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막걸리의 시대가 열린다

별주막의 막걸리들. 우리나라에는 약 900개의 양조장과 2000여 개의 막걸리 상표가 있다
 
요즘처럼 우리 것이 각광받는 시대가 있었을까?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웹툰, 국악을 거쳐 이제는 ‘K-방역’까지 뜬단다. 서구의 것은 세련되고 우리 것은 촌스럽다고, 최근까지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이 세계인들이 즐기는 우리 것을 새삼 발견하고 우리 것이 가장 “힙”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쯤에서 예언 한 마디. 곧 “우리술”이 뜬다. ‘막걸리 Makgeolli’가 세계인들이 즐기는 술이 되고, ‘주막 Jumak’이라는 단어를 ‘펍’이나 ‘이자카야’ 같은 일반 명사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저절로 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대중의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부활하는 막걸리

 
내가 속해 있는 친목모임인 ‘전통주전문점협의회’에는 날로 회원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전통주전문점이란 진흙 벽에 기와 얹고 양은 주전자에 값싼 막걸리를 내는 민속주점이 아니다. 압구정, 홍대, 강남 등에 가장 깔끔하고 편안하지만 세련된 전문점들이다. 보통의 술집들에 비해 가격도 제법 있고, 음식의 수준도 높다. 그런 전문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별주막은 과천의 동네 주점이라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지만, 종종 손님들이 묻는다. “막걸리 집인데 젊은이들과 여성이 참 많네요.” 처음 주막을 열 때는 이런 고객층을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의 막걸리전문점은 대체로 여성 고객이 4분의 3 이상이고 대부분 30대, 40대 고객들이다. 미래의 소비 경향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막걸리와 우리술을 먼저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와 우리술의 다양성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재료와 알코올 도수를 정해주고 공장에서 값싸게 대량생산하게 했다면, 이제는 가장 전통적인 술부터, 상상하기 어렵던 모양과 재료와 이름의 술까지 다양한 우리술이 쏟아지고 있다. 1천 원짜리 대량생산 인공감미료 막걸리부터, 한 병에 11만 원 하는 막걸리, 소주보다 높은 19도 막걸리, 샴페인처럼 산뜻한 탄산이 가득한 스파클링 막걸리 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체 막걸리란 무엇인가? 
 

막걸리, 넌 누구냐? 

 
금정산성막걸리의 누룩방. 우리 누룩은 밀을 거칠게 빻아 덩어리지게 딛는다. 두께와 모양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막걸리는 주로 쌀로 만드는 우리술의 일종이다. 쌀로 밥이나 죽, 백설기를 빚어 누룩과 물과 섞으면 술이 되기 시작하는데, 위에 뜬 맑은 술을 숙성해서 청주, 남은 탁한 부분에 물을 타 걸러서 탁주, 혹은 막걸리라고 부른다. 청주나 탁주를 가열해서 높은 알코올 도수의 술을 만드는 걸 ‘증류’라고 하는데 이렇게 얻어진 술이 조선 양반가의 사치품이었던 ‘소주’다. 조선시대 왕들은 “백성들 먹을 쌀이 부족한데 권세 있는 집안들은 귀한 쌀로 소주를 만들어먹는다”고 자주 한탄했다니, 소주는 마구 마시고 취하는 ‘쐬주’와는 달리 최고의 사치품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해 얻어지는 청주, 막걸리, 포도주, 맥주 따위의 술을 발효주, 또는 양조주라고 하고 도수는 20도 이내이며, 소주, 위스키, 중국 백주 등은 증류주로 분류되고 대게 20도 이상이다. 
 
우리 술 중에는 ‘과하주’라는 맛있는 술도 있는데,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이다. 귀한 청주를 4개절 내내 즐기고 싶은데 여름에는 변질되어 버리게 되기 쉽다. 그래서 발효 중에 소주를 섞어 도수를 높이고 여름에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여름에 차게 마시는 과하주보다 맛있는 술이 또 있을까? 지금 시중에는 18도에서 20도 정도의 과하주들이 판매되고 있다. 
 
쌀농사에 기초를 둔 우리 술은 이렇게 청주, 막걸리(탁주), 소주, 과하주로 분류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막걸리의 ‘막’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첫째, 막 걸렀다는 말은 곱고 섬세하게 거른 술이 아니라, 마구 거칠게 거른 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기도 하다. 곡기를 다 걸러내지 않아 양식이 되고 기운이 나는 술이기도 하다. 배고픈 사람들, 병든 이들에게 도수가 낮고 영양이 많은 막걸리를 먹였다는 기록이 많다. 약간의 알코올은 약해진 몸을 순환시키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둘째, 막 걸렀다는 말의 더 큰 의미는 지금 막 거른 신선한 술, 살아 있는 술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살균하지 않은 생주 문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와인, 맥주, 사케 등은 모두 살균주 들이다. 주문 즉시 따라주는 신선해 보이는 생맥주도 탄산을 주입한 살균 맥주일 뿐이다. 이에 반해 막걸리의 탄산(거품)은 발효 중 발생된 자연 탄산이다.  
 
