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보건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 _ 임종한



최근 태국 여성 외국인 노동자 8명이 집단으로 ‘말초신경병’이라는 하반신 마비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업병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이 알려져 충격을 던지고 있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기피업종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떠맡겨진 현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사건은 우리사회의 인권과 산업보건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 가지 사건이 우연히 터진 것이 아니라, 영세사업장의 허술한 산업보건관리와 외국노동자 인권문제가 만들어낸 구조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사회를 다시 돌아보고 더불어 사는 사회로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강력한 신경독성물질인 노말헥산
‘앉은뱅이병’이라고도 불리는 말초신경병증(peri-pheral neuropathy)은 신경독성물질 노출로 인해 감각이 둔해지고 운동신경이 손상돼 다리 근육의 힘이 약해져, 결국 걷지 못하게 되는 중한 신경계 질환이다.

원인 물질인 노말헥산은 사업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화학물질로 많은 노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유기용제를 사용하고 있는 사업체 조사에서 톨루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유기용제라고 보고된 바 있으며 국립환경연구원의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에서 약 130만 톤 (2002년)의 배출량으로 전체 화학물질 중 20위 정도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용실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현재 노말헥산을 사용하는 공장은 전국 367개(노동부 집계)사업장에 노동자수는 약 2600명에 달한다.

노말헥산은 메틸부틸케톤(methyl n-butyl ketone)과 더불어 지방족 탄화수소류 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산업적으로 중요한 물질이나 신경독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노말헥산은 급성 폭로시 일시적인 증상이 발생하는 것 외에는 독성이 비교적 경미하다고 여겨져서 20세기 전반기부터 독성이 강한 유기용제의 대체물질로 세척제, 접착제, 잉크 제조 등 산업적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만성적, 반복적 노출로 인한 신경독성이 부각되었다. 노말헥산은 많은 산업적인 용도 이외에도 가사 또는 취미 활동을 통해서도 흔하게 노출될 수 있는 물질이므로 이로 인한 신경독성의 위험성은 생활전반에 광범위하게 도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말헥산의 만성 노출로 인한 신경독성, 특히 말초신경독성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며, 산업장에서는 소규모의 신발 제조 공장이나 비닐샌들 제조공장에서 환기상태가 나쁘고 다른 유기용제와 함께 노출되어 발생한 사례들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1960년대에 일본, 이탈리아 및 대만에서 집단적으로 환자가 발생되었다. 우리나라도 1974년 조사에 의하면 작업장에서 225피피엠에서 655피피엠의 노말헥산에 노출되었던 많은 신발제조 노동자들에게서 중추신경계증상을 동반한 말초신경병증이 확인된 바 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작업환경측정 및 근로자 특수건강검진 등 제도의 시행으로 노말헥산의 직업적 노출로 인한 신경병의 발생이 드물게 보고돼 왔으나 작업환경이 열악한 소규모의 사업장에서 노말헥산의 사용 실태와 직업적인 노출의 수준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노말헥산 노출로 인한 질환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타이어 공장에서 18년간 근무했던 근로자에게서 세척제에 함유된 노말헥산에 의해 말초신경염이, 2002년에는 자동차부품제조업체의 세척실에 근무한 2명의 근로자에서 다발성 말초신경염이 발생한 바 있고, 외국의 경우 중국과 폴란드 등에서 직업적 노말헥산 노출에 의한 말초신경병증이 보고된 바 있다.

일반적으로 노말헥산에 갑자기 노출되면 어지러움증, 황홀감, 마취효과, 눈·코·목구멍 점막의 자극증상, 구역질 및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이는 일시적이고 노출을 중단하면 금세 회복되기 때문에 높은 농도더라도 짧은 시간의 노출은 무해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취급자들이 경각심 없이 반복적으로 노출되기 쉬우므로 사업장에서 노말헥산의 만성 노출로 인한 신경독성은 항상 문제가 될 수 있다.

