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74] “내 인생은 해피엔딩” 배우 서승원

8O8O5799.jpg

행동하는 배우이자 환경연합 회원 서승원 씨 ⓒ함께사는길 이성수


서승원이 사내의 이름이라 했다. 또 직업이 배우라고 했다. 영화 『사마리아』, 『왕의 남자』, 『님은 먼 곳에』, 『좋은놈나쁜놈이상한놈』 등등 다수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영화 속 장면보다 광화문 한복판에 서있던 사내가 먼저 떠올랐고 그가 궁금했다. 서승원 씨를 만났다. 


행동하는 비관론자

얼굴을 가렸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자 순한 눈매와 선한 웃음이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키다리 아저씨라면 모를까 저 선한 얼굴로 악역이 가능할까 싶다. 평범한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도 느낌이 있다. “제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소비를 줄이는 겁니다. 웬만해선 거의 사지 않고 버리지도 않아요. 대부분 재활용, 재사용합니다. 이 티셔츠도 13년 된 거고 청바지는 7년 된 옷입니다.” 다시 보니 더 근사해 보인다. 

환경연합 회원이며 소비를 줄이는 것을 비롯해 최근엔 환경을 위해 고양이의 배설토를 바꿨다는 그의 이야기들이 즐겁다. 환경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오래 전부터다. “집에서 20년 동안 강아지를 키웠는데 가족같이 지냈어요. 정확히는 강아지가 저보다 서열이 높았죠. 하하하. 함께 지내다 보니 사람과 동물의 벽이 없어졌어요. 지금도 거리에서 비둘기나 고양이를 보면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아니라 그냥 친구 같아요. 아마 강아지를 키우면서 생명에 대한 감수성도 커진 것 같아요.” 거기에 개인적인 위기의식도 생겨났다. “제가 캔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하루는 계산을 해봤어요. 하루에 3캔을 마시면 한 달에 90개, 일 년이면 1080개의 캔이 버려지더라고요. 캔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100명, 1000명, 1만 명이면 버려지는 양도 엄청나죠. 캔뿐이겠어요. 우리는 매일 온갖 쓰레기와 오염물질들을 배출하고 살잖아요. 이렇게 살다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방사능이나 중금속에 오염돼 비참한 죽음을 맞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20대 내내 들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제가 좀 비관론자거든요.” 하기야 환경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라면 미래를 낙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체념하고 미래를 받아들이는 대신 비극적인 미래를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해 행동한다.   

 

배우가 거리로 나선 이유는?

‘내일의 비극을 막기 위해 오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08년 10월 광화문에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했을 때도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의 고향은 경기도 양평, 줄곧 육지에서 자란 그가 왜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을 위해 일인시위까지 나섰을까. “제주 4.3사건 때문이죠. 우리는 보통 어떤 일에 반대를 하고 행동할 때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이 들어오면 하잖아요. 그런데 제주도민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다며 투표를 거부하고 산으로 올라갔어요. 저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죠. 아름다운 곳으로만 생각했던 제주가 다시 보였죠.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잖아요. 그런 곳에 해군기지라니요. 납득할 수 없었죠.” 당장 강정마을로 달려갈 수는 없었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도심 한복판에서의 일인시위였다.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 해군기지의 부당성을 알리고 시민들의 힘으로 해군기지를 막아내 평화를 지키고 싶었다. “일인시위 직전에 해군기지추진단 책임자라는 분에게 전화가 왔어요.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정중하게. 그게 더 무섭던데요.” 웃으며 뒷이야기를 꺼내지만 엄청난 압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몸이 이렇게 처참히 망가지고 으스러지고 스러질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라고 제주가 그에게 물을 것만 같았고 그 때 답을 하지 못할 것이 더 무서웠다는 그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거리에 섰고 이후에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곳이라면 찾아가 힘을 보탰다. 

