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갯벌 간척과 보존운동의 역사

새만금 갯벌 내측 매립 공사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에는 약 2500km2 면적의 갯벌이 있다. 좀 더 현실감 있게 설명해보면 해안선 250km를 따라 10km 폭의 갯벌이 있는 셈이다. 서울시 면적(약 600km2)의 4배가 넘는다. 북한과 중국을 포함하여 황해 전체에는 약 1만km2의 갯벌이 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와덴해 갯벌의 면적이 약 4500km2임을 감안하면 황해갯벌은 이보다 2배가 더 넓다. 
 

한국갯벌의 우수한 생물다양성

 
황해갯벌은 와덴해 갯벌에 비해서 면적이 넓을 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이 더 높다. 사실 면적이 수천km2에 달하는 두 갯벌의 생물다양성을 비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볼 때 무리가 있다. 생물다양성은 유전자, 종, 서식지 다양성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개념으로 이 세 가지를 모두 고려한다는 것이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종다양성 한 가지만 놓고 봐도 생물의 분류군 별로 전문가가 따로 있기 때문에 모든 분류군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또한 종다양성은 조사 지역이 넓어질수록 늘어나도록 되어 있어서 조사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비교는 의미가 없다. 필자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박사과정 시절에 2인 1조로 갯벌의 저서대형동물(크기 1 mm 이상의 저서동물을 일컬음) 군집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리해서 조사하면 1km 간격으로 최대 10개 정점의 생물시료를 채집할 수 있었다. 2500km2 전체 갯벌을 1km 간격으로 조사하려면 2500개의 정점이 필요하고 이를 전부 채집하는 데만 2인 1조로 250일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생물동정과 자료 분석에 이보다 최소 10배의 시간이 더 걸리니까 저서대형동물뿐만 아니라 미생물, 미세조류, 저서중형동물 등 모든 생물군을 다루면서 넓은 갯벌을 모두 조사하려면 천문학적인 시간과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갯벌이 와덴해 갯벌보다 생물다양성이 높다고 말하는 데에는 믿을만한 에피소드가 있다. 10여 년 전에 독일의 저명한 갯벌생태학자인 카르스텐 라이세(Karsten Reise) 박사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석학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나라에 초청되어 장기간 동안 체류하면서 갯벌을 연구한 적이 있다. 카르스텐 라이세 박사는 1985년에 발간된 『Tidal Flat Ecology』라는 갯벌생태학 교과서의 저자로서 갯벌생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잘 아는 유명한 학자다. 그에게 ‘평생을 와덴해 갯벌의 저서생물을 연구해온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 갯벌의 생물다양성을 비교해보면 어떻냐’는 질문을 하니 우리나라 갯벌의 생물다양성과 생물량이 ‘2배 정도는 높은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작년에 서울대학교 해양학과 김종성 교수 연구팀은 전 세계 갯벌의 일차생산력을 비교한 논문에서 우리나라 갯벌의 기초생산력이 으뜸이라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어 카르스텐 라이세 박사의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황해갯벌은 면적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 측면에서 가장 으뜸인 갯벌이라는 점이 학자들에 의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외국 갯벌 간척이 우리 갯벌 간척의 면죄부?