노말헥산 중독 사건은 태국 외국노동자에게서 집단 발병됐지만, 최근 인천, 부산 등지의 영세사업장 국내노동자에게서도 같은 직업병이 발생됐다. 노동자들이 여러 유해물질에 노출됨에도 적절한 작업환경측정이 시행되지 않았고, 또한 단 한차례의 특수건강진단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허술한 작업환경 측정과 특수건강검진제도가 제도적으로 제재를 받거나 개선되지 않는 데 있다.

산업보건의 사각지대, 영세사업장
노동부가 노말헥산 중독사건 뒤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영세사업장은 산업보건관리의 사각지대임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노말헥산 중독 사건은 태국 외국노동자에게서 집단 발병됐지만, 최근 인천, 부산 등지의 영세사업장 국내노동자에게서도 같은 직업병이 발생됐다. 노말헥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제2종 유기용제, 극인화성 물질, 유해물질, 자극성물질, 환경유해물질이며, 산업보건규칙에서 정한 관리대상유해물질로 규정돼 있다. 해당 사업체의 경우, 세척액의 성분이 ‘100퍼센트 노말헥산’이라고 명시돼 있고, 독성 증상이 기술돼 있었으며, 작업장의 한 벽면에 물질안전관련자료(MSDS)가 비치돼 있지만, 정작 관리자와 노동자들은 노말헥산의 독성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해당 작업장에서는 급성 자극 증상, 즉 어지러움과 점막 자극증상들이 발생할 정도였지만 적절한 국소배기장치 없이 소형 환풍기 몇 대 만이 설치돼 있을 뿐이었다. 노말헥산 등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업체와 소음·분진 등이 심해 유해물질 취급업체로 분류된 업체는 2003년말까지 모두 3만3598곳이다. 이 중 유해물질 노출정도가 기준값을 넘어선 곳은 무려 6547곳으로 조사돼 해당 사업장 5곳 중 1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자들이 여러 유해물질에 노출됨에도 적절한 작업환경측정이 시행되지 않았고, 또한 단 한차례의 특수건강진단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허술한 작업환경 측정과 특수건강검진제도가 제도적으로 제재를 받거나 개선되지 않는 데 있다.



영세사업장 산업재해 해결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불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사업주는 벌금을 물고, 노동자는 강제추방당하기 때문에, 기업주가 작업환경측정이나 특수건강진단시 외국인 노동자를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고, 산재 발생시에도 공상처리하거나 은폐하려 한다. 더욱이 외국인 노동자도 강제추방을 당하지 않기 위해 병원비 일부를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 결국 산재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보상권을 청구할 수 없는 그런 시스템이 더 큰 문제다.

현재 영세사업장의 산업보건관리체계 자체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 국고 지원사업으로 작업환경측정과 보건교육 등이 지원이 되지만, 이 역시 1년에 한정된 것이어서 실효를 거두기 쉽지 않고, 이마저도 일부 사업장에만 기회가 주어질 뿐 대부분의 영세사업장은 작업환경측정, 특수건강검진등과 같은 산업보건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인 지역주민들을 위해 국가가 지역의료보험비의 50퍼센트를 부담하듯이, 5인 미만의 사업장 노동자들이 산업보건서비스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이들 비용을 부담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세사업장 사업주 역시 비용지불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노말 헥산중독과 같은 사건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는 일은 국가의 중요한 책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공단이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사업을 벌여야 한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등을 통해 외국인노동자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도록 방치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또한 좥근로기준법좦과 좥산재보상보험법좦 등의 보호를 받게 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현재 국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중 43.9퍼센트인 18만5719명이 불법 체류자로 집계됐다. 적지 않은 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고, 또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야에서 일하고, 또 더럽고 힘든 일들을 감당해오고 있다. 이제 이들을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이주노동자로 받아들이기 위해, 이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임종한 ekeeper@inha.ac.kr
인하대의대 산업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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