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큐레이터의 영화 속 환경 15]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되돌아보는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포스터 
 
“어제의 너보다 오늘 더 성장했어.”
 
지난 10월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하 『삼진그룹』)>에서 나온 말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낸 부하 직원을 칭찬한 말이지만, 여기엔 ‘계속 성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또 개인이 속한 조직도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산이 깊을수록 골이 깊듯이, 커다란 성장은 그에 따른 깊은 그늘을 만들어 낸다. 영화 『삼진그룹』의 배경이 된 실화가 그러했다.
 
영화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생기발랄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는 포스터에서 ‘1995년, 회사와 맞짱 뜨는 용감한 친구들’을 전면은 내세웠다. 이종필 감독은 고아성, 이솜, 박혜수 등 ‘연기력 짱’ 젊은 배우를 통해 을(乙)들의 이야기를 ‘유쾌, 상쾌, 통쾌’하게 풀어냈다. 고아성은 2015년 『오피스』에서 ‘을의 스릴러 반란’을 보여줬다. 영화 『삼진그룹』에서는 ‘을의 유쾌한 반란’을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12월 14일 기준 156만 명이 극장을 찾게 했다. 극심한 코로라 19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영화 『삼진그룹』 주인공들은 상고 출신 입사 8년 차 말단직원들이다. 못 하는 게 없는 오지랖 이자영(고아성), 창의적인 싸가지 정유나(이솜), 수학 올림피아드 출신 수학 천재 심보람(박혜수)은 고교 시절 교내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을지로에 있는 삼진그룹 계열의 ‘삼진전자’라는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68년생 김지영’들의 직장 내 ‘유쾌, 상쾌, 통쾌’한 반란

 
남들은 대한민국 최고 대기업에 다닌다고 부러워했지만, 실제 이들은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커피, 담배 심부름 등 허드렛일만 하고 있다.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용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고, 상사의 성희롱에 항의해도 돌아오는 건 ‘꽃뱀이냐’란 비아냥뿐이었다. 또 결혼해서 임신하게 되면 바로 쫓겨나는 신세였다. 남성 중심 군대식 기업 문화 속에서 이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한 ‘을 중의 을’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아닌 ‘68년생 김지영’, 즉 요즘 세대 엄마들이 1995년에 겪어야 했던 실화다.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3개월 내 영어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로 승진시키겠다는 공고가 그것이었다. 이들은 매일 새벽 6시 토익 수업에 모여 승진한 ‘전문직 여성(My Dream is Career Woman)’을 외치며 꿈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자영은 우연히 지방에 있는 삼진전자 공장 앞 하천에서 물고기가 떼로 죽어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비가 내리자 공장 하수구에서 시커먼 폐수가 콸콸 흘러나오는 모습도. 그 폐수 속에는 전자 회로기판(PCB) 제조 시 사용하는 페놀이 포함돼 있었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발간한 『2017 먹는물 수질기준 해설서』에 따르면, 페놀은 중추신경계, 심장, 혈관, 폐 등에 손상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다. 급성 중독 시 쇼크, 일시적 정신착란, 혼수상태를 일으키고 만성 중독 시 간, 신장, 눈에 손상을 일으킨다. 페놀은 물속에서 0.1㎎/L 정도면 냄새가 나는데, 염소와 반응하여 염화 페놀(클로로 페놀)이 되면 300~500배의 불쾌한 냄새를 나게 한다. 이 때문에 페놀은 폐기할 때 소각 등 별도 처리를 해야 했다.
 
자영의 보고를 받은 삼진전자는 현장 조사를 통해 페놀 폐수 유출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주민 피해를 보상했다. 그러나 오지랖 넓은 자영은 회사가 488ppm의 페놀 유출 수치를 1.98ppm으로 조작하는 등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와중에 공장에서 유출된 페놀이 상수원으로 유입되면서 수돗물에서 악취가 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들끓는 여론에 삼진전자 주식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회사는 국제적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헐값에 외국계 회사로 넘어갈 판이 됐다. 이 과정에서 자영, 유나, 보람은 더 큰 음모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회사를 지키기 위해 왕따와 해고의 위험을 감내하면서 내부고발자를 자처하고 나선다. 이들의 반란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꿈에도 그리는 승진을 이루 수 있을까? 결말은 영화를 직접 확인하시길 강추한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표현의 기술』(2016. 유시민, 정훈이)에서 ‘텍스트(text)’와 ‘콘텍스트(context)’를 설명한다. 쉽게 말해 메시지를 담은 문장, 영상, 사진이 텍스트라면, 이 메시지를 해석 또는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맥락 등이 콘텍스트이다. 영화 『삼진그룹』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맥락의 콘텍스트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영화는 왜 1995년을 배경으로 삼았을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1993~1997)는 ‘세계화, 시장화, 자율화’를 정부 핵심 기조로 삼았다. 해외여행 자유화는 1989년 시행됐지만, 안보 교육 필증을 제출해야 여권을 받을 수 있는 등 제약이 많았다. 군 미필자는 당시 중국 등 공산권 국가의 경우 여행이 쉽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즈음해서 절차가 간소화되면서부터 비로소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도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전문가 중에는 이 시기에 우리나라가 신자유주의에 편입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정승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 이사는 『프레시안』 기고(「지옥문 열린 1995년, 무슨 일이 있었나?」)에서 이 시기를 “과거의 국가 주도 중상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자유 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로 전환한다는 대원칙에 입각하여 다양한 구조 개혁 즉 시장 개혁을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영화 『삼진그룹』에서 그려진 영어 토익 열풍과 해외 투기 자본의 국내 기업사냥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의 핵심 배경은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이었다. 실제 사건은 1995년이 아닌 1991년 3월에 일어났다.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은 자신의 저작 『한국 환경운동의 사회학)』(1996)에서 “페놀 사건은 우리나라 최대의 환경오염 사고 가운데 하나로서 환경 운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문창식 의장은 서울시 NPO 센터 기고(「수돗물을 오염시킨 낙동강 페놀 사건, 어떻게 응징했을까요?」)를 통해 “페놀 사건은 전국적으로 환경문제를 인식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라면서 “기업이 환경오염에 대한 시민의 반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각인시켜 주었다.”라고 평가했다.
 
