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복지가 진짜 복지다

생태복지가 진짜 복지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전국사무처 정책국 국장 leecj@kfem.or.kr


2007 대선의 최대 쟁점은 ‘한반도 대운하’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사업’이 ‘국운융성’의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한강 하구 비무장지대를 개발하자는 ‘나들섬 프로젝트’도 있었다. 당시 대선정국 아래에서 공약들 대부분은 ‘개발’을 강조해 국민들의 ‘땅값 상승’ 심리를 자극해 표를 얻고자 했다. 2008년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도권 지역의 최대 쟁점은 ‘뉴타운’이었고, 여권 후보들의 뉴타운 공약 앞에 야권 후보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2011년 상황은 변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이 폭발적인 민심의 호응을 얻자 여·야의 한다 하는 인사들은 복지 관련 담화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약발’ 받는 정책 의제 복지가 확실하게 부상했다는 증거다. 여야 간 복지를 바라보는 입장과 온도차에도 불구하고 복지가 우리 사회의 최대 의제로 부상해 관련 공약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는 것은 대규모 개발 의제가 화두가 됐던 과거 상황에 비춰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최근의 복지담론들이 최선의 것들이라 말할 수 있을까? 홍성태 교수(상지대)는 ‘토건국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복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복지는 정의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홍 교수의 「토건국가 극복을 위한 생태복지국가 전략」 강연 (환경연합 전국활동가수련회, 2.19)을 질의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해 게재한다. 복지와 생태운동이 가지는 함수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생태복지는 인류의 보편적 발전 과제
2010년 ‘지구환경시계’는 9시 51분이었다. 2005년 9시 29분보다 22분이나 빨라진 것으로 그만큼 지구환경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위기, 누가 부른 것인가? 이 위기와 복지가 맺는 관계는 또한 무엇인가.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 현재의 지구 생태계는 지구 탄생 이후 무려 45억 년에 걸쳐 진행된 공진화의 결과이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지금 지구 생태계는 갑작스런 재생산 위기로서 파멸 위기를 맞고 있다. 이것은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존재인 인간의 위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태위기가 자연의 위기로 나타나지만 그 원인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 즉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위기라는 점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지구 생태계의 위기는 인간에 의해 완화되거나 극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이 누리는 모든 물과 공기 등 환경재를 포함한 모든 재화와 산물은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복지를 그러한 누림에서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하는 일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정의하고, 자연이 위기를 맞아 더 이상 그러한 ‘인간이 누릴 것’을 제공하지 못하는 지경에 처한다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 보면 건강한 지구와 복지의 기본 관계를 알 수 있다.

 

‘미래학자’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는 자원 고갈과 생태적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우주 식민지 개발이 인류의 역사적 과제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 주장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인 다니엘 벨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인 경우가 드물다’는 의미로 TV 공상과학 드라마를 빗대 ‘스타 트렉 사회학’이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의제로 떠오른 복지와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이 광활한 우주에서 생명이 번성한 곳은 현재까지 지구뿐이다. 머나먼 우주 어느 곳에 지구와 같은 별이 또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 있다. 더욱이 그곳을 찾아가서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은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지구 생태계에서 작동하는 순환운동의 한 요소이다. 우주 식민지를 찾기보다 지구 생태계를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오늘날 인류 앞에는 두 과제가 놓여 있다. 모든 인간들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사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두 번째 과제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자연 속의 존재라는 점에서 두 번째 과제가 더욱 근원적이며, 생태위기의 악화에 따라 두 번째 과제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기존의 복지를 새롭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복지는 ‘물질적 복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심각한 생태위기를 초래했다. 이제 ‘생태적 복지’를 중심으로 기존의 복지를 검토하고 복지의 지평을 새롭게 생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태복지는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인 발전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생태복지의 의미
‘생태복지가 인류의 보편적 발전 과제’란 설명인데, 우선 이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생태복지(ecowelfare)란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생태복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생태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생태계는 생물과 비생물이 어우러져 이루는 체계다. 즉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의 생태계다. 인간은 이 생태계와 무관하거나 그 바깥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생태계의 한 요소일 뿐이다. 생태계의 파괴는 결국 인간의 파괴로 귀결된다. 생태계를 지키는 일,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생태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복지는 아예 생각할 수도 없게 된다. 생태복지는 여기서 비롯된다. 생태복지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인식에 기초해 기존 사회관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정치·경제·문화의 세 영역론으로 대표되는 기존 사회관은 자연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성립했다.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사회는 자연 속에서 성립한다. 자연은 사회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사회는 자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기존 사회관은 새로운 ‘생태적 사회관’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사회와 자연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복지의 목표와 과제에 대해서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나카무라 오사무의 저서 『경제학은 왜 자연의 무한함을 전제로 했는가』가 생각나는 지적이다. 생태적 사회관의 입장에서 생태복지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면 기존 복지관이나 정책과는 많이 다를 듯하다. 어떤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생태복지의 의미를 짚어보자.


