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16] 고향 보험 하나 들어보실래요? / 박은수

지금부터라도 우리 아이에게 남겨줄 ‘산천
지키기’, ‘내 고향 지키기’라는 보험을 든다는 심정으로 뛰어들고 있어요. 지금 이 활동이면 언젠가 혜택 볼 날도 오지 않겠어요?



그녀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었다.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맑은 개울물과 맑은 공기를 자랑하던 고향에 해가 지면 마을엔 훤한 달이 걸려 어른들은 마을이름을 ‘달걸이’라 불렀다. 30년 만의 오른 귀향길, 그러나 그 길은 시련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나선 길
2006년 1월 이춘희(48) 씨는 귀향을 선언했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면서 ‘보험 판매 여왕’까지 올랐지만 지치고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편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더 간절했다. 결국 가족들을 설득해 부모님이 계신 강원도 화천군 원천리에 가까운 춘천에 자리를 잡고 귀향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중 그해 8월 축산오폐수가 원천리 마을을 뒤덮였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축산농장의 오폐수 적치장이 무너지면서 200여 톤의 오폐수가 마을 하천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대량의 축산오폐수가 북한강으로 흘러들어가고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는 등 피해가 컸다. 물론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농장 측은 천재지변이라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인재라고 참았던 분노를 폭발했다.  
30년 전 가마니 공장이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6개월 만에 가마니 공장은 돼지농장으로 둔갑하더니 그 후 농장의 축산오폐수는 마을의 산과 강을 뒤덮고 마을 주민들을 괴롭혀왔다는 것이다. 현재 이 농장은 2만3천 평에 돼지가 2천여 두, 닭이 4만여 수가 사육되고 있다. 주민들은 악취 때문에 제대로 창문을 열 수도 없고 여름이면 파리가 마을을 뒤덮는다. 군청과 경찰서에 민원을 제기한 것도 수차례, 하지만 행정적 감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참다못한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이제 마을엔 평균 70세 이상 11가구만이 남았다.
농장의 축산 오폐수가 터진 날 주민들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고 정치인들도 얼굴을 비치고 이들이 잘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은 잊혀질 뿐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을 회의가 소집됐다. 평균 나이 70세, 농사만 짓고 살아온 주민들이 서류를 꾸려 군에 민원을 접수하고 고발하는 일들이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입을 열었다. “나는 우리 딸에게 일임하겠어요.” 이춘희 씨의 아버지였다.

위험천만 고향 되찾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이춘희 씨와 함께 찾은 마을은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농장 앞에 걸어놓은 ‘그동안 죄송했습니다.’란 현수막은 그저  현수막 인쇄글자에 불과했다. 농장 주변을 둘러보던 이춘희 씨를 발견한 농장 관계자가 뛰쳐나왔다. “이게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나왔어? 이 또라이 같은 게.” 농장 사내의 막말은 시작에 불과했다. 낯선 이들과의 동행에도 농장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농장 사내는 농장주인이 아니다. 농장주가 고용한 농장장이다. 농장의 실제 주인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춘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농장장은 농장 주변을 둘러보고 가겠다는 이춘희 씨를 밀쳐내고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연신 쏟아냈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주변만 둘러보고 가겠다는데 그것도 안돼요?” 그녀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급기야 농장 사내는 경찰을 불렀다. 10분 만에 도착한 경찰은 심드렁하게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농장 사내가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오물을 실은 화물차가 농장에서 나왔다. “저 차 좀 세워줘요. 발효를 하고 나가야 하는데 그냥 나가고 있잖아요. 경찰 아저씨 있을 때 차를 세우고 확인 좀 해줘요.” 그녀의 부탁은 간절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냥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 사람아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어.” 수상쩍은 오물을 실은 트럭이 빠져나가자 농장 사내가 내뱉은 말이다. 경찰의 무시는 농장과 주민들에게 또 다른 불신을 낳고 있었다.

