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큐레이터의 영화 속 환경 17] 영화 『손님』, 살려고 지은 죄는 용서 받는다?

 
2015년 개봉한 우리 영화 『손님』은 관객 평점, 흥행 면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그러나 영화에 담긴 주제 의식과 이를 표현해내는 방법만큼은 뇌리에 강렬하게 남게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손님』은 재평가가 필요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손님』은 끔찍한 범죄를 ‘살려고 지은 죄’로 치부하려는 이들이 그 죗값에 따라 용서받지 못하는 상황을 판타지와 공포 장르에 섞어서 그리고 있다. 영화는 류승룡, 이성민, 천우희 등 이른바 ‘연기의 신’들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에 감독 김광태는 시나리오를 직접 준비하면서 당시 신인 감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흡입력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영화 『손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기본 흐름을 따왔다. 원래 이번 ‘영화 속 생태’ 시리즈에선 스크린에 비친 ‘쥐’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다. 영화 『손님』에서도 쥐는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다. 여러 쥐 관련 책과 자료를 읽었고, 쥐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찾아봤다. 그러다 일본의 저명한 유럽 중세사학자 아베 긴야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한길사. 양억관 옮김. 2008)』(이하 『하멜른』)를 접하게 됐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영화 『손님』의 김광태 감독 역시 『하멜른』을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영화만 봤을 때와 달리, 『하멜른』을 보고 다시 영화를 봤을 때, 동화는 단지 동화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김광태 감독은 아베의 깊은 역사적 통찰을 작품에 담아내려 했다. 또 한국적 상황과 우리 현대사 메타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써 ‘손’, 즉 역신(疫神)을 끌어들였다. 영화를 처음 또는 다시 보고자 한다면 『하멜른』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살기 위한 죄’의 공범들

 
상영시간 107분의 영화 『손님』은 2005년 작 『웰컴 투 동막골』 세트장이 있는 강원도 영월에서 촬영했다. 깊은 산골,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담긴 강원도의 힘 때문인지 몰라도, 판타지 공포를 장르로 내세운 영화는 초반 평온함마저 느끼게 한다. 평온함은 하나씩 비밀이 벗겨지면서 핏빛 섬뜩함으로 물든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한국 전쟁 직후였다. 떠돌이 악사 김우룡(류승룡)은 폐병을 앓는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미군에게 받은 엉터리 주소를 믿고 서울로 향하던 중 지도에도 없는 산골 마을, 그래서 전쟁이 끝난지도 모르는 마을에 이르게 된다.
 
김우룡은 약장수를 따라다니다 불구가 돼 다리를 절뚝거렸고 전쟁 통에 아내마저 잃었다. 그는 하나뿐인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생각이지만, 당장 돈 한 푼 없다. 이들 부자가 도착한 마을은 겉으론 풍족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이곳 촌장(이성민)이 마을의 경제력을 움켜쥐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비밀을 잔뜩 품은 불온한 평화였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얼떨결에 남북한 병사가 강원도 산골 마을에 모인 상황을 코믹한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북한군 장교(정재영)는 촌장을 따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비결을 묻는다. 촌장은 “뭘 좀 (잘) 맥이는 거지”라고 답했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특히 가난한 산골 마을에선 밥이 곧 리더십의 비결이었다.
 
영화 『손님』에서 촌장의 강력한 리더십의 비밀은 따로 있었다. 우선 촌장은 마을 사람들이 외부로 못 나가게 하려고(노동력 유출을 막고자) 전쟁이 끝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우리 현대사에서 통제된 정보는 국민 행동 제약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숱하게 있었다. 영화에서 전쟁 종료를 알고 있고, 촌장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떠돌이 악사는 ‘촌장의 왕국’을 위협하는 치명적 존재였다. 또 촌장은 난리 통에 남편과 자식을 잃은 미숙(천우희)을 무당으로 내세워 사람들의 두려움을 조정했다. 미숙은 촌장의 심리선동 수단이었다. 마치 특정 집단에 서서 편파적인 뉴스를 쏟아내는 일부 언론처럼 말이다.
 
마을의 집단 공포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살기 위한 죄’의 공범이었다. 예전 촌장은 마을주민을 동원해 한센병 환자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무당을 마을 밖으로 쫓아버렸다. 전쟁이 일어나자 피난 갈 곳이 없었던 촌장 일행은 한센병 환자들이 숨어 있는 깊은 산속으로 갔다. 그들이 받아줘 가까스로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촌장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들을 한꺼번에 가둔 채 불을 질렀다. 촌장은 “이 천하디 천한 것아.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고 말하면서. 이어 촌장은 죄책감 떨고 있는 주민들에게 마치 신의 대리인 양 “살려고 지은 죄는 용서받는다.”라고 선동했다. 영화에선 빠졌지만,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값비싼 암연(돌소금)을 차지하기 위한 촌장의 술책이라는 설정이다. 이 마을에서 촌장은 절대권력자이자 감시자였고, 신의 대리인이었다. 그런 촌장에게 한센병 환자들은 그저 죄를 뒤집어씌우고 차별해도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한국적 각색

 
산 채로 죽임을 당한 이들의 깊은 원한 때문이었을까? 그날 이후 마을엔 역신의 또 다른 상징인 쥐 떼가 끊이지 않았다. 천적인 고양이를 풀어봤지만, 오히려 번번이 쥐에게 잡아먹힐 뿐이다. 약을 쳐도 사악하고 영악한 놈들에겐 소용이 없다. 촌장은 쥐 떼에게 고양이 고기를 썰어서 봉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을이 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걸 보고 우룡은 자기들을 먹여주고 재워준 보답으로 쥐 떼를 몰아내겠다고 나섰다. 자신의 피리 소리가 동물을 요동치게 할 수 있다면서. 촌장은 쥐 떼를 몰아내면 우룡의 아들을 고칠 목돈을 준다고 약속했다. 우룡은 전통 비법으로 만든 (쥐가 싫어하고 또 좋아하는 냄새를 풍기는) 가루를 마을 밖으로 이어지게 뿌리고 연기를 피워 쥐들이 숨어 있지 못하게 한다. 이어 그는 피리를 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와 『문명』에서 파리를 점령한 쥐 떼의 모습이랄까. 수만, 아니 수십만 쥐 떼가 초가집 등 마을 곳곳에서 나와 우룡을 따라나선다. 우룡은 어린 아들과 힘을 합쳐 겨우 마을 밖 버려진 벙커에 쥐 떼를 가두는 데 성공한다.
 