첫째, 생태복지는 생태파국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오늘날의 생태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란 의미를 갖는다. 생태위기는 생태파괴와 자원고갈, 두 갈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는 대표적인 생태파괴 사례다. 석유 고갈은 자원고갈의 대표적인 예다.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사막화 확대 등의 문제를 낳는다면, 석유 고갈은 현대 문명의 급격한 종식을 야기할 것이다. 이러한 생태위기를 계속 방치한다면 머지않아 인류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의 멸종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둘째, 생태복지는 단순한 복지의 확장이 아니라 복지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뜻한다. 인류 역사는 소수의 풍요와 다수의 빈곤이 오래 이어져왔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공업혁명으로 모든 인류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공업을 통한 자연의 적극적 가공이 인류 풍요의 비법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풍요가 모두에게 고루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몫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자기 몫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득권층의 격렬한 분배투쟁을 겪은 뒤에야 인류는 정의로운 풍요의 분배를 실현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복지국가의 출현이다. 복지국가는 자유주의(자본주의)와 통제주의(사회주의)의 융합을 통해 나타난 인류 역사의 발전이다.

셋째, 생태복지는 복지의 궁극적인 실현태다. 복지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즉 복지는 단순히 물질적 풍요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데루오카 이츠코(暉峻淑子)는 『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풍요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복지를 ‘적절한 물질을 전제로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풍요로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자연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연은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가장 보편적인 공공재이자 가장 근원적인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을 무시하고 복지를 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기존 복지는 자연을 무시하고 물질의 만족만을 추구했다. 이러한 인식을 전면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자연을 존중하는 복지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복지의 궁극적인 실현이라는 생각으로 ‘복지의 생태적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생태복지는 ‘가장 보편적인 복지’다.

 

생태복지를 ‘가장 보편적인 복지’ 외에도 ‘가장 근원적인 복지’,‘가장 선진적인 복지’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1970년대 이후 생태위기에 대한 대응은 크게 두 방식으로 제기됐다. 하나는 맬더스적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복지의 방식이다. 전자는 불평등을 악화하는 방식으로 생태위기에 대응하고자 했고, 후자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생태위기에 대응하고자 했다. 인권의 원리에 근거했을 때 우리는 당연히 생태복지의 길을 택해야 한다. 생태복지는 생태위기의 해소 또는 완화가 단순히 자연의 보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지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지는 생활 안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생태위기의 시대에 가장 근원적인 생활의 안정은 생태위기 해소 또는 완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생태복지를 ‘가장 근원적인 복지’라고 하는 것이다.


‘가장 선진적인 복지’란 기존 복지국가와 자연 파괴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가진다. 기존 복지국가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자연을 대대적으로 파괴해 엄청난 생태문제를 초래했다. 서구 복지국가의 풍요는 지구 전역을 대상으로 한 생태적 착취의 결과다. 1970년대 이후 이런 착취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결국 서구는 다른 나라에 대한 생태적 착취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울리히 백의 저서, 『위험사회』는 이런 인식을 잘 정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국가의 생태적 전환이 새로운 과제가 됐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확산된 서구 중산층의 탈물질주의도 이런 변화와 연관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태복지는 ‘가장 선진적인 복지’의 의미를 갖는다. 

 

생태복지의 과제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장 보편적인 목표를 생태복지라고 한다면 이를 잘 구현하는 선진국 사례가 있을까. 있다면 그들의 모델을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


생태복지는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인 목표지만 그 목표를 추구하는 경로는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그런 국가적 차이가 경로의 차이를 낳는다. 그래서 한 나라, 한 사회가 기존에 갖고 있던 경로가 이후의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로 의존’(path dependence)의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기존 경로를 무시하는 것은 너무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되거나, 설령 지불한다해도 목표를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기존 경로’, 즉 ‘해외 사례’를 올바로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기존 경로란 나라별로 다른 특수한 사회적 구조를 뜻한다. 모든 나라는 저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특수한 사회적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 사회적 구조 위에서 사회 형태와 사회 주체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외국 사례나 연구 결과의 단순 수입이 해답이 될 수 없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우리 현실에서 배워야 우리 문제를 풀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은 우리 사회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를 겨냥한 복지정책과 담론들이 정치인들에 의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생태복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알려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복지의 생태적 전환, 생태복지의 제도화에 있어서 과제가 있다면?