우리 막걸리와 청주는 근대화되기 전에 일제에 의해 억압되고 군사정권에 의해 통제된 탓에 도리어 효모가 살아 있는 생주로 남았다. 재밌는 것은 영국의 경우 “리얼 에일” 운동을 통해 다시 생주 문화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생막걸리는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미래이며, 근대의 공산품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막걸리의 지역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낯선 지역에 놀러 가면 그 동네의 막걸리를 찾는다. 우리나라에는 약 900개의 양조장과 2000여 개의 막걸리 상표가 있다. 막걸리는 지역 농업에 기초한 지역 문화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 막걸리들 대부분이 지역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값싼 수입쌀로 만들어진다. 낡은 양조장에 값싼 수입쌀과 인공감미료를 넣어 만든 1000원짜리 술이 사실은 막걸리의 실장이었던 것이고 그 동네의 역사, 문화와는 연관이 없어진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다. 우리 쌀을 품종별로 맛보고 홍보하는 행사를 어느 지역 농협이 후원하면서, 그 지역의 쌀도 가져와 함께 시식했다. 그 농협은 식사하면서 함께 맛보라고 자랑스럽게 그 동네 막걸리를 들고 오셨는데, 그 막걸리도 수입 쌀 막걸리였던 것이다. 농민들이 ‘우리 동네 막걸리가 최고여!’라고 말할 때 그 막걸리가 본인들이 그렇게 데모하면서 반대하던 수입 쌀로 만든 막걸리라는 건 도무지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막걸리병에 붙은 라벨에 분명히 원산지가 적혀있는데도 말이다. 
 
한해 농사를 마치고 가장 좋은 쌀로 술을 빚어 조상과 어르신을 모시고, 식구들, 농부들, 이웃들과 나눈다. 술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수입 쌀 막걸리는 값싸게 취하는 수단은 될 수 있어도 술의 문화적 의미를 담지는 못한다. 한 예로 서울시가 서울장수막걸리에 ‘서울미래유산’이라는 명예를 수여했는데, 이것은 마치 파리 시당국이 칠레산 포도로 만든 와인을 파리미래유산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파리 시가 그런 짓을 할 리는 없다. 서울에는 서울 강서구의 맛있는 추청 품종 쌀로 만드는 진짜 서울막걸리가 있다. 엄연히 서울의 지역특산주로 등록된 서울의 진짜 미래 유산이다. 제품명은 공개하지 않지만, 그 술도가가 성수동에 있다는 건 밝혀둔다. 
 

막걸리 마실 때 필요한 몇 가지 지식들

 
수백 년을 이어온 부산 금정산성막걸리의 누룩을 딛는 할머니. 십대부터 70세 넘은 지금까지 이 일을 하시는 자부심이 크시다
 
이쯤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따져볼 점들을 생각해보자. 어떤 것이 꼭 좋다고 말하기 이전에 막걸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이다. 
 
첫째, 주원료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막걸리 생산 상위 10개 기업의 수입쌀 사용 비율은 80%가 넘는다. 반면 최근 계속 늘어나는 작은 술도가들은 우리 쌀을 쓰는 것은 물론 어느 지역 어느 품종의 쌀을 쓸 것인지 고민한다. 옥천에는 100% 우리밀로 아주 맛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곳도 있다. 
 
둘째, 발효제로 우리 누룩을 쓰는가 입국을 쓰는가? 우리 누룩은 밀을 거칠게 빻아서 만드는 병국, 떡누룩이다. 맛과 향이 풍부하고 복잡하나 같은 맛과 향을 유지하기 힘들다. 일제강점기 이후 입국이라 부르는 발효제가 들어와 널리 쓰이고 있는데, 쌀알에 특정 곰팡이를 배양하여 효율적으로 술을 빚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맛과 향이 깔끔하고 안정적이지만 단순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일본 사케의 깔끔하고 단순한 맛은 산업화된 누룩인 입국이 빚어낸 것이다. 
셋째, 무감미료 막걸리인가 인공감미료 막걸리인가? 공업화된 대부분의 막걸리는 좋지 않은 쌀을 쓰고 아스파탐이나 아세설팜칼륨 같은 인공감미료로 단맛을 낸다. 최근의 막걸리들은 감미료 없이 쌀만으로 단맛, 신맛, 과실향 등을 풍부하게 이끌어낸다. 담백한 막걸리에 유자, 오미자, 곤드레, 울금 등 지역 특산물을 넣어 개성을 뽐내기도 한다. 
 
