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주 씨의 ‘나는 엄마다’

경주 시내의 한 초등학교 앞. 따뜻한 햇살에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지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아이들 사이로 주인공이 나타났다. 아이 하나는 등에 업고 또 다른 아이는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뒤를 사내아이가 쫄래쫄래 따라왔다. 아이 셋을 데리고 서둘러 나왔는지 얼굴이 발그스레하다. 그래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저는 10살 승욱이, 8살 소이, 3살 주현이 엄마, 우선주입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회원 우선주 씨와 그녀의 아이들
 
 

경주시민 된 행복절정맘

 
그녀를 따라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의좋은 남매는 빵 하나씩 들고는 옆 테이블에 앉아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고 막내 주현이는 엄마 등에서 내려와 엄마 옆에서 얌전히 빵을 먹었다. 그제야 한숨을 돌리는 우 씨다. 그것도 잠시, 우 씨는 보여줄 것이 있다며 봉투에서 한지 한 장을 꺼내 펼쳐든다. 하얀 한지 위에는 ‘월성1호기 폐쇄 주민투표 요구 경주시민 만인소’라고 적혀있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서명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서명을 받고 있어요. 한 장당 100명의 서명을 받을 것인데 이것을 100장 받으면 1만 명의 서명을 받는 거예요.” 반듯한 글씨는 그녀가 직접 썼다고 한다. “이런 것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아이들 셋 재우고 밤마다 연습했다니까요. 정말 힘들었어요.”라며 웃는다. 
 
우선주(42세) 씨는 자신이 월성1호기 폐쇄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아이들 먹을거리, 건강, 그리고 환경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주부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4년 전 그날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부산이 고향인데 결혼하면서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첫 아이를 낳았는데 아토피가 너무 심했어요. 둘째도 그렇더라고요. 아이 아빠와 의논해서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죠.” 친정과 시댁이 부산에 있고 그곳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경주로 정하게 됐다. 무엇보다 서울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이사를 한 다음날 일본에서 사고소식이 전해졌다. “남편이 3월 10일에 먼저 내려왔는데 그 다음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어요. 전 4월에 아이 둘을 데리고 (경주로) 내려왔는데 그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등급이 3등급에서 7등급으로 올라갔다는 발표가 났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제가 일어교육학을 전공해서 일본 현지 소식들을 좀 더 빠르고 많이 접할 수 있었거든요.” 사고 핵발전소 상황과 수습 소식을 찾아보고 우리나라에 방사능 피해는 없는지 시시각각 일본 관련 웹사이트를 검색하면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성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다 한국 핵발전소는 어떨까 싶었어요. 찾아보니 월성1호기가 수명을 다했고 현재 재가동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게 경주에 있단 사실도요. 정말 몰랐어요. 경주원전이 아니라 월성원전이잖아요. 한동안 우울증이 와서 잠도 못자고 밥도 먹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는 경주를 떠나지 않았다. “경주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10분만 차타고 나가면 유적지에요. 심지어 마을 안에도 유적지가 있어요. 숨겨진 비경도 정말 많아요. 월성1호기 밑에 오유리라는 해변이 있는데 아이들도 정말 좋아해요. 아이들 아토피도 나았고요. 핵발전소만 없으면 참 좋은 곳이죠.” 경주를 떠난다고 해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보였다. 월성1호기 폐쇄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방사능오염식품과 핵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는 시민모임 ‘차일드세이브’ 인터넷 카페를 비롯해 경주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행복절정맘’으로 활동하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현황과 방사능의 위험에 관한 정보를 비롯해 월성1호기를 폐쇄해야 하는 이유 등을 올렸다. “아이들 때문에 주로 새벽에 해요. 처음에는 조회 수도 두 자리를 넘지 못하고 또 경주 지역의 분위기상 강퇴 당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지금은 관심 가져주는 분들이 많아요. 얼마 전에 급하게 월성1호기 폐쇄 1천 명 서명을 받아야 할 일이 있어서 카페에 올렸는데 3일 만에 500명이나 서명해주셨어요.”하며 흐뭇해한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경주를 지키기 위해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서명지를 만들었다. 이제 곧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 빈 종이를 채워나갈 것이다
 
 

