 그 속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어찌 사람다울 수 있을까.
순례단의 1차 순례는 보신각에서 끝났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르려는 순례의 길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명호 green.mh@gmail.com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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