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줄이는 특별한 알맹상점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일회용품은 거들떠보지 않아도 야속하게 쓰레기는 나온다. 사실 쓰레기라고 하기에도 뭐한 것들이다. 세탁세제 용기, 삼푸 용기, 화장품 용기 등 알맹이만 빠졌을 뿐 깨지거나 흠난 곳도 없이 쓸데없이 튼튼한, 쓰레기들이다. 물론 리필 세제를 사서 쓸 수도 있다. 문제는, 리필 용품조차 다른 종류의 플라스틱 포장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리필’은 시중에 없는 것이다. 특히, 화장품 용기는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용기에 PVC가 함유되거나 구조가 복합한 탓에 재활용까지 어렵다. 쓰레기통에 화장품 용기를 버리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용기에 내용물만 다시 채울 순 없을까?’ 이런 바람을 현실로 만드는 곳이 있다. 알맹이만 파는 상점, ‘알맹상점’이다. 
 

국내 최초 리필스테이션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 문을 연 알맹상점
 
알맹상점은 지난 6월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 문을 열었다. 25평 남짓한 작은 상점이지만 생활에 필요한 것들 대부분이 진열되어 있다. 공산품만 있는 건 아니다. 찻잎과 올리브유, 발사믹소스 등 식료품까지 준비돼 있다. 눈에 띄는 건 그 모든 상품들이 여느 상점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100% 페트병으로 만든 마스크 끈, 소창으로 만든 다회용 커피필터, 종이테이프,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든 줄넘기, 커피찌꺼기로 만든 화분과 연필 등등 대부분의 물품은 재사용이 가능하거나 재활용으로 재탄생된 제품들이다. 또 하나 남다른 점은 개별 포장된 물품들이 없다는 점이다. 칫솔이나 비누 등 고체로 된 물품뿐만 아니라 세제나 화장품, 기름 등 액체류도 마찬가지다. 
 
세제나 화장품 등 액체류는 5리터 통에 담겨 있는데 각 용기 앞에는 화장품 제조업체, 책임판매업체, 제조번호, 제조일자를 비롯해 제품에 들어간 성분들이 큼지막하게 표시되어 있다. 현재 알맹상점에서 판매중인 액상 세탁세제나 섬유유연제, 주방세제는 모두 환경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세제이며 화장품 역시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이다. 
 
액체류 제품은 1g 단위로 구매 가능한데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내용물을 담을 용기를 준비해온다. 둘 용기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잰다. 셋, 원하는 제품을 용기에 담는다. 넷, 용기무게를 제외한 내용물의 무게를 적어 카운터에서 계산하면 끝. 주방세제, 바디워시, 클렌징, 섬유유연제, 삼푸, 로션, 올리브기름, 발사믹소스 등도 같은 방법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벌크 용기도 일회용이 아니다. 알맹이를 다 팔고 용기가 비면 용기를 세척 소독해 제조사에 보내 재사용하고 있다. 쓰레기가 나올 수 있는 구멍들을 미리 다 막아버렸다. 말 그대로 알맹이만을 판매하는 ‘알맹’ 상점인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포장재 없이 내용물만 리필해가는 상점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국내에선 찾기 힘들었다. 물론 플라스틱 포장재 쓰레기가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되면서 몇몇 선도적인 가게들이 낱개로 판매가 가능한 물품을 포장재 없이 벌크로 판매하기도 했지만 액체류를 포장재 없이 판매하기 시작한 곳은 ‘알맹상점’이 처음이다. 
 

‘알짜’들이 일내다   

 
한 손님이 화장품을 준비해온 유리병에 담고 있다
 
국내 최초로 액체류 리필스테이션에 도전한 이들은 세 명의 ‘알짜’들이다. 고정금숙 씨와 양래교 씨, 이주은 씨가 공동대표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고정금숙 대표는 오랫동안 환경단체에서 활동했지만 두 대표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주부다. 세 대표 모두 ‘장사’라고는 해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취미 삼아 상점을 낼 만큼 돈도 많지 않다. 
 
시작은 ‘알맹모임’이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며 뭐라도 해보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스스로를 알맹이만 원하는 자, ‘알짜’라 칭하며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2018년에는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를 슬로건 삼아 망원시장에서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대여, 용기사용 캠페인을 벌였다. 대형 마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환경 마케팅이 약한 전통시장에서 비닐봉지를 줄이는 활동을 했던 것이다. 세 대표는 2019년 알맹모임에서 만난 ‘알짜’들이다. 양래교 대표는 “활동을 해보니 비닐봉지 줄이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었어요. 한편으론 다들 쓰레기가 더럽고 버려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관리를 잘하고 제대로 배출하면 자원이 될 수 있거든요. 이를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어요.”라고 말했다. 고 대표와 이 대표도 같은 생각이었고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준비기간만 6개월이 걸렸어요. 다들 경험도 없고 리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적어 걱정이 많았죠. 망할 때 망하더라도 1년은 버텨보자며 시작했어요.” 양 대표는 겁 없었던 시작을 웃음과 함께 회상했다. 
 