아무리 씩씩하고 호탕한 아줌마라도 농장에서의 상황은 위험해보였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죠. 떳떳하면 공개를 하겠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들어와서 감시를 해요. 비가 오면 장화까지 신고 들어가 오폐수 방류를 하는지도 봐요. 일을 해보니깐 달걀로 바위치기가 따로 없더라고요.”
축산오폐수 문제와 관련해 전문가를 찾기 힘들뿐 아니라 설령 문제가 생겨 군청에 신고라도 하면 축산과는 경찰에 떠넘기고 경찰은 다시 환경과로 떠넘기고 환경과는 다시 축산과로 떠넘기느라 수일이 지나야 했다. 더 힘든 것은 마을의 ‘정’이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저 집에 누가 사는지 자식이 뭐하는지 다 알아요. 혈연, 학연으로 얽힌 지역이라 공정한 잣대나 기준이 잘 통하질 않아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괜한 문제 만들지 말자는 거죠.” 때문에 아무리 준비해 용머리로 들어가도 뱀 꼬리도 나오지 않는 형국이다. 그러다보니 농장주만 더 득의양양해지고 문제해결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농장에서 적극적으로 시설개선을 하고 주민들에게 공개를 하는 노력을 하든가 화천군에서 철저한 관리감독을 하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것이라고 그녀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자빠지고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이제야 걸음마를 떼었다.”며 그녀는 웃는다.

당당함이 아름다운 그녀
그녀는 보험에 있어서만큼은 자신 있다. 20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면서 보험 판매왕에도 여러 번 올랐었고 현재도 춘천에서 보험일은 계속하고 있다. 두 딸의 학비와 생계를 책임져야 하지만 사람 만나고 활동적인 보험일은 즐겁다. 춘천으로 내려오면서 그녀는 보험일 말고도 보쌈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돈 때문이 아니고 30년 만의 귀향길에 고향 구석구석을 돌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이 ‘남자친구’로 부를 정도 워낙 털털하고 용감한 그녀지만 창피할 때도 있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드세냐. 이혼녀 주제에’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어요. 솔직히 창피하죠.” 특히 그녀의 활동이 불편했던 사람들은 주홍글씨를 새기듯 그녀를 옭아맸다. 죄진 것도 없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럴 때면 엄마를 믿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딸들과 부모님, 어깨를 두르려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더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말리던 친구들도 이제는 자랑스럽다고 그녀를 치켜세운다.
축산농가 문제에 뛰어들면서 얻은 것은 또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또 하나 생긴 것이다.  “아무래도 축산농가라 먼저 육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삼겹살을 워낙 좋아하지만 한 번도 내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사육되고 농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결국 육식을 즐기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육식을 많이 줄였어요.” 조경하천에서 생태하천으로, 교통사고에서 로드킬 문제가 하나 둘 보이고 있다는 그녀다.  


고향으로 내려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아마 마을에 축산오폐수 탱크가 터지지 않았다면 전 그저 보험만 하고 있겠죠. 축산오폐수 문제가 터지고 나서 환경단체도 찾게 되고 환경문제에 보이더라고요. 보험설계사인 저도 제대로 보험을 못 찾은 거죠.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우리 아이에게 남겨줄 ‘산천 지키기’, ‘내 고향 지키기’라는 보험을 든다는 심정으로 뛰어들고 있어요. 지금 이 활동이면 언젠가 혜택 볼 날도 오지 않겠어요?”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보험을 든다. 고향에 내려온 후에야 깨달았다. 고향만큼 든든한 보험도 없다는 것을. 봄이면 마을 길을 따라 핀 꽃 향기를 맡고 여름이면 강가에 나가 천렵하고 가을이면 산에 올라 나물도 뜯고 겨울이면 꽝꽝 얼어붙은 달걸이 연못에서 썰매도 타고. 그녀는 안다. 그리고 지금의 시련이 바로 내일의 희망을 위한 투자라는 것을.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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