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큐레이터의 영화 속 환경 16] 고양이 ‘밥’과 ‘하루’ 이야기 영화에 녹아 있는 고양이 인식 문화

 
“고양이는 인간에게 수수께끼로 남기로 했다.” 작가 오이겐 스카바 바이스는 인간에게 고양이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고 정의했다. 고양이는 자발적으로 인간에게 왔지만, 독립성에서 비롯된 그들의 도도한 매력은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기에 말이다. 오죽하면 “개는 당신에게 아부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고양이에게 아부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을까. 고양이는 그 행태학적 특징 때문에 고대 여러 지역에서 신으로 추앙받았다. 반대로 중세시대 고양이는 오랜 기간 지독한 혐오와 상상 못 할 박해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성과 과학이 자리 잡은 현대, 고양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지금 두 냥이와 동거하고 있다. 7년 전 어린 그들은 작은 울음소리를 내며, 때때로 그들이 낼 수 있는 최대의 거친 하악질을 하면서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아빠를 자처했다. 냥이 아빠로서 고양이 관련 영상과 자료를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타인의 ‘육아 일기’, 아니 ‘육냥 일기’는 나와의 공통점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고양이 입장에선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 ‘묘지상정(猫之常情)’이다.
 
사실 고양이 관련 작품은 너무 많아 일일이 다 거론하기조차 어렵다. 그래도 몇 가지 경향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2011년 우리 영화 『고양이 :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처럼 공포 또는 저주의 상징적 존재로서 고양이를 그린 작품들이다.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뾰족한 고양이 눈과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장르 법칙이 된 듯하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2019년 개봉한 『공포의 묘지(Pet Semetary)』에서 고양이는 좀비이자 악령이 깃든 존재로 그려진다. 이 영화는 고양이가 등장한 포스터부터 섬뜩함을 던져준다.
 
두 번째는 『톰과 제리』처럼 힘없는 존재를 괴롭히는 악당으로, 그러면서 좀 멍청한 존재로서 고양이를 묘사하는 작품들이다.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귀엽고 깜찍한 스머프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가가멜 옆에는 항상 고양이 아지라엘이 있다. 가가멜은 나쁜 마법사로, 아지라엘은 그 마법사를 추종하는 동물로 그려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 경향은 중세시대 고양이에 대한 흑역사 문화가 남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세 번째는 2017년 『캣츠 앤 독스(Cats & Dogs)』가 대표하는 견묘지간(犬猫之間) 싸움이다. 어느 종이 인간과 더 친하냐 또는 인간의 개와 고양이 선호를 두고 벌이는 싸움을 그리고 있다. 일본 TV 시리즈이자 2014, 2015년 영화로도 공개된 『고양이 사무라이(Samurai Cat)』는 “냥심은 칼보다 강하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물론 견묘 사이 평화적 관계를 그리는 작품들도 있다. 네 번째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인간의 조력자 고양이를 그리는 작품들이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는 고양이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인화된, 즉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그리고 있다.
 

고대 여신으로 추앙받던 고양이

 
최근 경향은 고양이를 존재 그대로 보면서 거기에 인간의 본성을 투영시키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냥잘알’(고양이를 잘 아는)이면서 성찰적 작품들이다. 2016년 작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A Street Cat Named Bob)』>(이하 『고양이 밥』)과 2020년 작 애니메이션 『동거인은 무릎, 때때로 머리 위(同居人はひざ、時갲、頭のうえ)』(이하 『동거인』)가 그런 작품에 속한다. 두 작품 모두 모두 원작 인기를 안고 영상화된 작품이다.
 