1990년대 이전 환경오염 사고 피해자는 주로 공단과 농촌 지역 민중이었다. 1978년 담양 고씨 일가 수은중독 사건, 1985년 언론에 보도된 ‘한국판 미나마타병’ 온산병, 1986년 ‘검은 민들레’ 박길래 진폐증 사건, 1988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건과 원진레이온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환경 관련 법률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 1963년 최초 환경법으로 평가되는 「공해방지법」이 제정됐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없어 실효성이 없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원장을 지낸 이상은 박사의 『한 환경학자의 진솔한 환경이야기』(2017)에 따르면, 1970년대 초 보건사회부 법무담당관이 「공해방지법」 시행령을 경제장관회의에 상정했다가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에 정신 나간 일을 추진하고 있다.”라는 호된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1977년 「환경보전법」이 제정됐지만, 역시 경제성장을 위해 환경보전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등 사람들이 국뽕에 취해 있는 순간에도 앞서 언급한 환경오염 사건이 있었다. 1980년대 말부터 발생한 환경오염 사고는 도시 지역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특징이다. 1989년 수돗물 중금속(카드뮴) 검출 논란, 1990년 수돗물 트라이할로메테인(THM) 검출 파동이 그러했다. 연이은 사건으로 국민의 수돗물 불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발생했다.
 

기업의 비양심과 정부의 책임 회피

 
1991년 3월 14일 늦은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구미 두산전자 공장에서 페놀 원액 30t이 유출됐다. 두산전자는 이 사실을 관계기관에 알리지 않았고, 이렇게 유출된 페놀은 16일 대구 다사 정수장으로 유입돼 정수 과정에서 염소와 결합해 극심한 악취 파동을 일으켰다. 문창식 의장에 따르면, 당시 검출된 페놀 수치는 기준치의 22배인 0.11ppm이 나온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두산전자가 1990년 말부터 총 325t의 페놀 폐수를 방류한 사실도 밝혀냈다. 대구시와 대구지방환경청은 월 1회 의무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드러났다. 
 
언론은 이러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여론을 주도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용서 못 할 반사회적 범죄”라고 두산전자를 비난했다. 정부는 두산전자에 30일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런 조치를 통해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했다.
 
두산그룹은 사과 광고를 게재했다. 박용곤 회장이 나서서 사과 의사를 밝히며 200억 원의 기부를 약속했다. 두산그룹은 우연한 사고라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을 썼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OB맥주 쏟아버리기 대회 등 전국적으로 두산그룹 규탄시위가 벌어졌고, 두산 제품 불매운동도 전개됐다. 이 때문에 국내 맥주 시장 판도가 바뀌기도 했다. 직접 피해를 경험한 대구지역 시민들은 피해 보상과 수도 요금 납부 거부 운동을 벌여나갔다. 특히 피해 임산부(유산, 낙태 등)를 중심으로 피해 배상 운동이 전개됐다.
 
4월 초가 되면서 ‘경제성장’과 ‘수출 입국’ 논리를 내세운 정부와 기업에 의해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최각규 경제기획원 장관은 “두산전자 조업 차질로 관련 산업 수출이 우려된다.”라며 “기업이 밉더라도 공장은 가동되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 밝혔다. 때를 같이해 전자업계는 “두산전자 조업정지로 전자업계 수출이 3억 달러 이상 차질이 올 것”이라 주장하며 “조업 기간 최대한 단축”을 요구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정부는 두산전자 조업정지 조치 20일 만에 공장 재가동을 허용했다.
 
그러나 두산전자 공장에서 4월 22일 또다시 페놀 원액 3t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는 보완 시설을 졸속으로 강행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였다. 당시 공해추방운동연합은 환경처 장·차관 파면, 두산전자 폐쇄, 노태우 공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고, 대구지역에서도 정부와 두산전자와 규탄하는 성명과 시위가 잇따랐다. 2차 유출에 따라 두산그룹 회장이 사퇴하고 환경처 장·차관이 경질됐다. 1, 2차 유출에 따라 공무원 7명, 두산전자 관계자 6명이 구속됐고, 국회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두산전자 조업 재개를 주장했던 경제기획원 장관은 경질되지 않았다.
 

성장 중독 사회의 우연성과 필연성

 
구도완 박사는 페놀 사태 대응 운동을 성공적이라 평가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정치적 기회구조가 확대된 측면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회일 뿐 그 자체가 사회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구도완 박사는 언론의 역할, 환경·시민단체의 적극적인 대응 활동 등을 주요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페놀 사태 대응 운동의 결과 정부는 「환경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법」을 제정했고, 부산 상수도 취수원 부근을 ‘배출 시설 허가 지역’으로 지정했다. 환경 의식이 높아지는 계기로도 작용하면서 대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환경단체들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임산부 피해자 모임은 정부 조정 절차에서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민사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임에 따라 일부 피해자 권익을 보호받았다.
 
페놀 유출이 우연에 따른 사고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고는 경제 성장을 위해 환경을 무시하는 상황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성장 중독’ 사회에서 우연한 오염 사고는 없다.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야 필연적 사고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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