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에서 여주시장 이항진으로

9년 전만 하더라도 그가 여주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시장으로 당선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1991년 결혼과 함께 여주에 정착해 환경운동을 시작한 그는 개발을 노리는 세력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정점은 4대강사업 때다. ‘1500년 만에 찾아온 지역발전 기회’라며 4대강사업을 선동하는 세력에 맞서 당당히 4대강사업 반대를 외쳤다. 그로 인해 찬성 세력들에게 온갖 욕을 먹는 건 기본이고 폭력까지 당했다. 생계수단이던 식당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식당 주차장에 대량의 못까지 뿌리는 통에 결국 식당을 헐값에 팔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4대강사업 반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세상은 공포와 분노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으로 감싸 안고 함께 가는 여정”이라며 남한강을 찾아가고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4대강사업 반대에 나섰다. 4대강사업 완공 후에는 보에 막힌 남한강의 피해를 알리며 강을 살리고자 노력했던 그다. 
 
그런 그가 2014년 여주 시의원 당선에 이어 지난 6월 1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여주시장에 당선됐다. 역대 최연소 여주시장이자 최초의 민주당 당선자란 타이틀까지 얻었다. 사실 그가 여주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여주는 대표적인 보수텃밭으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조차 넘지 못한 곳이다. 더군다나 4대강사업으로 미운 털이 박힌 환경운동가를 시장으로 뽑아줄리 만무하다 생각했다. “세상은 공포와 분노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으로 감싸 안고 함께 가는 여정”이란 그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취임 16일차인 지난 7월 16일 여주시청에서 그를 만났다. 
 
이항진 여주시장
 
당선을 축하한다. 여주시민들이 뽑아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변화를 열망해서일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여주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연환경으로 보면 흐르던 강을 멈추고 호수로 만든 곳이 여주이고 경제적 어려움이 처해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역의 전통상권이 붕괴되었고 교육환경도 불평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여주를 만들어달라고 나를 뽑아준 것이다. 환경운동가였던 내 입장에서 보면 회복이다. 구체적으로 여주시청사 이전계획을 백지화하고 그 예산을 교육환경 개선과 도심 활성화를 위해 사용하고 8개 면에 대해서는 강을 중심으로 그들의 공동체적인 삶으로 회복시킬 것이다.
 
환경운동을 하다가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1991년 결혼하고 여주에 들어와 환경운동을 했다. 4대강사업 전만 하더라도 정치에 대한 뜻이 없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줄 알았다. 근데 실패했다. 당시 4대강사업 범국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두고 여주로 내려왔다. 몸과 마음이 다 피폐해져 더 이상 환경운동을 할 수 없었다. 생계를 위해 한살림에서 일을 했는데 어느 순간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마침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시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4대강사업 반대 활동하면서 많이 힘들었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하에서 전 재산을 팔아 투쟁했지만 그 당시 나만 힘들게 활동한 게 아니었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활동가가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시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활동가 못지않은 활동을 했다.
 
아무래도 4대강사업 전의 남한강의 모습과 4대강사업 계획 수립과 공사 과정, 완공 후 모습 등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예전 모래톱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에 모래가 생겼는지 등 관련한 내용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다. 또 시의원은 관련 자료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정치인 이항진과 환경운동가 이항진, 무엇이 다른가.
 
사실 활동가의 삶과 정치인의 삶이 다르지 않았다. 둘 다 사회변화를 원한다. 시의원이 되고 보니 그동안 활동가로 훈련받은 바가 정치인으로 훈련받은 것이었다. 환경운동가가 제일 중시하는 것이 현장이다. 현장을 찾아 동식물이 제대로 서식할 수 있는지, 우리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인지 따져 묻는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더라. 여주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 행복한지 따져 묻고 일을 한다. 시장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환경운동가 이항진이 추구하는 것과 여주시장 이항진이 추구하는 삶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로 취임 16일차다. 의원과 활동가가 아닌 말투로 시장으로서 갖는 언어생활을 하라고 교육받고 있는데 잘 안 된다(웃음).
 
 
줄곧 4대강사업을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4대강 수문이 개방되고 있는데 남한강은 빠져 있다. 어떻게 보나.
 
그렇지 않아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관련해 얼마 전 수도사업소와 이야기를 했는데 불 같이 화를 냈다. 보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수심과 고도도 구분하지 못하더라. 현장에 가봤냐고 했더니 도면을 봤다고 한다. 수문을 개방하면 취수가 안 되는 것을 확인해 봤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강유역환경청에 취수가 안 되기 때문에 수문 개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엄청 화를 냈다. 지금까지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해본 적이 없던 것이다. 한강유역청장 면담 추진하고 수문개방 할 수 없는 근거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할 일이 많다.
 
남한강 수문을 열 수 있을까.
 
시민들의 인식수준만큼 4대강은 복원된다. 여기서 시민의 범주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4대강사업을 찬성한 사람만이 시민이냐, 아니면 반대했던 사람만이 시민이냐. 찬반을 넘어 여주강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주시민의 대표성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남한강에는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등 3개의 보가 있다. 여기는 남한호다. 남한호로 존재하는 여강을 지속가능하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흐르게 할 것인가. 흐르게 해야 한다는 순간 흐르게 해야 한다.
 
시민들의 인식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강으로 가면 된다. 강에서 함께 인간과 자연이 관계 맺고 살아왔던 것을 회복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여강 100리길도 그 일환 중 하나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 학자, 언론, 여기에 편승했던 고위공직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바뀐 것은 대통령과 몇몇이다. 반드시 책임을 묻는 작업을 해야 한다. 물길을 트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자각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4대강의 복원이다.
 
여주시정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궁금하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이 큰 개념 하나로 싸움을 이어왔다. 여주 조직 시스템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정부의 힘이 너무 막강하고 잘못된 결정을 했을 때 공적영역을 따져 물었던 것이 NGO다. 시정을 펼치더라도 반드시 공적영역에 걸 맞는 시민운동이 건전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다양하게 존재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정책에 참여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또 이러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직사회를 정립해나갈 것이다.(이항진여주시장의 업무결재 1호는 ‘여주시 시민위원회 운영 계획’이었다. 시민위원회는 6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소통기구로 행정지원·복지환경·경제관광·도시개발 4개 분과로 구성되며, 시청의 관·과·소장들도 시민들과 함께 위원회에 참여하여 중요한 지역 현안사항 및 정책결정 때마다 시민들의 의견을 담아 시정 정책자문 역할을 하게 될 예정이다.)
 
어떤 시장이 되고 싶나.
 
사람 중심 행복 중심 여주를 내세웠다. 주체가 시민이 아닌 사람이다. 국민으로서의 주권이 없는 사람은 의료혜택도 받지 못한다. 난민이 그러 하지 않나. 사람 중심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중심 되는 여주를 만들어 여주시민들이 행복하게 살게 되도록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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