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한다”

자연이 바다에 빚어낸 신비한 구슬, 석호 영랑호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강원도 속초시에는 수천 년 전 자연이 바다에 만들어놓은 호수가 있다. 그 경관이 어찌나 뛰어난지 신라시대의 한 화랑이 그 경치에 도취되어 무술대회에 나가는 것조차 잊었다는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조선의 한 실학자는 구슬을 감추어둔 듯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영랑호에 대한 이야기다. 경관만 수려한 것이 아니다. 영랑호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이라 민물과 바다에서 사는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한다. 이에 겨울엔 저 멀리 캄차카반도와 시베리아에서 큰고니, 흰뺨검둥오리, 가창오리 등이 날아오고 여름에는 개개비, 물총새, 댕기해오라기 등이 영랑호 수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는다. 도요새들도 알래스카와 캄차카반도에서 뉴질랜드와 호주를 가는 길에 들렀다 영양을 보충하고 쉬었다 간다. 철새들이 전하는 또 하나의 전설이 영랑호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돈을 좇는 개발에 맞서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철새 내쫓는 속초시의 영랑호 생태관광  

 
영랑호를 찾은 새들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2019년 속초시는 ‘영랑호의 우수한 생태계를 관광 자원화하여 관광객 유입을 통한 지역경제 및 관광활성화 도모하겠다’며 영랑호 개발사업을 발표했다. 40억 원을 들여 영랑호 둘레 수변에 데크로 산책로를 만들고 영랑호 수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400m, 폭 2.5m의 부교를 설치해 영랑호 한 가운데 지름 30m의 수중 광장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야간에도 관광객들이 영랑호를 다닐 수 있도록 조명을 설치한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속초시의 영랑호생태탐방로 사업이다.
 
‘생태’란 단어만 사용했을 뿐 실상 반생태적인 사업에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은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속초시는 이 사업과 관련해 영랑호 생태계 조사를 통한 사전 환경성 검토는 일체 없었다. 철새도래지이며 야생동물 서식지로서 소중한 자연호수의 생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업을 밀어 붙였다.”며 “이미 영랑호의 경관과 자연 생태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탐방로와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 등이 충분히 설치되어 있는데다 영랑호 안까지 인공구조물을 대규모로 건설할 경우 영랑호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항을 줄 것”이라며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속초시는 환경연합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리곤 시민들이 영랑호 개발을 원한다며 영랑호 탐방로 조성사업 기본계획용역 발주, 실시설계용역 착수 등 일사천리로 사업을 강행했다. 
 

시민들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한다”

 
속초시청 앞에서 진행하는 시민들의 1인 시위가 365일을 넘겼다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요.” 속초시의 주장과는 달리 속초시의 개발계획으로부터 영랑호를 지키겠다며 평범한 시민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시민들은 자신들을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라 소개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7월 13일 속초시청 앞에서 “영랑호를 다리로 두 동강 내시겠다고요? 영랑호 다리 싫어요!”라는 피켓을 들고 출근길 1인 시위를 시작으로 영랑호 개발 반대 현수막을 각자 집 베란다에 걸기도 하고 영랑호 개발 반대 몸자보를 입고 매일 영랑호를 걸었다. 또한 거리 서명전을 진행해 8만 속초 시민들 중 무려 8000명이 넘는 시민들에게 영랑호 개발 반대 서명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속초시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해양수산부 산하 동해지방해양수산청에 영랑호 공유수면 점용 및 사용 신청을 위해 일반해역이용협의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일반해역이용협의는 해양을 개발 또는 이용하는 행위로 인해 예상되는 해양환경영향을 사전에 검토·평가하는 제도로, 사업계획의 수립단계에서부터 환경적인 측면이 고려될 수 있도록 하는 사전 예방적 환경관리이다.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은 “이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법정보호종 등 야생생물에 대한 정밀조사를 통해 영향 예측 및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되며 특히 부잔교, 야간조명 등 인공구조물은 야생생물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는 원주지방환경청의 의견을 속초시에 전하고 조건부 동의를 해줬다. 하지만 속초시는 이러한 의견에 대한 조치 없이 영랑호 공사 긴급입찰을 발주하고 공사업체를 선정, 속도를 냈다. 
 