『고양이 밥』과 『동거인』을 이야기하기 전에 고양이 관련 역사부터 알아보는 게 필요하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고양이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역사로부터 이어진 문화적 관점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 많은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2018년 장편소설 『고양이(전미연 옮김. 열린 책들)』 주인공은 매력적인 암고양이 ‘바스테트’와 10살 수컷 샴 고양이 ‘피타고라스’다. 이들은 인간의 파괴적인 테러와 전쟁 속에서 페스트균으로 무장한 수십만 쥐 떼가 도시를 점령하고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자 종간 연합군(인간과 고양이)을 구성해 이들과 맞선다. 소설에서 베르베르는 머리에 직사각형 USB 단자(마치 고양이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가 심어져 인간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피타고라스’를 등장시켜 몽마르트르 언덕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인간 세상을 굽어보면서 고양이 세계사를 들려준다. 이 소설만 봐도 고양이에 대한 풍부한 세계사를 학습할 수 있을 정도다. 베르베르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를 “지구가 배출한 가장 천재적인 인간”으로 꼽는다. 소설 속에서는 피타고라스가 고양이로 환생했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
 
독일의 고양이 연구가 데틀레프 블룸은 2008년 『고양이 문화사(두행숙 옮김. 들녘)』에서 “고양이의 선사(先史) 시대는 공룡 멸종 후 대략 7000만 년 전에 시작됐다.”라면서 “오늘날 고양이의 직계 조상은 펠리스 실베스트리스(Felis Silvestris)로 지금으로부터 약 700만 년 전에 지구에 등장했다.”라고 밝혔다. 오늘날 모든 집고양이의 선조는 아프리카산 담황색 고양이인 ‘아프리카 살쾡이’(Felis Silvestris Libyca)에서 시작됐다. 그게 약 1만 년 전의 일이다.
 
나일강의 마법 속에서 성장한 이집트는 식량 저장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쥐 떼의 습격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고양이 연구자 파울 라이하우젠에 따르면, 쥐 한 마리는 하루 최소 10g을 먹는다고 한다. 쥐 5000마리면 산술적으로 연간 18t의 곡식이 축난다. 고양이는 하루 1~24마리의 쥐를 잡아먹는데, 12마리를 평균으로 치면 연간 4380마리꼴이다. 게다가 고양이 냄새는 쥐의 스트레스를 높이기 때문에 번식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고양이는 신의 선물이었다. 고양이 위상이 높아지면서 원래 사자 얼굴 여신을 밀어내고 고양이 얼굴의 바스테트 여신이 등장했다. 매년 봄마다 나일강 삼각주 도시에 50만 명이 몰려 사랑과 풍요의 바스테트를 숭배했다. 이들은 고양이가 죽은 이의 영혼을 배웅한다고 믿었다. 여신을 위해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어 봉헌한 것도 이러한 이유로 보인다. 이후 고양이 살육이 금지되면서 미라는 청동으로 바뀌었다.
 

중세 고양이 잔혹사

 
동물학자 알프레드 브렘은 “한 민족의 문화가 높으면 높을수록, 확산하는 고양이의 수도 더 많아진다.”라고 말했다. 이집트는 고양이 수출을 금지했지만, 쥐잡이 명수 고양이의 가치를 알아본 고대 페니키아 상인들은 고양이 중계 상업을 시작했다. 로마가 이집트를 점령하자 고양이는 유럽으로 전파됐다. 북유럽 게르만 민족 신화에서 고양이는 오딘의 아내이자 사랑과 풍요의 여신 프리아의 마차를 끄는 신성한 존재로 그려졌다. 이슬람권에서도 마찬가지 귀한 존재로 상징화했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 신앙이 확산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은 흑화했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으며 알을 낳거나 짐을 나르거나 하지 않은 존재로 생각했다. 또 사람들은 낮과 밤을 바꿔서 살아가는 모습도 부정적으로 봤고 위선적인 동물의 상징으로 고양이를 지목했다. 북유럽에선 프리아 여신의 고양이를 파종과 수확의 제물로 산 채로 매장했다.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역사(2019. 이주은. 파피에)』에 따르면, 덴마크에선 사순절 앞두고 검은 고양이를 몰매로 학살하는 축제가 벌어졌고, 벨기에에선 마을 교회 종탑에서 살아 있는 고양이를 던지고 집단 화형에 처하는 축제도 있었다. 
 