넷째, 그 지역과의 문화적 유대를 담고 있는가? 그 지역 농민들의 쌀과 지역특산물을 담고, 주민 삶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는 술일까 하는 점이다. 막걸리 한 잔에서 그 지역의 정서를 느끼고 싶다면 이것도 따져볼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막걸리는 좀 별나다. 제주에는 쌀 농사의 전통이 없어 좁쌀로 발효주인 오메기술, 증류주인 고소리술을 빚는다. 제주에서 제주막걸리를 맛있게 마셨다는 여행객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땅콩 막걸리, 감귤막걸리가 육지에서 생산되어 제주에서 팔리고 있다. 제주에서 만든 쌀막걸리도 제주의 농산물로 만든 술은 아니다. 제주의 곡물로 만든 진짜 제주 막걸리를 맛볼 날이 곧 올까 궁금하다. 
 

전직 환경운동가가 막걸리에 미래를 거는 이유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생업으로 막걸리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늘 환경현장에 다니면서 자기 지역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들이 맛보게 해준 지역의 산물들을 즐겼고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 역사, 그 다양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생업에 뛰어들어 전국의 막걸리를 살펴보니 막걸리는 수입쌀과 인공감미료로 만들어 값싸게 취하는 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걸리는 값싼 술”이라는 편견에 도전하는 뜻있는 술도가들이 점점 늘어났고, 젊고 미래적인 소비자들이 막걸리와 우리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의 매력이 커질수록 문화 상품으로서 막걸리의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문화 상품으로서 막걸리의 매력은 매우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살아남은 생막걸리라는 전통은, 최근 내추럴 와인이나 리얼 에일처럼 작은 양조장의 살아 있는 수제품들이 새롭게 각광 받는 흐름을 앞서서 체현하고 있다. 
 
지역의 자연, 농업, 문화, 역사, 주민의 삶과 함께 하는 지역문화의 상품으로서도 막걸리가 딱이다. 동네 이름만 단 가짜가 아니라 진짜 지역막걸리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건강을 중시하고 저도수의 술이 선호되는 추세 때문에도 막걸리가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의하면 부드럽고 순한 저도수의 술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특히 막걸리는 ‘건강에 덜 해로울 것 같아서’가 선호 이유로 나타나고 있다.
 
막걸리 문화, 막걸리 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막걸리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가 막걸리 시장에도 대기업이 뛰어들게 될 것이며, 좋은 술을 빚는 작은 양조장들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 제품에 비해 특정 지역의 문화를 담거나 장인의 솜씨는 담는 작은 술도가들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지역특산주 등의 전통주는 다른 술들과 달리 온라인 통신판매가 허용되어 있다. 작지만 좋은 술을 빚는 술도가들이 온라인 판매망을 통해 촘촘히 연결되고 협력한다면, 대기업들 못지않게 살아남고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우리 술 우리 문화가 살아나다

 
우리 문화의 매력이 세계를 홀리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는 우리 문화의 힘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대감염 사태는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던 서구 전통과 문화의 지배력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고상하고 체계적이고 선진적인 것처럼 보였던 서구의 문명이 사실이 매우 취약했고,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랑스 와인은 5만 원도 비싸지 않고 우리 막걸리는 5천 원도 너무 비싸다고 여기던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 쌀이라는 값비싼 재료를 듬뿍 넣어 만든, 더구나 살아 있는 생주가 값싼 술일 이유가 없다. 좋은 쌀, 좋은 누룩으로 풍부한 맛을 낸 다양한 우리술이 이제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술 문화의 가장 큰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주점마다 음식은 다양해도 술은 ‘쏘주’ 아니면 맥주였던 시절이 과거가 되고 있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에는 20만 개가 넘는 주막이 술을 빚고 있었고, 집집마다 고유의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가 살아 있었다. 
 
입안에 푸른 파도가 치는 듯하여 ‘녹파주’, 차마 삼키기 아까워서 ‘석탄주’, 돼지날 돼지시간에 빚는다는 ‘삼해주’, 봄이면 진달래, 솔잎, 송홧가루, 여름에는 연잎과 연꽃, 가을에는 국화를 넣어 빚었다는 수만 수십만 가지의 우리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제 강점에서 분단, 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진 지난 100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이 땅의 자연과 우리 먹을거리, 우리 술에게도 파괴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통을 참고 이기고 빚어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우리 문화는 더 큰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다. 
 
 
글・사진 / 서형원 우리술 전문점 <별주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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