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3] 갯벌·철새·늪/ 새만금 매향제/ 황숙희

“중생들의 아픔을 묻기 위해 매향을 올리나니 자비로서 섭수하시고 모든 업장이 소멸돼 일체중생이 미륵세계
에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백 년이나 천 년 뒤에 꺼내 볼 수 있도록 향나무를 묻으며 우리 조상들이 매향제(埋香祭)를 행하며 기원했던
말이다.
지난 1월 30일 거친 눈보라가 몰아친 전북 부안 변산반도 해창갯벌. 대규모 방조제 공사로 시름많은 이곳에선
새만금 갯벌을 위한 매향제가 열렸다.
“부디부디 비옵나니 산신령님 용왕님네 영험하신 능력으로 산 없애고 바다막는 포클레인 중장비들 국민세금
펑펑쓰는 높은 자리 정치인들 몽땅몽땅 쓸어담아 태평양에 처넣으시고 바다 살고 산도 살고 새도 살고 사람사
는… 생거부안 좋은 세상 활짝 열어 주옵소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시민 환경단체 회원들과 부안사람들 6백여명이 그 기원의 마음을 담아 매향제를 올렸
다.
조개미 고개에 매향비를 세우고 동티 안나게 정화수로 염을 한 향나무를 상여에 실었다. 새만금전시관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만장을 앞세우고 향나무를 담은 꽃상여가 떠날 즈음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는 눈 섞인 칼바람
이 불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 당도한 드넓은 해창갯벌 한 가운데 만장을 세워두고 제를 시작하자 거칠 것
없는 매서운 바닷바람은 상주와 지켜보던 이들의 손을 곱게 하고 발을 얼게 했다. 오랜 객지 생활로 모처럼
고향을 찾은 사람, 환경단체 회원인 아빠를 따라 온 초등학교 어린이, 처음부터 이 의식을 열심히 비디오로 찍
는 외국인.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이들이 자리를 뜨지 않은 것은 지금 행하는 매향제가 새만금 갯벌의
미래를 위해 좋은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모른다.
본래 매향제는 불교행사의 하나로 향나무를 묻고 백 년이나 천 년 뒤에 꺼내 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바닷물
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에 묻는 의식이다. 그래서 생기는 침향은 시간의 단절이 아닌 영원 회귀를 전제한 미륵
신앙의 산물이다. 영겁의 시간이 흐른 뒤 인간을 구원하러 올 미륵에 대한 믿음이 바로 침향정신인 것이다.
선조들이 먼 훗날 누군가를 위해 향나무를 모아 갯벌에 묻어놓고 그 사실을 매향비에 기록해 놓았던 것처럼,
해창갯벌에 제를 마친 향나무를 묻는 것으로 매향제를 마친 이들은 무섭게 온몸을 때리는 해풍 속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해 매향을 한 이 드넓은 갯벌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를 기원했다.
황숙희 기자 hwangsh@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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