웃으면서 월성1호기 보내기

 
어디 온라인뿐이랴. 매주 토요일에는 경주 시내에 월성1호기 폐쇄를 요구하는 피켓 캠페인에 참여하고 지역 성당을 돌며 월성1호기 폐쇄 이유가 담긴 전단지를 나눠주는 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에는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경주시내에 벚꽃마라톤 대회가 열린대요. 월성1호기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환경연합 회원들과 의기투합했죠.” 마라톤 대회 한 달 전부터 학교 운동장을 하루 30분씩 쉬지 않고 달리며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회 당일날 하얀색 방제복을 입고 ‘월성1호기 폐쇄’가 적힌 몸자보를 달고 10킬로미터를 달렸다. 그녀의 목표는 최대한 카메라에 많이 잡히고 시민들이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끝까지 달리는 것이었다. 1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거기에 한낮에 바람도 통하지 않는 방제복까지 입고 달리는 일은 마라톤 풀코스 완주만큼이나 힘들었을 터. 더군다나 한수원이 후원한 마라톤 대회였다. “정말 힘들었어요. 몸도 그렇고 관계자들 시선도 그렇고. 근데 완주하고 나니깐 10킬로미터는 짧대요. 다음에는 하프코스에 도전해야겠어요. 길게 뛰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겠어요?”라며 벌써부터 내년을 기대하는 눈치다. 
 
월성1호기 폐쇄를 위해 서울 상경시위까지 나섰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월성1호기 폐쇄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는 얼떨결에 올라갔고 두 번째는 원안위가 재가동을 결정할 것 같아서 올라가기로 했어요. 새벽 3시에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 버스를 얻어 타고 서울로 올라갔죠. 버스 안에서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주민분들이 이것저것 챙겨주시더라고요. 근데 한 할머님이 생미역을 먹어보라고 권하시더라고요. 혹시 원전 인근 바다에서 채취한 건 아닐까 싶어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월성1호기 밑에 미역 많은데 오염돼서 먹겠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깐 할머니가 우리는 마이 먹어서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하시는데 참. 근데 할아버지가 한 번 먹어보라고 삼중수소 맛 나는가 하시는 거예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었어요.” 
 
결국 그날 원안위는 주민들의 외침을 묵살하고 월성1호기 재가동을 승인했다. “잠을 못 잤어요. 너무 속상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재가동을 하려고 하는지. 원안위 위원들 심사할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전해준 얘기는 기가 막히더라고요.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다고 속상하고 화난 마음을 오래 잡아 두지는 않는다. “어차피 이 일에 뛰어들었고 오래가야 해요. 심각하게 하면 가정생활도 파탄 나요. 이걸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이왕 하는 거 웃으면서 즐겁게 활기차게 해야죠!” 이런 엄마의 모습 때문인지 아이들도 엄마 못지않게 월성1호기 폐쇄를 위해 뛰고 있다. “전단지 나눠주고 피켓시위하는 게 놀이처럼 보였나봐요. 자기네들도 하겠다고. (웃음) 아이 둘이 그림을 잘 그려요. 상도 받기도 해요. 한 축제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주제로 그림 그리는 대회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월성1호기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어요. 내가 보기엔 참 잘 그렸는데 상은 안주대요. 원안위 상경시위에서도 승욱이랑 소이가 그려준 피켓 들고 섰어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승욱이가 빙그레 웃는다. “엄마 활동하는 거 보면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재밌어요. 방사능이 위험하다는 거랑 오래된 원전은 폐쇄해야 한다는 거요.” 기특한 아들의 말에 우 씨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더 많이 알려야죠. 월성1호기는 무조건 폐쇄해야 해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요. 또 경주시민으로서 경주가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길을 가지 않도록 이 아름다운 도시 경주를 지키고 싶어요.”라며 그녀는 다짐한다.
 
월성1호기 폐쇄 촉구를 촉구하며 벚꽃마라톤대회에 참가해 10킬로미터를 완주한 경주환경운동연합 회원들. 오른쪽 끝 해바라기를 단 이가 우선주 씨다 사진제공 우선주
 
 

경주 엄마가 다른 엄마들에게 

 
“바람요? 우리 아이들 건강이죠. 그리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할 거에요. 자주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오래 할 거에요.” 그 길이 처음 가는 길이고 끝을 알 수 없지만 엄마니깐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에 그녀의 결심은 확고하다.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향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매주 토요일 3~5시까지 경주 구신라백화점 앞에서 ‘세상에 외쳐라’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뜻있는 분들은 함께 해주세요. 멀리 계신 분들은 관심을 계속 가져주세요. 그러다 행동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함께 해주세요.” 엄마가 다른 엄마들에게 전하는 당부다.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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