생태복지는 저기 어딘가에 열매처럼 완성되어 있어서 그냥 따오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 우리 사회를 개혁하려는 치열한 활동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생태복지는 생태파국으로 빠지는 것을 막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실천과제다. 생태복지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재정구조와 정부조직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재정구조 개혁은 왜 필요한가. 복지는 국가가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으로, 많은 재정이 필요하다. 정부가 복지에 세금을 많이 쓸수록 강한 복지국가가 된다. 따라서 복지의 정도는 재정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생태복지가 이루어지려면 기존 복지 분야뿐만 아니라 생태 분야의 재정도 크게 강화되어야 한다. 생태복지는 생태위기의 개선을 우선적인 목표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존 복지 분야를 축소하고 생태 분야의 재정을 강화해야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오염된 수돗물을 대신해서 생수 사먹을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수원과 수도관의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생태복지다. 또 오염된 대기 때문에 늘어나는 호흡기 질환에 치료비를 대주는 게 아니라 대기 오염을 막는 것이 생태복지다. 이런 변화는 단기적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는 정부조직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는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예컨대 시대적 소명을 다한 정부조직은 해체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히려 확대되는 수도 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정부조직의 유지와 확대에 나서는 일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어느 나라나 있는 일이다. 결국 공익을 내걸고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가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부조직들이 ‘국가의 사유화’를 자행하는 주체가 될 뿐만 아니라 변화의 요구를 억압하거나 왜곡해서 사회 발전을 제약한다는 사실이다. 생태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생태계의 한계를 무시하고 개발을 능사로 여기는 정부조직들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개혁하지 않으면 이런 정부조직들은 생태복지의 요구를 억압하고 왜곡해서 사익을 추구할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기존의 복지와 관련된 업무를 다루는 정부조직도 상당한 개혁을 필요로 한다. 생태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복지를 생태의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생태복지는 복지와 관련된 정부조직의 생태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MB정부의 행태를 보면 국가의 사유화라는 지적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국토해양부 등 토건 관련 부서의 역할과 기능은 비정상적으로 강화됐고 환경부서는 토건 관련 부서의 들러리나 뒤처리 기구화하고 있다. 토건 관련 부서는 산업적 이익을 위해 환경적 이익을 후순위로 돌리는 일을 당연시한다. 이들과 동맹관계인 토건산업의 과도한 비중이 조정돼야 하지 않는가. 토건이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고 살림살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시민들의 막연한 두려움도 극복할 과제가 아닌가.


그렇다. 생태복지를 위해서는 산업구조와 고용구조가 개혁되어야 한다. 우리가 앞서 말한 재정구조와 정부조직의 개혁은 생태복지를 이루기 위한 공적 부문 개혁의 핵심적인 과제다. 공공영역의 개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적 부문의 핵심과제인 산업구조와 고용구조 개혁도 함께 가야 한다. 생태복지는 기존의 복지에 생태적 고려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생태복지는 이런 수준을 훨씬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반생태적인 사회를 생태적인 사회로 전환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개혁은 중요하다. 재정구조와 정부조직의 생태적 개혁은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생태적 개혁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서 생태적 고려가 보편적으로 확립될 때, 비로소 생태복지는 성숙과 발전의 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누가 그러한 개혁을 해낼 것인가. 주체의 문제가 나선다. 현대의 복지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을 기반으로 서구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수입상적 지식인이나 운동가는 노동운동의 강화를 통한 복지의 확립을 복지국가의 유일한 길인 듯이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이 약한 곳에서는 복지국가는 불가능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핀란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다수의 시민이 원한다면 복지국가는 가능하다. 생태복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태복지는 기존 복지를 개혁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생태복지는 기존 복지를 지탱하는 노동운동과 대립하기 쉽다. 중요한 것은 다수 시민이 생태복지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생태복지를 향한 길에서는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의 구성원,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가 진지한 성찰과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한국적 생태복지 전망
생태복지라는 의제는 4대강사업 등 국가 주도 토건사업에 의한 환경 파괴에 저항하고 있는 환경연합을 비롯한 모든 시민사회, 환경단체들의 활동을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현실은 토건 마피아가 지배하는 실정이다. 국토생태를 파헤치고 복지재정을 파탄내며 결국 국가사회의 미래를 허무는 이 괴물은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괴물에게 이름부터 붙여보자. 한국의 생태복지 실현을 가로막는 존재, ‘토건국가’다! 토건국가는 막대한 혈세를 탕진해서 국토를 파괴하고 부패를 조장하고 토건족과 투기꾼에게 막대한 이익을 제공하는 기형적인 개발국가를 일컫는다. 본래 토건국가는 현대 일본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1970년대 말 일본 학자들이 고안한 개념이다. 일본은 1950~60년대의 고성장을 통해 1970년대 초에 복지국가를 이룩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지만 일본의 보수 집권세력인 자민당은 복지국가가 아니라 토건국가를 만들고 말았다. 전국 곳곳에서 불필요한 토건사업을 벌이면서 혈세를 지역의 토건기업과 지주 등 지역사회의 기득권층에 제공하는 대가로 표를 받는 구조를 고착시킨 것이다. 그 폐해가 너무나 심각해서 결국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란 비판과 함께 일본은 토건국가 개혁의 길로 돌아섰다.