시민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제기했고 그 결과 속초시가 이 사업의 보조금 일부를 부당하게 수령했음을 확인했다. 올해 1월에는 강원도에 주민감사청구도 제기했다. 이에 지난 4월 20일 강원도 감사위원회는 “예산 의결 전에 공유재산 관리계획을 수립하여 시의회 의결을 받아야 하는데도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라며 속초시의 절차 위반을 지적했다.  
 
시민들은 속초시와 평가대행업자가 비공개로 작성해 제출한 일반해역이용협의서에서도 문제를 찾아내  지난 2월 23일 해양수산부에 속초와 평가대행업체를 고발했다. 또한 지난 4월 21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 해당 사업의 중단을 요청하는 주민소송과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1년 

 
지난 7월 10일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영랑호에 모였다. 1인 시위에 참여해온 최효섭 씨는 “보통 용기가 아니면 못 서겠더라. 1인 시위를 나가는 날이면 스스로에게 ‘이 일은 우리 자식들에게 옳은 일이야,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걸 남겨주기 위해 내가 앞에 서는 거야.’ 다짐을 하고 길거리에 선다.”고 말했다. 이 싸움은 생명을 지키는 싸움이라는 김희정 씨는 사람 많은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자처해 진행해왔다. 1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다보니 이제는 인사도 하고 선물도 주고받는 아이들도 생겼다는 그녀다. 영랑호가 좋아 퇴직 후 속초에 눌러 앉은 유명혜 씨는 닉네임도 ‘속초댁’으로 바꾸고 몸자보를 입고 영랑호를 걷는다. “그런 걸 왜 하냐고 한탄하는 시민들도 많다. 그런 분들 만나면 힘을 얻는다.”는 그는 영랑호를 알리기 위해 따로 공부도 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이 쬐는 날이나 매일 몸자보를 입고 영랑호를 걸어온 윤관혁 씨는 처음에 어색했던 몸자보가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웃는다. 영랑호 때문에 건강을 다시 찾았다는 최혜지 씨는 이제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영랑호를 걷고 시청 앞에 선다. 올해 74세인 문광천 씨는 몸이 불편해 활동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영랑호를 지키기 위한 마음은 그 누구 못지않다. 이날도 다른 일정 다 제쳐두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담아 꽈배기를 사왔다. 영랑호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영랑호의 진가를 모른다는 엄경선 씨는 50페이지가 넘는 민원서를 작성해 해수부에 제출했다.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에 습지연구회를 만들기도 한 이경상 씨는 “소중한 자원 석호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연구하고 영랑호를 보호하면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제시하기도 했지만 속초시장 머릿속에는 오직 개발뿐이다. 솔직히 패배의식에 지쳐 있었는데 여러분의 솟구쳐 오르는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 장석근 대표는 편해지고자 하는 욕망과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에 맞서 영랑호의 가치를 알고 지키려는 마음이라고 지난 1년을 평가했다. 또한 영랑호뿐만 아니라 동해안 18개 석호를 지키는 일이라고도 했다. “영랑호가 시작되면 다른 석호들로 이어진다. 벌써 고성군도 60억 원을 들여 송지호에 다리를 놓겠다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속초가 되면 바로 시작할 참이다.”라고 우려했다.  
 

“함께 하면 지킬 수 있다”

 
속초시가 영랑호를 개발하겠다며 공사 자재를 영랑호에 갖다놨다.이에 질세라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은 영랑호를 그대로 두라 외쳤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지난 1년간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선 평범한 시민들은 이미 서로에게 전설이자 영웅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7월 7일 속초시는 당장이라도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듯 영랑호 한쪽에 부교 자재 등 콘크리트 블록을 쌓아뒀다. “속초가 정신없는 도시가 됐다. 난개발이 곳곳에서 진행되는데 진정 속초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영랑호는 속초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자 속초의 마지막 보루다. 이미 많은 부분을 뺏어서 우리의 공간으로 만들어왔다. 호수 밖도 모자라 호수 안까지 잡아먹겠다는 인간의 욕심이다. 인간의 횡포를 속초시가 조장하고 속초를 찾는 관광객 역시 환경파괴에 일조하는 관광을 해버리는 것이다. 속초 오지 말라는 캠페인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엄경선 씨가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다른 이들도 심난하긴 마찬가지다. 그 앞에서 박명숙 씨가 호기롭게 외쳤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사업을 막게 되면 최고다. 혹시라도 설치가 된다고 해도 설치를 걷어내는 것까지 가야 한다. 지지치 않고 함께 가자.”
 
글 /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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