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새 두루미

신축년 새해, 해돋이와 더불어 두루미를 보려고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과 함께 강화 동검도 갯벌을 찾았다. 동 트기 전 해안가 멀리에서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파가 밀려와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밑돌았다. 밤새 물이 빠진 갯벌 물골 주위가 얼어붙었다. 소금기 때문에 좀처럼 얼지 않는 갯벌이지만 영하 10도 이하 기온이 지속되면 얼 수밖에 없다.
 
두루미는 수컷이 선창을 하면 암컷이 따라서 노래를 부른다. 부창부수란 사자성어는 이런 모습에서 유래됐다
 
겨울 진객 두루미(천연기념물 202호,멸종위기종 1급)가 강화도 남단 갯벌에 있다는 사실은 탐조가들조차 아는 이가 많지 않다. 강화 남단의 동검도, 동그란섬, 황산도, 세어도 사이의 드넓은 갯벌에 단 40여 마리의 두루미가 가족 단위로 활동하고 있다. 물골 사이에서 물고기와 칠게를 사냥하는 터라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만조시 수위가 높으면 두루미들은 물길을 따라 육지로 접근한다. 강화에서 두루미를 관찰하려면 바다의 수위가 높은 사리나 조금 때, 만조시간을 맞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버지 ! 만조 시간이 거의 다가 오는데, 두루미가 보이지 않아요. 울음 소리도 없고!” “글쎄다. 평상시 같으면 저 발치에서 벌써 먹이 활동을 시작 했을텐데…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일출 시간대에 두루미 활동을 촬영하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해는 이미 청라와 영종대교 사이로 떠올랐고, 물은 서서히 빠지고 있었다. 두루미가 날아와도 이제는 거리가 멀어져 망원렌즈도 무용지물이다. “아버지 저기 세어도 방향에서 두루미 한가족이 날아와요!” 쌍안경으로 먼 곳을 관찰하던 아들이 속삭였다. “두루루” 어린 새끼 2마리를 대동한 두루미 부부가 동그란섬 인근 갯벌에 안착하며 합창을 한다. 워낙 춥다보니 두루미의 활동시간도 평소보다 늦었다. 곧 다른 가족들도 날아와 안착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물골이 드러나자 두루미들은 흩어져서 칠게 사냥에 나선다. 
 
겨울철새 두루미 부부가 인천시 강화남단 갯벌에서 아침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한국을 찾는 대부분의 두루미들은 러시아의 아무르강 유역의 광활한 습지에서 번식하고 중-러 국경지역인 한카호 지역을 거쳐 철원, 연천으로 온다. 그런데, 강화 두루미들은 정확히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의 헤이륭장성 습지에서 번식한 두루미들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철원과 연천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들은 논에 떨어진 벼 낙곡을 주식으로 하지만, 강화 두루미들은 갯벌에서 게를 주로 잡아먹는다. 대학원생 시절 두루미 연구를 했던 아들은 강화 두루미에게 관심이 많고 깊은 애정을 갖고 관찰하고 있다. 아들의 관찰에 따르면 강화 남단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들은 세어도에서 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수도권매립지 내의 호수에 오는 경우도 있다. 갯벌에서 사냥은 하지만, 물은 반드시 민물을 마시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동검도의 바닷가에 민물이 흘러나오는 우물터에 항상 들렸는데, 최근 동검도에 개발 붐이 일면서 두루미의 활동 공간도 좁아지고 있다. 이들의 주 활동 영역은 원래 인천의 연희동 일대와 청라도였다. 공단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갯벌습지가 사라지자, 활동권역이 지금처럼 강화 남단으로 축소된 것이다. 인천시의 상징이 바로 두루미다. 두루미의 생활공간을 대책 없이 훼손해 결국 그들의 생존마저 위험에 빠뜨리면서 인천시는 어째서 두루미를 시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일까.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두루미들이 강원도 철원군 DMZ를 날고 있다
 
지금이야 카톡이나 메신저로 신년인사를 주고받지만, 대략 스무 해 전만 해도 신년 초에는 두루미 이미지가 담긴 우편 연하장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가장 동경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장수, 건강, 행운의 상징이자 고고한 기풍을 가진 존재로 여겨져 선비들의 동경을 받았고, 부부애가 각별한 평안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사람 크기만한 거대한 새가 기류를 타고 가뿐히 내려왔다가 홀연히 사라진다.’거나 ‘두루루’ 아름다운 목소리는 10리 밖까지 퍼져나가며,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유연하게 둥실둥실 춤추는 몸짓을 보여주는 두루미는 하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였다. 두루미에 대해 전하는 말이 많지만, 나는 특히 ‘학명구고 성문우천(鶴鳴九皐聲聞于天)’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두루미가 아홉 곳의 언덕 너머에서 울어도 하늘은 그 울음소리를 듣는다.’는 말이다. 의역하면 ‘현명한 사람은 숨어 살아도 세상 민심이 다 안다.’는 시경의 말이다. 
 
