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 우리를 잊지 마세요”

김진선 씨와 황분희 씨는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의 이주대책을 호소하며 지난 11월 19일부터 23일까지 청와대 앞에서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김진선 씨와 황분희 씨는 오늘도 청와대 분수대 앞에 섰다. 11월 19일 경주에서 올라와 일인시위를 한 지 이날로 4일째다. “어제는 다리가 후들거려 지하철역까지도 못 걸어갔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오늘은 좀 견딜 만 하네요.” 김진선 씨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70세가 넘은 이들이 하루 종일 서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자체장, 한수원 사장, 국회, 산자부 장관 다 만나서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우리를 만나는 것만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이에요. 우리 둘이라도 청와대로 가서 호소해보자 하고 올라왔지요. 혹시나 우리를 보고 기억하실 수도 있으니까.” 
 

4년 넘게 이주 호소하는 월성 주민들

 
황분희 씨와 김진선 씨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이다. 월성1호기를 포함해 총 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중인 월성원전 인근에 산다. 이곳 주민들은 정부와 한수원에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4년 넘게 천막농성을 해오고 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이전과 달라진 것도 있다고 한다. 한수원 사장과 산자부 장관이 주민들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문제투성이 월성1호기는 가동이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5기의 원전은 주민들 바로 옆에서 가동중이다. 지난 6월에는 월성3호기에서 삼중수소가 격납건물을 뚫고 배출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황분희 씨는 5년 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한 달 전에 우리 남편이 갑자기 살이 10킬로그램이 빠졌어요. 병원에 갔더니 갑상선암이라고 하대요. 손자도 데리고 사는데 그 아이가 20~30년 후에 똑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잖아요. 이건 생명이 걸린 문제에요.” 
 
주민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땅값요? 팔고 나갈 수 있는 거면 그냥 팔고 말지 왜 4년 넘게 고생하겠어요? 팔리질 않아요. 지진 발생하지 방사능 나오지 이런 곳에 누가 이사 오겠어요?” 김진선 씨는 한숨을 쉰다. “처음 원전 지을 때는 경제가 발전해 동네가 잘 살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어요. 한 기 추가할 때마다 같은 말을 했어요. 지금 6기 들어왔어요. 그러면 지금 우리 동네가 가장 잘 사는 동네가 되어야 하잖아요? 근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가 됐어요. 마을에 개미 한 마리 안 다녀요. 집도 다 비었어요. 건물 주민들만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거죠. 저녁만 되면 겁이 나서 문을 닫아야 해요.”며 착잡해했다.    
 

“더는 희생하라 하지 마세요”

 
“서울에 와보니 전기를 정말 많이 쓰더라고요. 이 사람들은 핵발전소 옆에서 피해를 보고 희생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을까. 서울에 핵발전소가 있고 거기서 나오는 방사성 때문에 아이들이 피폭되었다면 가만히 있을까. 몇 년 전 서울 노원구 아스팔트에서 방사능 나온다고 그걸 파서 경주로 갖고 왔잖아요. 우리는 원전 6기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다 먹고 사는데…. 우리가 시골에서 없이 살아서 그런가 싶어 참 서글프더라고요.” 황분희 씨는 씁쓸해했다.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이주다. 현재 잘못 설정된 EAB를 바로 잡아 달라는 것. EAB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지역 일반인 출입 및 거주를 통제하는 지역으로 현재 월성원전의 EAB는 914미터다. 주민들은 EAB를 1킬로미터라도 확대하거나 완충구역이라도 설정해서 주민 이주의 길을 터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발전소 때문에 40년을 고생했으니 그 피해를 보상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대도시에서 살 수 있는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같은 면소재지에 원전과 떨어진 곳에서 살고 싶다는데 그조차도 안 들어줍니까.” 
 
그들이 든 피켓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이 들어있다. “2016년 9월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우리 주민들을 가장 먼저 찾아준 이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었어요. 당시에는 대통령 후보였는데 우리 천막을 찾아와 괜찮느냐고 묻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우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고 또 함께 풀어나가자고 하셨어요.” 황분희 씨는 그날을 기억했다. “대통령님, 우리 주민들은 우리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던 대통령님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적폐 청산으로 많이 바쁘신 줄 압니다. 그래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더러 희생하라는 말은 더 하지 말아주세요.” 주인들의 부탁은 간절했다.
 
 
글 /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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