한국에서 토건국가는 1960년대 초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개발독재가 그 시초다. 박정희 정권은 국가 주도 대규모 개발의 고속 추진을 통해 고성장을 이루려 했다. 그 결과 토건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팽창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토건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커졌고 이들이 행사하는 경제권력도 커졌다. 국민들도 이런 구조에 길들어 토건산업을 정상화하기 어려워졌다. 토건산업의 정상화는 양적 축소와 질적 성숙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은 민주화를 통해 지속적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됐지만, 불행히도 민주화 세력도 토건국가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 결과 민주화 동안에도 토건국가 문제는 더욱 더 악화됐고, 토건세력의 집권과 함께 토건국가의 극단화가 이루어졌다. 일본이 1990년대 이후 토건국가 개혁에 착수한 것과 반대로 한국은 그때부터 더욱 악화됐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제시됐던 ‘토건국가를 복지국가로!’라는 구호는 지금 우리에게 아주 생생한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생태위기의 현실에 비춰 이 구호는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파괴적인 토건국가를 생태적인 복지국가로!’

 

최근 대권 후보들의 복지 논쟁을 보면, 특히 복지의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관해서 2퍼센트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작년 연말 2011년 예산 날치기에서 4대강사업 예산 확보를 위해 민생복지 예산이 축소 또는 삭제됐다. 바꿔 생각하면 4대강사업 등 토건사업을 줄이면 복지 예산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생태복지’예산,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 공공부문 발주 토건사업은 매년 50조 원을 넘었고 특히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는 거의 100조 원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 타당성이 의심되는 4대강살리기 사업과 같은 불필요한 토건사업들에 막대한 혈세를 탕진하고 있기 때문에 복지 예산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권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복지정책을 피력하고 정책 개발을 천명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확산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토건국가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보편적 복지’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는 쪽에서는 사회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구현해야 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증세’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전제는 옳지만 결론은 옳다고 하기 어렵다. ‘증세’는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우며 꼭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훨씬 쉬우며 분명히 옳은 방식은 ‘증세’가 아니라 ‘전세’이다. 불필요한 토건사업에 탕진되는 막대한 혈세를 꼭 필요한 복지사업에 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그냥 복지의 확충을 위해서도 토건국가의 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지국가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애물인 토건국가에 대해 무심하거나 무지하면서 ‘보편적 복지’는 물론이고 복지의 확충을 주장하는 것은 그저 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토건국가는 막대한 재정을 탕진해서 소중한 국토를 파괴하는 기형적인 개발국가다. 토건국가는 대대적인 자연의 파괴를 매개로 막대한 혈세를 분배해서 거대한 정치적 이권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토건국가는 생태위기를 크게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토건국가의 개혁은 토건국가가 자행하는 대대적인 파괴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중대한 생태적 개혁에 해당된다. 토건국가의 개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끝없이 자행되고 있는 각종 파괴를 대대적으로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것이다.


생태운동 쪽에서도 이 사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파괴 현장이나 관련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천을 개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생태운동의 올바른 방식이다. 토건국가라는 구조와 그것을 가동하는 주체를 개혁하는 것이 생태운동의 핵심과제가 돼야 한다. 이것은 결국 토건국가형 재정구조와 토건국가형 정부조직을 개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태운동의 개혁도 대단히 시급한 과제다. 나아가 생태운동은 자연의 보호가 단지 자연의 보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지의 증진을 위해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과제라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널리 알려야 할 임무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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