그와 많은 시민들의 바람에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대선 직전에 공정률이 10퍼센트 미만이라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해군기지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기대를 했죠.” 그가 느낀 좌절감과 상실감은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강정마을에서 고생하는 분들에 비하면 제 좌절감은 비할 것이 아니죠. 전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죄송해요. 공사가 시작되면 포클레인 앞에 드러눕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지키지 못했어요.” 그는 몇번이고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막고 싶었던 비극은 비단 제주 해군기지뿐만 아니었다. 2007년에는 대운하 반대 피켓까지 만들어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다. “특정한 계기보다는 세세한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서 폭발했던 것 같아요. 찬성 측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폈잖아요. 특히 스크루 이야기에 정말 뒤집어졌어요.” 지금은 국립환경과학원장으로 있는 박석순 교수 이야기다. 당시 박 교수는 선박이 운행하면 선박에 달린 스크루가 돌면서 물속에 산소를 공급해 수질이 좋아질 것이라며 운하 찬성 주장을 펼쳤다. 

이 밖에도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제주 비양도 케이블카 건설 계획 반대 등 그 결과가 어떻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행동했다.  

최근에 그는 또 하나 지키고 싶은 곳이 생겼다. 지리산 용유담이다. “얼마 전 SBS 『물은 생명이다』 촬영을 위해 지리산을 다녀왔어요. 십 년 전에 동강에 댐을 짓겠다고 했을 때 어라연에 가봤어요. 솔직히 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와 이런 물빛이 있나’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그 물빛을 용유담에서 봤어요. 속된 말로 뻑 갔죠. 그곳을 지키는 분들에 따르면 용유담의 바위를 연구하면 지리산의 시원을 알 수 있대요. 그 말을 듣는데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문화재청 역시 이곳을 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해 오는 12월 명승지정 심의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하지만 수자원공사의 계획대로 댐이 세워진다면 용유담은 물에 잠기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리산댐 계획은 수자원공사의 대국민 사기극이에요. 남한에서 가장 높은 댐을 만들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댐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없어요.” 그의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해피엔딩을 위하여

그의 나이 마흔 하나. 시민 서승원만큼이나 배우 서승원도 치열하게 살고 있다. 꿈을 접고 살다가 서른에야 꿈을 찾아 나선 늦깎이 배우, 배우가 되고 싶어 무작정 영화사에 들어가 영상 발송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다가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단역 모집 공고를 찾아 출연했다. 1만 원, 무보수로 출연하며 연기를 배웠다. 몇몇 흥행을 끈 장편영화에 출연을 했지만 여전히 그는 무명배우다. 그래도 그는 배우 서승원의 삶을 놓지 않는다. 

요즘 그가 가장 신경 쓰고 공들이는 일은 바로 육아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도 15개월 된 아이를 돌보는 일이 먼저다. 아이를 돌보다가 인터뷰 하러 온 남자는 인터뷰가 끝나면 곧장 아이에게 달려가야 한다고 귀띔한다. “아내가 다 하고 전 그저 보조죠. 24시간 옆에서 대기하면서 신속하게 움직이는 기동대라고 하죠. 하하하. 남자들끼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이등병 생활할 때라고 했는데 아이 키워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라며 육아의 고충을 슬며시 털어놓는다. 스스로 미달 아빠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북유럽 복지국가 같은 세상을 보여주고 또 아이 손을 잡고 그가 본 아름다운 곳들을 함께 가고 싶은 꿈을 꾼다. 

겨울이 가고 이제 곧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 것이다. “환경운동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돈도 좀 벌어서 환경단체에 기부도 하고 싶고. 잘 되면 변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전 지금 이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며 자신과 독자들에게 약속을 한다.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에 열광한다. 비극을 막기 위해 행동하고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는 주인공이라면 더더욱 열광한다. 인생이 드라마라면 우리 자신은 모두 인생에서 주인공이다. 배우 서승원, 영화 속에서 비록 단역이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그는 진정한 주인공이다. 배우 서승원 시민 서승원의 활약을 기대한다.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제작년월: 

환경단체 소식

사이트 소개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뉴스&월간 환경잡지 입니다.

청소년 보호 정책

구독

구독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