 중세 종교 갈등이 심해지면서 이교도에 대한 차별이 격화했다. 고양이에 대해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교도 동물”이라는 교황의 선언도 있었다. 마녀사냥이 본격화하면서 고양이도 같이 화형당했다. 데틀레프 블룸은 저작에서 1618년 영국에서 있었던 사례를 소개했다. 두 명의 여성은 고양이를 손수건으로 쫓아버리려 했다. 하지만 이 행동에 악마적인 동물과 ‘마법 신호’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죄목이 씌어져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 시기 우리 밖으로 고양이 꼬리가 나오도록 만들어서 망치로 때리거나 불을 붙여 고양이가 비명을 지르게 하는, 일명 ‘고양이 오르간’도 유희의 일종이었다. 페스트가  창궐하자 사탄의 현신인 고양이를 역병의 원인으로 지목해 대량 학살하는 일도 빈번했다. 페스트를 막기 위해 살아 있는 고양이를 건물 벽에 가둬 제물로 쓰는 일도 있었다. 최근 실제 이렇게 희생된 고양이가 건물 수리 또는 재건축 과정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근세 들면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들판에서 일하는 개는 남성을, 집안에서 살림을 지키는 고양이는 여성을 상징화했는데, 근세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는 시각이다. 대항해 시대 고양이가 선박 내 화물을 쥐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하면서 인식이 변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고양이의 본성을 찾아낸 예술가들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이 데틀레프 블룸의 평가였다. 이탈리아의 발명가이자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고양이를 ‘자연의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고양이는 내 친구

 
영화 『고양이 밥』의 원작에서 제임스 보웬은 고양이 밥과 첫 만남 후 동거를 시작하면서 “녀석은 이제 내 친구다. 친구를 사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부분이 영화 『고양이 밥』과 애니메이션 『동거인』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영화 『고양이 밥』에서 영국과 호주에서 살던 보웬은 삶의 상실감과 외로움에 마약에 젖어 들었다. 마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좀 도둑질이 일상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는 마약 치료를 받으며 거리 버스킹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때 상처받은 길고양이가 그의 집 앞에 나타나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 그 고양이를 치료해 준다. 그는 중성화 수술 전 발정 난 수고양이, 멀쩡했다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고양이를 보면서 ‘트윈 픽스’라는 TV 드라마 시리즈에 등장하는 살인마 ‘밥(Bob)’을 이름으로 정했다. 살인마 이름에서 따왔지만, 밥은 보웬의 어깨 위에 올라타 거리를 다니거나 버스킹에 함께 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한다. 같이 산책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마력을 지닌 밥을 두고 사람들은 보웬이 약을 먹여 학대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보웬은 밥을 만나 삶의 책임감을 느끼고 스스로 변하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를 여전히 마약 중독자로 보고 있었다. 보웬에게 어떤 이는 수천 파운드를 제시하며 밥을 팔라고 종용했다. 보웬은 “당신의 자녀를 팔겠냐?”며 밥이 자신의 친구이자 가족임을 강조한다. 그렇게 보웬은 밥을 통해 삶을 배웠다. 
 
애니메이션 『동거인』의 인간 주인공 스바루는 어릴 적부터 사람 관계를 어려워했다. 대신 책을 통해 상상하는 걸 좋아해 현재는 인기 미스터리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엔 대인기피증이 더욱 극심해져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그는 자기의 출판사 담당자도 차라리 로봇이 더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느 날 부모님 묘지에 가서 연어회를 올렸는데, 갑자기 배고픈 길고양이가 달려들었다. 스바루는 이 고양이, 이후 봄이란 의미의 하루(ハル)라고 이름 지은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면서 새로운 미스터리 기획물을 떠올리게 되고, 이렇게 이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동거인』의 매력은 스바루 관점과 함께 하루의 관점도 풀어낸다는 점이다. 하루 역시 굶어 죽은 동생의 기억을 간직한, 상처 입은 고양이였다. 스바루는 하루와의 생활을 통해 조금씩 타인에게 말 거는 방법을 배운다.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도. 고양이 하루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아니다. 동생을 잃은 아픈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유약한 스바루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2편의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스바루와 하루의 엉뚱함에 웃음 짓다가도 가슴 뭉클한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는, 말 그대로 힐링 애니메이션이다. 
 
캣맘과 캣대디 중에는 길고양이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주는 이들이 많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시 「꽃」처럼 사람들이 거리의 길고양이들도 우리 가족처럼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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