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놋쇠 처자의 신나는 환경운동

놋쇠 처자의 신나는 환경운동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샴푸 대신 비누로 머리를 감기 시작했어요. 헹구는 건 식초로 하는데, 엄마가 3배 농축식초를 사 오시는 바람에 오늘은 머리에서 쉰내가 나네요. 하하하!”


첫 인사가 이 정도면 이 사람의 성격, 가히 짐작하실 수 있지 싶다. 올해 서른 둘, 대학졸업하자마자 태평양을 건너가 사이판에서 일도 했고 지금은 강원도 속초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골드미스라 불릴 만도 한데 그녀, ‘놋쇠처자’라 불러달란다.

 

사이판의 쓰레기 산
송지연(32) 씨는 분명 영어학원 교사가 본업이라 했다. 하지만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의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는 면면을 보면 환경운동가가 본업이지 싶다. 숲 해설가, 청초호 새 탐조 교육에 아이들 대상 에너지 교육까지 분야도 다양하고 분야별 쌓은 지식도 대단하다. 칭찬에는 약하다! “다른 선생님들이 교육 시작하기 전에 분위기를 띄우는 바람잡이 전문인걸요.” 손사래까지 친다.
자신이 태어난 속초의 바다와 호수, 산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단다. 하지만 정작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저 멀리 사이판에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이판의 한 봉제공장에 취업해 일했다. “공장에 화재가 난 적이 있어요. 다행히 옷들은 멀쩡했는데 바이어가 옷을 감싸고 있던 비닐커버를 폐기하고 새 걸로 바꿔달라는 거예요. 멀쩡한 비닐커버 몇 만 장을 갈았어요. 그걸 트럭에 싣고 매립장에 버리러 갔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산 하나가 완전히 헐린 채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었어요. 침출수를 막는다고 거대한 비닐을 바닥에 깔아놓고 연신 쓰레기를 실은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죠.”
아름다운 사이판의 이면에 이런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구나 하는 자각이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당시 사이판에는 봉제공장들이 많았고 사이판 당국은 봉제공장들에게 공장에서 나온 폐기물들을 매립하는 조건으로 수출하는 상품가격의 0.05퍼센트를 환경세로 거뒀다. 그토록 폐기비용이 싸니 봉제공장들은 아무 생각 없이 봉제 폐기물을 쉽게 버렸다. 그날 매립장에 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직도 사이판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환경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스웨덴의 한 대학 환경정책 과정을 밟기로 하고 입학 준비를 위해 귀국했다. 4년 만에 고향 속초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환경연합 가입이었다. 매립장 사건 뒤 귀국하면 반드시 환경단체에 가입하리라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몸으로 배운 것들
처음엔 사무국을 찾아가 신문 스크랩을 하거나 자료 정리를 도왔다. 좀 더 도움이 되고 싶어 ‘숲 체험 해설가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거기서 최정화 선생님을 만났죠. 그 분이 진학해서 환경정책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좀 더 배우는 게 어떻겠느냐, 몸으로 현장에서 다양하게 배우라고 권하셨어요. 가지 말고 속초에서 더 경험을 쌓으라고 절 잡으신 거죠.” 스승의 만류에 ‘그래, 청대산만 더 보고 가자’ 했다가 ‘청초호도 좀 배워볼까’ 하다가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현장은 늘 새롭고 만나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일전에 양양 회룡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숲 체험 교육을 했어요. 자, 숲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찾아와 봐라! 했더니 이 애들이 죽은 뱀을 찾아왔어요. 그 개체는 죽어 사라져가고 있고, 또한 숲의 훼손으로 점점 종적인 멸종 위기에 내몰리고 있으니 아이들이 진실을 보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죠.” 즐겁게 활동하고 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못 떠난 미련은 있다. 