두루미과는 전세계에 15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대표적인 월동군이고, 검은목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캐나다두루미, 쇠재두루미도 이따금 보인다. 이들 중 가장 덩치가 가장 큰 것이 두루미다. 체장이 140~160cm이고 날개 길이는 240cm나 된다. 머리 꼭대기에 붉은 반점이 있어 단정학(丹頂鶴)이라 표기하기도 한다. 야생 생태계에 남은 개체수가 5000여 마리 미만에 불과해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이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에 올려 두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202호, 보호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한반도를 찾은 두루미 가족이 강원도 철원군 한탄강에 인접한 철원평야 농경지에서 낙곡을 찾고 있다
 
두루미는 한반도에 11월 말 찾아와 3월 말 돌아간다. 조용한 곳을 좋아해 강원 철원과 경기 연천에서 주로 월동하고 파주와 강화에서 일부가 월동한다. 월동 개체수는 1000마리 미만이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남녘에서 월동한 기록이 있지만, 지금은 남북이 대치한 접경지역 주변에서 겨울을 난다. 철원 지방에 두루미가 집단 월동하고 있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국제두루미재단 설립자 조지 아치볼드 박사는 한국전쟁으로 산화한 병사들의 영혼이 부활한 새가 두루미라고 말한다. 두루미들의 고향은 러시아와 중국의 아무르 강 유역의 광활한 습지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들의 주요 번식지를 자연보호구로 지정 보호하고 있지만, 습지가 농경지로 변하고,인간 활동공간이 확대되면서 번식지가 줄고 있다. 아무르 강 유역에서 번식한 두루미들은 10월 말이 되면 가족 단위에서 무리를 이루며 한카 호 주변으로 집결한 후, 한반도와 중국 중부지방, 일본 북해도로 이동해 월동한다. 일본 북해도의 구시로 지역은 두루미가 사계절 지내는 곳으로 유명한데 이 두루미를 보러 관광객들이 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다. 겨울철 철원지방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들은 주로 농경지의 낙곡을 먹지만, 본래 두루미는 잡식성이다. 특히 번식철에는 단백질이 많은 물고기로 새끼들을 양육한다. 철원 한탄강에서 다슬기를 잡기도 하며, 연천에서는 율무밭을 파헤친다. 강화에서 월동하는 개체들은 갯벌에서 칠게를 주로 사냥한다. 한국에서 월동한 후 번식지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머무르는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체력 보강을 위해 들쥐를 집중적으로 사냥하기도 한다. 
 
두루미란 이름은 ‘두루루’소리를 내는 울음에서 유래된 순 우리말이다. 두루미 류의 라틴어 속명인 ‘Grus’의 어원도 ‘그루루’라고 우는 것에서 비롯됐다. 두루미가 사람보다 맑고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발성기관인 명관이 트럼펫 같은 관악기처럼 길게 구부러지고 휘어져 소리를 증폭시켜 멀리까지 퍼지기 때문이다. 두루미와 외모가 비슷한 황새는 이 명관이 없기 때문에 울음소리를 내지 못한다. 두루미의 울음소리와 우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 수컷이 먼저 울고, 암컷이 따라 우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단어가 여기서 비롯됐다. 두루미의 부부애는 각별하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평생 부부애를 과시한다. 번식철 둥지를 같이 짓고 교대로 알을 품고 새끼 양육도 같이 한다. 1994년 강원도 철원 민통선에서 차량에 치어 숨진 배우자 곁을 떠나지 않는 재두루미와, 1998년 3월 충남 서산 천수만에서 기력이 쇠진해 북상하지 못하는 늙은 배우자 곁을 지키고 있던 흑두루미를 생각하면 그 애틋한 부부애에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인류보다 몇 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나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두루미의 노래가 지구촌 곳곳에서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사람의 영역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두루미의 주요 생활공간인 습지가 줄어들고 있고, 월동지 서식 조건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월동지의 생태환경도 녹록치 않다. 가족 단위로 흩어져 생활해야 할 두루미가 일부 지역에, 그것도 겨울철 인간이 먹이를 공급하는 지역에만 밀집돼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인류가 경험하고 있듯이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나 전염병 발생으로 월동지에서 떼죽음을 당할 가능성도 높다. 두루미가 써온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면 인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루미가 사라진 세상에는 인간도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두루미를 지켜야 할 이유다. 공생, 아니면 공멸…. 
 
글 사진 / 김연수 저널리스트,한양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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