우룡 부자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촌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룡은 촌장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즉 촌장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촌장은 쥐 퇴치가 자신이 세운 무당의 영험함 때문이지 우룡의 공로가 아니라고 말했다. 절대권력자 촌장의 한 마디에 우룡을 반겼던 주민들 역시 빠르게 돌아섰다. 별로 한 일도 없이 값비싼 대가를 받는다고 했다. 한 발 더 나가 우룡이 쥐를 몰아내기 위해 피운 연기가 사실은 빨갱이들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했다. 우룡의 아들도 진짜가 아니라 전쟁 통에 버려진 애를 주어다 밥벌이에 쓴다고 했고, 돈은 아들 치료비가 아니라 간첩질에 쓰인다고도 했다. 마을에서 우룡에게 마음을 줬던 선무당 미숙도 그가 빨갱이라고 소리칠 정도였다.
 
정당한 사회적 비판에 빨간색을 덧씌운 우리 현대사의 숱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강이 막히면 썩는다’라는 상식적 비판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위정자 문제점을 보도한 방송 프로그램을 두고 국가 기관, 정치인, 언론이 ‘종북’으로 몰아세웠던 일은 불과 10여 년 안쪽의 일이다. 타인을 차별하고 공격하기 위해 종북 타령을 입에 물고 다녔던 이들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현실이다.
 
『손님』에서 촌장은 다시는 요상한 피리를 불지 못하도록 우룡의 손가락을 자른다. 그러면서 그는 “가. 이 가방에 여비와 먹을 거 챙겨놨어. 앞으로 바른 일 하고 살아. 그리고 셈은 셈이니까 억울해할 것 없어.”라며 우룡 부자를 내쫓았다. 겉으로 목숨을 살려주는 척했지만, 실은 주먹밥에 쥐약을 탔다. 이를 몰랐던 우룡의 아들이 죽고, 우룡은 분노에 찬 비명을 지른다. 우룡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마을로 돌아가 촌장을 만난다. 그는 “받은 대로 그대로 주려고 그래요. 셈은 셈이니까”라며 쥐 떼를 다시 마을로 돌려보낸다. 그날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쥐 떼에 의해 사라졌고, 다음 날 남은 아이들은 동화처럼 우룡의 피리 소리에 홀려 산속으로 들어간다.
 

극심한 차별 대상이었던 중세 유랑 악사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렇게 한국적 상황이 더해져 영화 『손님』으로 만들어졌다. 원작 ‘피리 부는 사나이’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1284년 6월 26일 독일 하멜른에서 130명의 어린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130명의 어린이 실종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3세기 작은 도시에선 상상할 수 없는 큰 사건이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당시 130명은 근대 하멜른 인구로 따지면 2000~3000명, 하노버라면 1만~2만 명이 한 번에 사라진 꼴이라고 한다. 집단 실종 원인을 두고 25개나 되는 학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베 긴야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당시 신분제에서 가장 천대받는 천민 중 하나인 유랑 악사로 보면서 “교회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권리도 거의 박탈당한 사람들”이라고 봤다. 유랑 악사들은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법적으로 보복할 권리가 있었다. 단, 그 사람의 ‘그림자에 대한 보복’만 허락됐다. 유랑 악사가 부당하게 살해되면 그 아들은 소 한 마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역시 조건이 따랐다. 기름칠한 장갑을 끼고 역시 기름칠한 소꼬리를 잡고 날뛰는 소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다. 
 
아베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전설로 이른 것은 유랑 악사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였고, 그들이 차별하고 악행의 상징으로 여긴 사람들과 ‘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세 시대 학자는 부유한 권력층이었다. 영화 『손님』에서 촌장은 이 마을의 권력자였다. 그에게 외지인이자 장애를 가진 유랑 악사 우룡은 없는 죄를 만들어도 되는 ‘천하디 천한’ 소외된 존재였다.
 
16세기 들어 유럽에 역시 천민인 전문 쥐 사냥꾼이 등장하면서 전설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이후 어린이 실종과 쥐 사냥꾼 이야기가 결합했다는 말이다. 끔찍했던 역사적 사건이 과거의 일로 끝나지 않고 살아 있는 전설로 변형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서 악몽 같은 참사가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중세 시대 흑사병, 홍수, 화재 등 한 도시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게 하는 대형 사고가 계속됐다. 아베는 “(사람들이) 그런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옛날 전설은 완료형이 아니라 그야말로 현재진행 사건으로 사람들 의식 속에서 재현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과 같은 사회적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는 사람만이 아니다. 성장숭배에 빠진 이들에게는 자연 역시도 차별의 대상일 뿐이다. 4대강사업과 같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개발사업도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참사였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우리 인간이 자연에 승리했다고 너무 득의양양하지는 말자. 우리가 승리할 때마다 자연은 매번 우리에게 복수한다.”라고 말했다. 준 것 그대로 받는, ‘셈은 셈’이기에 말이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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