숲 교육 이외에 공을 들이는 건 아무래도 쓰레기 문제다. “속초 청대산에도 굉장히 큰 매립지가 있어요. 우리가 버린 쓰레기 때문에 산이 깎여나가고 허물어져 붉은 속살이 다 드러난 모습은 본다면 쓰레기를 버리지 못할 겁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 심지어 집밖에서 생긴 쓰레기까지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 분리수거하겠고 끙끙대니 부모님은 궁상떤다고 못마땅해 하셨다. 허나 쓰레기 배출일지까지 작성하는 그녀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실천에 부모님도 분리수거 달인이 되셨다.


집밖에서도 예외는 없다. 학원에서도 스테이플러 철심을 모으는 작은 컵까지 비치해 모두들 분리수거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틈만 나면 쓰레기 교육을 한다. ‘스티로폼은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비닐봉지도 300년이 지나야 썩는데 그것들이 땅속에 묻힌다.’ ‘아름다운  청대산이 쓰레기 때문에 아파하고 있다.’ “아이들이 쓰레기를 버릴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같아요. 쓰레기를 버릴 때도 어떻게 해야 할지 저에게 묻거나 아니면 집으로 가져가더라고요.” 노래처럼 되풀이되는 그녀의 의식교육에 아이들은 이제 엄마, 아빠를 재교육한다. 생활 속 환경 실천을 배우는 영어학원이라니!


인터넷 쇼핑도 확 줄였다. ‘쓰레기’를 아예 만들지 않을 셈이다. 당장 옷부터 끊었다. 봉제공장에서 옷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봐온 터라 되도록 사지 않고 있는 옷 재활용하거나 옷을 산다면 삼베나 모시로 바꿔볼까 싶다. ‘터치폰’이나 스마트폰의 유혹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도 6년째 같은 휴대전화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해볼 작정이다.  

 
다른 또래들처럼 꾸미고 싶지 않을까. 아직 애인이 없어 괜찮다며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길에서 아이들이 달려와 아는 척을 해요. 새 탐조나 숲 체험, 에너지 교육에서 만났거나 학원에서 제 쓰레기 잔소리를 들으며 같이 공부한 아이들이에요. 그래서 행동이 조심스러워요.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말이 있는데 달리 살 순 없잖아요.”라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황금보단 놋쇠!
“리처드라고 탐조를 즐기는 외국인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는 속초를 파라다이스라고 해요. 그 많은 새들이 인간 가까이에서 공존한다는 것 자체가 파라다이스라는 거죠. 그 친구 말을 듣고는 더욱 마음을 다지게 됐어요. 나는 천국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이란 자부심도 조금 가지게도 됐구요.”


‘너무 바른 생활, 착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라 재미없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환경운동 외에도 2년 전 시작한 마상무예에 푹 빠졌다. 말 타고 활을 쏘는 수준이 대회에 나갈 정도다. 중국어도 배운다! 볼수록 매력 넘치는 처자 아닌가. 착하고 바르고 심지어 재미있는 그녀가 어서 평생의 자기편을 만나 남편이라고 부르게 되기 바란다. 아마도 그 남자는 환경연합의 열혈 회원이 되리라. 이 놋쇠처자를 만나면 ‘부창부수(婦唱夫隨)’가 되고 말테니까.


그나저나 왜 놋쇠처자일까? “호호호, 환경연합에서 활동하는 또래 여성회원 두 분이랑 잘 뭉쳐 다니거든요. 우리가 멀리서보면 빛나는 황금(골드미스)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놋쇠라고 우리끼리 놋쇠시스터즈라고 불러요. 아하하하!” ‘노세(노처녀 세사람)’ 아니었냐고 짓궂게 놀리는 이도 있지만 ‘놋쇠시스터즈’ 이름으로 당당히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지역의 한 단체가 주관한 행사에서 ‘개똥벌레’ 춤과 노래로 좌중을 압도했다고. 삶에 대한 낙천성,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그녀도, 그녀 주변도 유쾌하고 환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놋쇠라고 낮춰도 황금보다 빛날 수 있는 이유다. 환경운동은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기쁘고 즐겁게 하는 거라는 걸 그녀가 새삼스레 일깨워주었다.
힘내라, 그녀와 환경운동하는 세상의 모든 놋쇠처녀들이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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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양한 매력들은 청대산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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