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마을 모래톱 가는 길



“먼 길을 걸어보면 알리라 / 길이 오히려 길을 막고 있는 것을”(이원규의 시 「길이 길을 막다」). 길은 멀고 어지러웠다. 굴곡진 길을 헤집고 다니는 ‘강원도 운전사’란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찾기 쉽다는 연포분교를 내비게이션으로 호출해놓고 더듬듯 찾아가는 길은 공사중인 트럭들의 행렬을 따라가는 일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바깥 풍경은 늦봄인 채로 멈췄고, 첩첩 산들에 포개진 집은 비탈진 밭뙈기를 겨우 껴안고 있는 형국이었다. 한 발 헛디디면 순식간에 굴러 내릴 것 같은 그것들이 배경으로 숨었다가 전모를 드러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마를 맞대고 있다는 영월군 가정마을과 정선군 거북마을을 찾아가는 길. 구부러진 물길과 함께 흐르는 길이건만 새로 닦은 길들은 종종 경기(驚氣)하듯 곧게 뻗어 있었다. 강으로부터 자갈과 모래를 갈취하고 있는 굴착기가 오후 햇빛에 길었고, 강과 사람을 이어주던 옛 길의 풍요함은 그렇게 왜곡되고 있었다.

가정마을, 거북마을 사람들
백운골, 연포 지나 산길로 십여 분, 산 속에 조개처럼 박힌 가정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그 길 끝에 거북마을이 숨어 있다. 거북마을의 유일한 주민이라 알려진 재화 할머니네 민박집에 차를 대니, 새로 지은 집이 번듯하고 짖던 개들이 넌떡 물러난다. 집 앞의 밭이 끝나는 곳엔 흰 모래사막이 부시게 펼쳐지고, 동굴을 숨긴 기암절벽이 소스라치듯 솟아 있다.
과연, 척박했다. 북으로 주는 흙은 모래알처럼 버석거리거나 돌멩이에 붙어 죄다 따로놀았다. 남도의 찰지고 탐스런 흙과는 근본이 달랐으며 잘 긁어지지도, 그렇다고 쉽게 바숴지지도 않았다. 물을 끌어올 수 없어 논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이곳,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북처럼 바짝 엎드린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가정마을, 거북마을의 전체 주민이다. “이래 안 해도 되지이, 우덜끼리 해도 되지이….” 모자를 벗었다, 썼다 하면서 말을 잇는 이가 정희득 할아버지(66), 가정마을로 건너갈 때 타는 줄배의 사공이다. 벙싯 웃는 얼굴이 가무숙숙하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상황이 진정한 시간의 실현이라고 했던 철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서울사람들은 줄곧 몽그작거렸고 그새 한 두둑 돌아온 촌로들은 빠르게 엇갈려 갈 길을 갔다. 정희득 할아버지가 물줄기가 자동으로 뿜어져 나오는 쇠막대로 버성기게 구멍을 뚫으면 재화 할머니가 재빨리 고추모를 심었다. 깊은 산골에서는 소 대신 사람이 쟁기를 끌곤 한다던가. 등에 진 물통과 줄을 어깨와 겨드랑이에 걸치고 둘러멘 할아버지는 쑥대처럼 마른 몸 전체가 길이 잘 난 연장이었다. 경운기가 기세좋게 탈탈거렸고, 소들의 배는 무거워 보였다. 인근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그들이다.
세찬 바람이 불 때면 배가 뒤집히기도 하고, 줄을 잡고 배 위에서 뻗대기도 버겁다. 물외 한 포기를 얻어 들고 연화 할머니가 해 지기 전에 서둘러 ‘가정호’에 오른다. 할아버지는 배에 오르기 전 길가에서 우편물을 챙긴다. 가정마을 전용 우체통이다. 쇠줄을 부여잡고 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큰 바람이 왁자하게 불었고, 물에서는 물대로 골 깊은 이랑이 팼다. 줄을 잡고 버팅기는 늙은 사공의 힘과 생때 같은 강물이 하류를 향해 흐르는 힘이 쇠줄을 통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노련한 사공은 채 5분도 안 돼 건넛마을 말뚝에 배를 묶었고 우람한 마을숲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맞아들이고 잠깐 팽창하는 듯이 보였다.



거북이민박 이재화 할머니
“거북이처럼 느리니까 여기서 이래 민박 치고 살지이.” 이재화 할머니(64)가 상을 내왔다. 손님이 많다고, 이제 힘들어서 디딜방아도 못 쓴다고, 작년까지 멀쩡했던 남편이 암으로 갔다고, 울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종일 소처럼 일을 하다보면 딴 생각 안 난다고도 한다. 사이사이 “거 비오나?꼬치 다 심었나? 난 꼬치 숨구고 밥 먹지이.” 줄줄이 통화를 한다. 대처로 나간 자식들이다. 이곳에서만 45년 살았다. 다 키운 첫아들을 사고로 잃었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대찬 막내와 제야의 종을 쳤다는 유명인 아들도 있다. 딸 셋은 시집가서 잘들 산다. “우리 겉은 사람은 항정 무식허지이. 언제는 큰아들이 테레비에 종 치러 나온다 그래 하니 내가 하는 말이, 종은 무슨 종이냐, 너는 똥이나 치라. 너 온다 하여 소똥을 모아놨으이 얼릉 와 똥이나 치라 했으닌.” 천연기념물 제206호인 백룡동굴이 지척인 이곳에서 할머니는 가마솥에 백숙을 끓여 판다. 두릅을 꺾거나 청국장을 떠 팔기도 하고, 소 키우고 밭농사 지으니 궁한 형편은 아니다. 낡은 디딜방아와 최신형 김치냉장고의 조합이 거북마을의 현주소이고, 고향이 내포한 패러독스일 것이다. 지천에 널린 두릅을 따기 위해 뒷산에 오르자 필시 할머니가 다졌을 길이 오롯하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기록
  • 거북마을 앞 모래톱과 동강

    “뱀? 뱀 많지이. 보믄 붙들어야지이. 독 있는 뱀은, 뱀을 잡으려고 요래요래 하믄 뱀 머리가 쉑, 하고 돌아온다고. 구렁이는 앞으로만 가.” 이곳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에 속하는 구렁이와 더불어 유혈목이, 까치살모사 등이 서식한다. 아침엔 너구리, 수달, 고라니 발자국들로 모랫길이 가지런했다. 물론 이곳의 자연이 사람들을 세상과 이어주던 줄배와 다름없는 신세란 것을 안다. 정희득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줄배 또한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도. 그러나 마을은 아직 건재했고 동강에는 시시풍덩하게 넘어갈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수려한 자연 앞에 서면 별수 없이 사람은 또다시 돌아온 계절처럼 통속적이 되는 수밖엔 없다. 규화목처럼, 나무인지 돌인지, 풍광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는 사람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흙에, 강에 우뚝 선 사람들이 제 길을 내고 바지런히 헤쳐 나간다. 그들의 길은 시작도 끝도 없는 반복의 길, 그래서 숭고한 생명의 길이다.
    비닐 조각이 제비나비처럼 검게 날았다. 강가는 흰 모래들로 한동안 자욱했고 마당가에 핀 작약이 할머니의 모자와 함께 너펄거렸다. 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글 / 정유진 기자 jungyj@kfem.or.kr
    사진 /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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