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빌려주는 도서관

씨앗도서관 입구. 2015년 개관식 행사 때 사용했던 현수막과 아낌없이 씨앗을 주신 할머니 사진과 씨앗들이 전시되어 있다
 
2015년 2월 28일 우리동네에 ‘홍성씨앗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일반 도서관은 주로 책을 읽거나 빌릴 수 있는 곳이다. 이에 비해 씨앗도서관에서는 ‘씨앗’이 주인공이 된다. 여러 종류의 씨앗을 볼 수 있고, 씨앗에 관련된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씨앗을 빌려 갈 수도 있다. 물론 빌려 간 씨앗은 잘 뿌려서 꽃이 피고 난 후 열매를 맺으면 다시 씨앗으로 반납해야 한다. 말 그대로 책 대신 ‘씨앗을 빌려주고 반납하는 도서관’이 바로 씨앗도서관이다.
 
씨앗도서관이 생기기까지에는 많은 고민과 오랜 준비가 있었다. 올해로 여섯 살이 되지만, 준비 단계부터 계산해 보면 열 살이 된다. 무슨 일이든 그 분야에 대해 제대로 아는 데는 최소한 10년은 해 봐야 한다고들 흔히 말하는데, 올해로 10년이 되는 씨앗도서관은 제 할 일을 다 하며 ‘지금이야말로 씨앗도서관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씨앗이 위험하다

 
2003년의 일이다. 풀무학교전공부에서 원예와 농사일을 가르치게 된 나는 학생들과 텃밭에 채소 씨앗을 심는 일을 하게 되었다. 우리동네에서는 1년 중 가장 먼저 완두콩을 심는데 씨앗 봉투를 여는 순간 살충제로 버무려진 벌건 씨앗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많은 씨앗을 보아왔지만, 생전 처음 보는 형광색의 완두콩은 낯설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위험하다’라는 생각에 섬뜩했다. 알고 보니 이런 씨앗은 완두콩만이 아니었다. 시중 종묘상에서 파는 오이씨앗이며 호박씨앗, 고추씨, 가지씨에 이르기까지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색깔들로 물들어 있었다. 도저히 이 씨앗들이 자라서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몸이 거부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나서는 무섭기까지 했다. 그 후로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과 씨앗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갈무리를 기다리는 씨앗들. 씨앗을 받으면 잘 말리고 깨끗하게 선별해서 보관 봉투나 유리병 등의 용기에 넣어 저장한다
 

식용 GMO 수입 세계 1위, 대한민국

 
씨앗에 대한 공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를 괴롭혔다. 종묘회사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씨앗을 살충제에 담갔다 꺼내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어른들 눈에 잘 보이도록 염색제로 코팅을 한다. 그리고 GMO(유전자조작생물체)는 이미 우리 일상에 널리 퍼져 있다. GMO콩과 GMO옥수수를 가공해 식품원료로 쓰고, 가축 사료와 어류 양식용 배합사료의 원료로도 사용한다. 특히 GMO콩은 우리 식문화의 기본인 장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 GMO옥수수 또한 당의 원료도 널리 쓰이고 있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밑간으로 반찬을 만드는 우리 식탁 사정을 생각해 보면 이미 우리 밥상은 GMO에 오염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식용 GMO 수입 세계 1위 국가다. 정부는 세계 최초로 주식인 GMO쌀 상용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반GMO전북도민행동’을 비롯한 전국 농민과 지엠오 반대 시민운동의 노력으로 ‘농업진흥청’의 사업 중단(2017.9.1. 사업중단 협약 체결)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 GMO 쌀을 먹고 있을 것이다. 사업은 중단됐지만 여전히 GMO 쌀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럼,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씨앗으로부터 시작한 공부는 우리 마을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괜찮을까’, ‘세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럼,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등등의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씨앗도서관을 개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종자은행(Seed Bank)’이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농촌진흥청의 종자은행을 둘러보고 바로 포기했다. 거대한 냉장고와 -18℃를 유지할 수 있는 냉동실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개인이나 농사를 짓겠다는 농부는 씨앗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연구기관이나 학교 같은 단체에만, 연구보고서를 제출한다는 조건으로 공문을 띄우고 나서야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씨앗을 지켜 온 농부들에게는 걸맞지 않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씨앗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밭에서 일하다가도 필요하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면 좋겠고, 돈에 대한 걱정 없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어야 하며, 누구나 씨앗을 심고 거둘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씨앗은 원래 자연에 있었던 모두의 공유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금값보다 더 비싼 1회용 씨앗

 
하지만 우리는 봄이 되면 종묘회사에 가서 금값보다 더 비싼 씨앗들을 사 들고 와서 씨를 뿌리고, 다음 해에 또다시 사기를 반복한다. 한국거래소 기준 가격으로 최근 1년간 순금 1g은 최고 4만8465원(2019년 기준)에서 최저 4만2193원에 거래됐다. 반면에 몇몇 파프리카 종자는 1g당 10만 원이 넘게 거래되고 있으며 토마토 종자도 1g당 12만 원에 거래되는 경우가 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고 나서 2001년 8월 회복되기까지 약 3년 9개월 만에 우리나라는 보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종자 주권을 상실했다. 우리나라 5대 종자회사 중 4개 회사가 외국 기업으로 팔려나갔다. 다행히 지난 2012년 국내기업인 동부팜한농(현재 LG그룹의 팜한농)이 몬산토 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삼복꿀수박, 불암배추 등 채소종자 300여 품종에 대한 특허권을 인수했다. 그러나 채소시장에서 가장 비중이 많은 고추(청양고추 포함), 토마토, 파프리카 등 많은 국내 토종 종자들이 여전히 몬산토의 권리로 남아 있다. 1회용 용기처럼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쓸 수 없는, 다시는 씨앗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터미네이터 종자에 우리는 이미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

 
2016년 겨울 정창순 할머니께서 기증하신 씨앗들
 
한때는 이미 변해버린 자본의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있을까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한동안 뜸했던 씨앗도서관에 다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만날 수 없고,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그래서 자꾸 왜소해질 수 밖에 없는 코로나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씨앗을 심고 받아서 미래의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이 종자 주권을 잃는 지경까지 내몰리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 씨앗의 힘으로 밥상을 차려왔지만 정작 씨앗을 지키는 일에는 무지했고 무능했던 우리 사회의 농업 무시, 농촌공동체 외면이 있다. 
 
내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는 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집이 있고, 서로 씨앗을 나누며, 힘들 땐 서로 돕고, 기쁨을 함께 나누며, 가장 순환적인 삶을 살았었다. 물론 집집마다 씨앗 창고도 있었다. 이제 다시, 씨앗을 지키는 작은 단위의 마을공동체의 회복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글・사진 / 오도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교사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