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옥, 재활용예술가의 초상

재활용 예술가 서진옥 ⓒ함께사는길 이성수
 
지난해 12월 10일 저녁, 서울 경복궁역 근처 에코식당. 환경연합 사무총장을 지낸 안병옥 전 기후행동연구소장(환경부 전 차관), 최재숙 에코생협 상무, 황상규 SR코리아 대표를 비롯한 환경운동연합 출신, 그리고 여성환경운동계의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우리나라 환경운동 개척기인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에 환경운동을 시작해 오늘날까지 환경운동의 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다. 모두 한 사람을 환송하기 위해 모였다. 서진옥, 그이는 전설의 환경운동 아줌마들을 이끌며 1986년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공민협)를 설립하고, 1988년부터 3년 간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공동의장으로 활동한 분이다.
 
서진옥 선생이 한국 환경운동의 리더 중 하나라는 무거운 직분을 내려놓고 캐나다로 출국한 건 1991년 1월의 일이다. 부군인 신중현 목사가 캐나다 현지 교회에 목회 지도자로 부임하게 된 상황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간 환경운동의 장에서 국경 없는 환경운동을 하려면 외국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그는 1991년 동아일보가 주는 ‘여성동아대상’ 수상자였다. 상금을 모두 공해추방운동연합에 기부하고 떠났다. 
 
캐나다에서는 토론토에 살면서 교구를 돌보는 한편, 지역 그린피스 사무소에 나가 자원 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다 2000년에는 미국에 가서는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한인 여성들 가운데 불행한 처지에 빠진 이들을 돕는 ‘무지개의 집’(뉴욕 퀸즈 소재)에서 활동했다. 2004년 8월에는 이 단체의 대표이자 사무총장이 되어 더욱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2005년 해외로 이주한 30만 명의 한국계 국제결혼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세계국제결혼여성대회’가 서울기독교100주년회관에서 열렸다. 서진옥 선생은 그 대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활동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다시 캐나다 교구(Lanton Parkland United Church)로 돌아와 살면서 지역 그린피스에서 자원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페이버폴 아트에 매료돼 열심히 배우고 습작했다. 
 
환경운동연합에 기증한 두 작품. 좌 ‘손길’, 우 ‘후쿠시마의 경고’
 
페이버폴 천연고무 80퍼센트, 물 20퍼센트 비중으로 제작된 친환경 물감으로 자연에서 생분해되고 독성이 없다(미국 Art & Creativw Materials Institue certified 인증 AP마크 획득제품). 이 물감은 색을 표현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일종의 접착제 역할도 한다. 그래서 화학용 물감처럼 쓸 수도 있고 다른 재료에 색을 입히면서 접착할 수도 있다. 페이버폴 아트라고 하면 이 물감을 이용해 우리가 생활하며 쓰고 버린 종이, 나무, 헌 티셔츠, 진흙, 철사, 비닐, 스티로폼 등의 폐기물을 재료로 한 입체적 작품을 만드는 예술행위를 뜻한다. 페이버폴 아트는 덴마크에서 시작돼 현재 세계 각국에서 유력한 조형예술분야로 조명받고 있다. 단지 예술적 표현능력뿐만이 아니라 환경과 폐기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일이어서 이 예술운동은 국제기구를 꾸려서 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있다. 2010년 서 선생은 열정적인 태도로 강사양성과정을 수료하고 등록작가가 됐을 뿐 아니라 후배 등록작가를 양성할 수 있는 마이스터 자격도 갖췄다. 
 