화장품이나 세제 등을 포장 없이 소분 판매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그나마 세제는 프로젝트 차원에서 망원시장에 조그마한 세제리필샵을 마련해 운영한 경험이 있었지만 화장품은 까다로운 규제 탓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다행히 맞춤형 화장품 관련법이 개정돼 올해 3월부터 시행되면서 그 문이 열리게 됐다. 「화장품관리법」에 따라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을 취득하면 화장품을 소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화장품제조관리사자격증만 생기면 다 되는 줄 알았거든요. 다행히 합격을 했는데 끝이 아닌 거예요. 식약처로부터 화장품을 판매하는 공간에 대한 허가도 받아야 했어요.” 양 대표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세 번째 도전 끝에 식약처로부터 허가를 받았지만 더 큰 산이 남아있었다. “제조업체로부터 물품을 납품받아야 하는데 다들 콧방귀를 뀌더라고요. 대부분 내용물을 정해진 용기에 담아 완제품으로 제작하도록 공정이 자동화 되어 있어요. 그런데 기존 용기와 다른 용기에 제작해 달라고 하니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었어요. 더군다나 100킬로그램도 아니고 10킬로그램의 소량인데다 벌크용기도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가격도 착해야 한다, 나쁜 성분은 빼 달라 등등 요구가 참 많았으니까 제조사 입장에서는 황당했겠죠.” 양 대표는 그런 와중에도 환경단체에서 화장품 유해물질 관련한 활동 경험이 있던 고정금숙 대표가 화장품 성분 하나하나 검토하고 미세플라스틱이 함유된 화장품은 골라내는 등 화장품 선정을 까다롭게 했다며 웃었다. 
 
다행히 한 화장품제조회사에서 이들이 내건 조건을 수락하며 물품을 납품해주기로 했다. 수익을 바라고 한 일이라기보다 ‘쓰레기 줄이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세 대표의 뜻에 그 회사가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은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가격도 비싸고 얼굴에 바르는 건데 과연 소비자들이 리필로 사려고 할까 싶었거든요. 근데 소비자들이 먼저 찾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확신을 얻고 시작했죠.” 
 

다 쓴 유리병과 병뚜껑 받는 상점 

 
양래교 알맹상점 공동대표
 
쓰레기 문제에서 출발한 만큼 알맹상점의 물품 선정기준도 엄격하다. “한 번 쓰고 버리는 물품은 취급하지 않아요. 천연제품이나 생분해 제품이라도 일회용품은 판매하지 않아요. 개별포장되어 있는 것들도 가급적 취급하지 않아요. 포장이 되어 있는 것은 제조사에 미리 얘기해 포장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 드리고 있어요.”
 
‘알맹상점’의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손님들에게 다 쓴 유리병과 병뚜껑 등 ‘쓰레기’를 기증 받는다. ‘알맹상점’ 한 켠에 마련한 ‘회수센터’에는 시민들이 기증한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용기, 플라스틱 병뚜껑 등이 쌓여 있다.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용기는 다시 세척 후 소독해 용기를 준비하지 못한 손님들이 재사용하도록 하고 플라스틱 병뚜껑 등 작은 플라스틱은 서울환경연합이 운영하는 플라스틱방앗간으로 보낸다. 이렇게 수거된 자원은 새로운 물건으로 재탄생해 판매되기도 한다. 커피 찌꺼기로 만든 화분과 연필, 폐 우유팩으로 만든 화장지 등이 그것이다. 
 
신기한 물품과 회수센터 덕에 손님들의 질문도 끊이질 않는다. 이날도 양 대표는 유리병을 왜 재사용하는지, 플라스틱 병뚜껑을 왜 모으는지 등등 손님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활 속에서 잘 모르는 것들, 이를 테면 이 쓰레기가 재활용이 되는지 안 되는지, 어떻게 분리 배출해야 하는지 등을 궁금해 하세요. 사실 앉아서 장황하게 하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잖아요. 생활 속에서 짧게 전달하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쓰레기를 줄이는 공간

 
상점을 연 지 반 년째, 다행히 월세 낼 정도로는 운영이 된다며 양 대표는 웃는다. “주차공간도 마땅치 않고 용기도 직접 준비해서 와야 하는 불편함에도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을 보면 보람이 있죠.”라며 “영리가게이긴 하지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쓰레기 교육도 하고 캠페인도 함께 진행하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제로웨이스트 샵보다는 쓰레기를 줄이는 공간으로 성공하고 싶어요.” 포부를 밝히는 양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글 /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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