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군의 길냥이 급식소에는

 
 
아파트 1층이라 베란다로 손님들이 종종 드나듭니다. 
 
그중에서도 고양이들은 우리집 베란다 단골손님입니다. 
 
우리집 찾아온 손님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물 한 그릇, 사료 한 그릇을 늘 준비합니다.
 
벌써 5년째네요.  
 
거쳐 간 녀석들이 한 10마리 정도 되는데 사진으로 다 기록하지 못해 황금처자는 뒤늦게 뒷북칩니다.  
 
 
우리집 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게 만든 주인공, 뻔순이입니다. 
 
뾰군이 황금처자와 만나기도 전에 우리집 베란다에 불쑥 들어와 새끼를 낳고 베란다를 차지한 고양이죠. 
 
자리까지 내주고 사료까지 사서 밥까지 챙겨줬는데 어찌나 예민하고 성격이 고약한지
 
조금만 시끄러워도 하악질을 해대고 
 
황금처자가 심어놓은 텃밭에 물을 주는 것조차 새끼들에게 물 튀긴다며 성질을 부렸죠. 
 
그 뻔뻔함에 이름도 뻔순이라고 불렀죠.
 
뻔순이와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올릴게요.    
 
 
뻔순이가 가고 나서 몇 달 후 베란다 급식소를 찾은 두 번째 고양이입니다. 
 
바둑이를 닮아 '둑이'이라 불렀던 녀석인데 뻔순이 새끼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밥을 먹고 바로 가지 않고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뾰와 한참을 놀고 갔드랬죠. 
 
수컷임에도 어찌나 뾰에게 애교를 부리던지,
 
근데 뾰군이 너무 시크해 가끔은 애처로워보였습니다.   
 
 
급식소의 또다른 단골손님 '장이'입니다.
 
급식소를 찾는 손님 중 가장 덩치가 커 대장 같다 하여 장이라 불렀죠.
 
둑이는 장이가 급식소를 찾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저 눈빛 느껴지시나요?
 
"힘으로는 당할 수 없으니 대신 쫓아내달라 야옹"  
 
 
둑이와 같은 시기에 뾰군의 급식소를 찾아온 고양이 '룩이'입니다.
 
둑이와는 남매로 추측되는 고양이인데 둑이와는 달리 참 소심하고 겁이 많았어요.
 
신기한 건 뾰군이 룩이가 밥 먹을 때면 마치 지켜주는 양 가만히 있었다는 거. 
 
혹시 고양이들도 외모를 따지나요? 
 
 
나비(뒤)와 랑이.
 
나비는 누가 키우다가 버렸는지 처음 급식소를 찾아왔을 때 목줄이 있었어요.
 
우연히 동네 아이에게 녀석의 사연을 들었는데 친구가 새끼 때 나비를 데리고 갔다가(아마도 납치일듯) 
 
좀 크고 털도 날리니깐 부모님이 갖다 버리라고 했대요. 그래서 버렸다네요.(확 그냥)
 
더 열받는 건 버리더라도 목줄은 풀어주던가 바짝 죄어놓은 목줄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죠.
 
나비는 룩이의 새끼입니다. 
 
룩이가 새끼 다섯마리를 낳고 한동안 함께 밥먹으러 다녔는데 이 녀석만 남았어요.
 
두 녀석 모두 뾰군을 참 좋아라 했죠.
 
산책을 즐기는 낭만고양이 뾰군이 산책을 나갈 때면 뾰군이 귀찮아할 정도로 쫓아다녔지요.  
    
 
최근에 단골이 된 까망이입니다.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녀석인데 정말 특이한 건
 
이 녀석이 베란다를 찾아오는 건 급식소를 이용하려는게 주목적이 아닌 듯.
 
베란다에 오자마자 화초인양 화분에 앉아서 '야옹야옹'하며 뾰를 불러냅니다.
 
그리곤 한참동안 뾰와 신경전을 벌입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저도 뾰군도 참 황당합니다.  
 
 
그리고 한 마리가 더 있습니다.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냥이인데 어찌나 예민한지 밥 먹다가도 사람만 보이면 도망갑니다.
 
몇 번을 그리 하더니 요즘은 깊은 밤에 몰래 와서 먹고 갑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뾰군은 급식소에 고양이들이 오면 "응 야아 응 야오"(?) 뭐 이런 소리를 내며 손님이 왔다고 알리거든요.
 
또 도망갈까 싶어 몰래 숨어 지켜봅니다.
 
어찌나 새끼들을 챙기는지 새끼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지키고 섰다가 새끼들이 다 먹고 내려가면 그제야 남은 사료를 먹습니다. 
 
세 달 정도 봤으면 이제 친해질 때도 됐는데 녀석 참. 
 
그래도 빈 그릇 보면 왔다 갔구나, 잘 살고 있어줘 고맙습니다.  
 
 
 
뾰군의 급식소를 거쳐간 고양이 중에는 별이 된 녀석도 있고 다른 곳으로 옮겨간 녀석도 있어요.
 
길고양이들 수명이 3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인연들이 길게 가지 않네요.
 
그래도 뾰군과 황금처자는 슬퍼하지만은 않아요. 
 
뾰군과 사료 한 그릇, 물 한 그릇 준비해놓고
 
이 봄날, 뾰군의 급식소를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by 황금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