캐나다 토론토를 무대로 지역 그린피스와 합동의 페이버폴 전시회와 교육을 하던 서 선생은 2012년 귀국해 파주에 자리를 잡았다. 페이버폴 아트를 통해 소비하고 버리는 무책임한 우리 문명에 경종을 울려 이 예술운동을 한국환경운동의 한 줄기 분류로 세우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귀국 이후 서 선생은 파주 지역사회와 명동 향린교회에 몸과 마음의 거처를 세우고 맹렬한 작품활동, 교육활동, 전시활동을 해왔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개최한 전시회는 거의 100회 이상이다. 그 중에서도 리플렛을 찍은 대형 전시회만 6회에 이른다. 연도별로 그 기록을 보면 서 선생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쓰레기와 함께 여행하기’-2012.10.10~23, ‘쓰레기와 함께 꿈꾸기’-2013.10.02.~16, ‘쓰레기의 부활’-2013.10.30.~11.08, ‘재활용예술작품전시회 쓰레기와 소풍가기’-2014.3.11.~21, ‘쓸모를 이야기하다’-2016.7.30.~8.14, ‘쓰레기의 꿈’-2017.10.30.~11.03 등 페이버폴 아트 전시회를 열었다. 
 
페이퍼 폴 아티스트, 서진옥 선생 환송회(12.10)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들 전시회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사이에도 서 선생은 민족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고문이자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으로서 미술사회운동, 환경운동하는 후배들을 돕고 지원해왔다. 특히 서 선생이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던 분야는 교육이었다. 서 선생은 남이섬에 자리한 남이섬환경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남이섬을 환경미술교육의 큰 집으로 만들었다. 그 연장선에서 서 선생이 의욕을 가지고 임했던 작업이 서울시 교육청이 초중고교 미술교사들의 직무연수교육 과정으로 채택한 페이버폴 아트 강좌였다. 
 
서울시 교육청이 서 선생이 개최한 페이버폴 아트 인테시브 코스(북서울미술관)를 수료한 미술교사들에게 20학점 이수를 인정하는 이 프로그램은 강사와 수강생 모두 만족도가 높았다. 이 프로그램은 교육청 내부에서 상설화 논의가 있었으나 당시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휘발되고 말았다. 서 선생이 또 하나 주목했던 것은 서울시가 재활용 예술작가 초청전시회(2014)를 서울 시민청 갤러리에서 여는 등 페이버폴 아트에 정책적인 관심을 보였던 일이다. 서 선생은 이 전시회를 시작으로 서울시가 시민참여 자원순환생활의 심화와 시민예술로서의 페이버폴 확산에 나서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서울시 자원순환정책의 방향이 ‘업싸이클링’에 집중되고, 페이버폴 아트에 대한 이해와 이 예술운동의 명분에 공명했던 담당자들이 계속 전출되어 목적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 
 
“리싸이클즈 아트, 그러니까 재활용예술과 상품화가 최종 목표인  업싸이클링은 같지만 달라요. 스스로 창조해 자기와 소공동체의 삶에 어메니티를 키우는 예술과 상품으로서의 가치 창조에 중점을 둔 활동은 사실 다른 것일 수밖에 없죠.” 페이버폴 아트를 즐기면서 기후변화를 불러오는 대량생산과 소비문명에 대한 성찰에 이르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행복한 변화를 꿈꿨던 작가 서진옥은 이후 작품활동 자체에 매진하면서 기후변화라는 큰 주제를 조형화하는 작업에 집중해왔다. 
 
2017년 들어 서 선생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지병이 심해지고 더불어 체력과 활기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쉬지 않고 작품 제작, 강연, 회의에 몸을 내몬 까닭이었다. 마음은 작품에 가 있어도 관계와 환경운동에 대한 책임감이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도록 스스로를 허락하지 않았다. “2018년이 되자 현재와 같은 퍼블릭 라이프를 유지하면 작품활동을 오래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가서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큰 작품들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판단을 했지요.”
 
가족이 있는 곳이 고향이다. 페이버폴 아트 작가, 재활용 예술가 서진옥의 귀향은 단순한 퍼스날 라이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삶을 향한 또 다른 열정의 표현이다. 그 열정에 관한 선생의 전언은 이러하다. 
 
“거버넌스가 확대되고 대안을 고민하는 환경운동으로의 변화는 올바릅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스스로 절실한가, 우리 이제 문제도 해결이 아닌 관리를 겨냥하는 데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경계할 일입니다.”
 
맵다. 그 열정이 빚을 재활용예술가로서의 2막1장은 어떻게 열릴까? 즐거이 기대한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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