 
갯벌은 수심이 얕고 바닥 경사가 완만해서 손쉽게 둑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부터 매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가 식량안보를 위한 농지 확보와 개발용 토지 마련 목적으로 갯벌을 매립하고 있다면, 독일과 네덜란드는 폭풍해일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방조제를 건설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풍차는 간척된 저지대 물을 빼내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방조제에 난 구멍을 밤새 손으로 막아서 방조제 붕괴를 막았던 네덜란드 소년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와덴해 연안국가들이 왜 간척을 해왔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일화이다. 지도를 펼쳐서 네덜란드-독일-덴마크를 잇는 와덴해 해안가를 찾아보면 고도가 낮은 평야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태풍, 지진, 화산 등 자연재해를 끼고 산다. 와덴해 지역의 자연재해는 폭풍해일로 인해 상당히 넓은 면적의 평야가 침수되는 자연재해를 가지고 있다. 북해는 와덴해를 포함하고 있으면서 유럽대륙, 영국,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으로 둘러싸인 유럽 북서쪽에 위치한 바다인데 이곳은 겨울철 폭풍이 몰려오면 저기압으로 인해 며칠씩 바닷물 전체가 수미터 높이까지 올라가는 폭풍해일이 발생한다. 북해 지역의 폭풍해일은 역사적으로 수천-수만 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던 대홍수를 유발해왔으며, 가장 최근에는 1953년에 이틀에 걸친 폭풍해일로 약 2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폭풍해일이라는 자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독일-덴마크 등 와덴해를 끼고 있는 국가들은 방조제를 건설해 왔다. 재난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 템즈강 하구의 대형수문은 폭풍해일로부터 런던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독일은 와덴해 전체를 갯벌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방조제로부터 바다 쪽으로 500m 띄어서 범위를 정하였는데 이는 갯벌의 생물다양성을 보호함과 동시에 재해방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해일방지를 위해 방조제의 구조를 변경해야 할 경우 국립공원의 허가를 받지 않고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유럽의 간척사업은 폭풍해일에 대비한 안전 확보를 주목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어 왔으며, 오늘날 그들의 사회와 문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간척사업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주로 인용하기 좋아하는 네덜란드 사례는 역사적인 전통과 연결지어 해석해야 한다. 
 

한국갯벌 간척 잔혹사

 
우리나라의 갯벌 간척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중기에 무신정권은 몽고의 침입으로 도읍지를 강화도로 옮겨서 30년간 대몽항쟁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임시 도읍지의 역할을 한 강화도에 인구가 10만이나 모여들었다고 하니 현재의 강화군 인구가 약 7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규모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30년 동안 외부와의 고립을 피할 수 없었기에 주민들의 식량 자급자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1256년 강화도의 포구에 둑을 쌓아 토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국방을 위한 자급자족형 요새의 필요성 때문에 강화군의 간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18세기 조선 숙종 때 마니산과 강화본섬을 연결하는 선두평 간척, 석모도와 송가도를 잇는 송가평 간척으로 이를 통해 수백만 평의 농지를 마련했다. 지도를 펴서 강화도를 보면 산으로 된 부분은 옛날에는 섬이었고, 평야로 된 부분은 갯벌이었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본격적인 우리나라의 갯벌 간척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간척은 주로 상부조간대의 염습지를 매립하는 것이며, 오늘날 해안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폐염전들이 이 당시 간척사업의 결과이다. 학자들은 이 시기에 90% 이상의 염습지가 사라졌다고 추정한다. 당시의 항공사진이 없으니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추정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갯벌생태학 교과서에 따르면 자연해안선을 끼고 있는 갯벌의 상부에는 갈대, 칠면초, 퉁퉁마디 등 토종 염생식물의 군락이 넓게 펼쳐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간척으로 인해 염습지가 대부분 사라지고, 게다가 대부분 인공해안선을 끼고 있어서 육지로부터 퇴적물 공급이 제한되기 때문에 염습지의 복원이 어려운 실정이다. 순천만갯벌처럼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곳이 아니면 우리나라에서는 잘 발달되어 있는 염습지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간척이 주로 염습지를 파괴했다면, 1970년대 이후에 벌어진 간척사업은 엄청난 규모로 벌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방조제를 해안선과 평행하게 만들고 조금씩 바다 쪽으로 전진해가면서 갯벌을 매립했다. 기술의 한계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매립을 하면서도 갯벌의 재생능력을 훼손하지 않는 정도로 진행한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1970년대 이후의 간척방식은 만 입구를 절단하거나 먼 바다에 10~30km 길이의 방조제를 쌓아서 갯벌을 포함한 수심 20~30m의 바다까지를 통째로 매립하는 것이다. 김포갯벌(김포매립지), 천수만갯벌(서산A,B지구), 시흥-화성갯벌(시화호), 영종-용유도갯벌(인천국제공항), 인천송도갯벌(송도신도시), 남양만갯벌(화옹호), 만경-동진강갯벌(새만금) 등이 모두 이러한 방식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인해 우리나라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진 갯벌들이다(괄호안은 간척사업으로 새로 생긴 지명이다). 이러한 방식은 갯벌의 재생과 정화 능력을 완전히 파괴하고, 바닷물의 흐름을 가로막는다. 흐름이 막혀버린 호수의 수질은 악화되고, 해안가에는 퇴적이 가속화되어 매몰현상이 발생하며, 불안한 해저 퇴적환경으로 인해 저서생태계가 기회종에 의해 우점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현재 우리나라 갯벌과 얕은 바다의 저서생태계 전체를 우점하고 있는 생물은 교과서에 유기물 오염 지시종으로 나와 있는 갯지렁이 종류(Heteromastus 속, Magelona 속)들인데 교과서를 다시 써야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원인으로는 유기물 오염뿐만이 아니라 간척사업과 연안개발 등을 들 수 있다. 
 

남은 갯벌의 운명은?

 
간척사업으로 인해 사라진 우리나라 갯벌이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대략 현재 50% 정도의 갯벌이 남아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즉, 간척 이전에 우리나라 갯벌 면적은 약 5000km2이었으며 절반인 2500km2가 간척으로 사라지고 나머지 2500km2가 남아있는 셈이다. 갯벌의 원래 면적인 5000km2도 간척 이전의 정확한 면적자료가 없어서 추정치일 뿐이다. 
현대 공법으로 인한 대규모 간척사업이 갯벌에 주는 피해는 막대하다. 이러한 피해의 대표적인 사례가 시화호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과거 시화호는 담수호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수질이 악화되었다. 1996년 여름에 현장조사를 직접 나가본 적이 있다. 당시 호수 한가운데에서는 엄청난 양의 폐수가 수면위로 솟구치고 있었고, 수심 5m 이하는 산소가 존재하지 않아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었다. 정부는 수질 개선의 궁여지책으로 조력발전소를 건설하여 바닷물의 흐름을 재개하는 선택을 했다. 새만금호와 간척지는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를 완전히 가로지르는 30km 길이의 방조제를 건설하여 약 400km2의 바다를 매립하여 생겨났다.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하여 노무현 정부 때 마지막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이 났으며 그 이후 1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내부 개발사업은 마무리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정부는 새만금호의 담수화와 해수화를 놓고 아직도 저울질 중이다. 
 
노무현 정부는 새만금 사업 진행을 결정하면서 이것을 마지막으로 농지 확보를 위한 대규모 간척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갯벌 보존노력이 있었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갯벌보호를 환경운동의 주요 아젠다로 삼을 수 있었다. 특히, 2000년대 초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치열한 찬반 논쟁이 있었고, 새만금 생명학회의 탄생,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가 진행됐다. 비록 새만금 갯벌의 보존운동은 간척을 막는 데는 실패했으나 이후 정부의 갯벌정책 패러다임이 보존으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즉, 「해양환경관리법」, 「해양생태계법」 등이 새롭게 제정된 것이 2000년대 후반이며, 작년에는 「갯벌법」이 새롭게 제정되어 갯벌의 보존과 이용의 균형을 위한 법제도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갯벌 보존을 위해 갈 길이 멀다. 비록 대규모 간척사업은 없을 것이라고 정부가 약속했지만 이는 농지 확보가 목적인 경우에만 한정된다. 안전한 항로를 확보한다며 정부는 매년 수백억~수천억 원을 들여 항로를 준설하고 그 준설토를 이용하여 매립을 진행하고 있다. 갯벌 간척사업이 공유수면 매립사업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 갯벌과 바다를 매립하여 토지를 만드는 행위 자체는 동일하다. 항로 준설은 수출입 화물이 안전하게 운반될 수 있도록 선박 항로를 마련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항로 준설에서 나오는 준설토를 갯벌의 기능 개선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갯벌 매립의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갯벌 보호와 항로 준설 사이에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글 / 류종성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장, 안양대학교 해양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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