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 갯벌·철새·늪/ 우리 갯벌 둘러보기 5 - 승봉도의 모래바람/ 제종길

우리 갯벌 둘러보기 5
승봉도의 모래바람


경기 다도해. 경기만에는 1백50여개의 섬이 그림같이 산재해 있다. 무의도, 자월도, 용유도, 덕
적도 등 섬들은 하나같이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승봉도는 이들 섬 가운데 중간 정도 크기의
섬이다. 인천에서 남쪽으로 뱃길로 한시간 남짓이면 닿는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비스듬히 놓
여 있으며,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는 좁은 섬의 지형이 봉황의 머리 같다고 하여 승봉(昇鳳)이라
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예로부터 육지와 바다의 자원이 넉넉하여 사람들이 넉넉히 거주할
만만한 좋은 섬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풍광이 수려하여 지금도 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다.

모래갯벌에서의 추억
이 승봉도를 생각하면 항상 세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1987년 황해에 위치한 열 개 섬에서 수중
조사를 수행하던 중 잠시 승봉도를 들른 적이 있었다. 저조 때라 물은 다 빠졌는데 수면과 갯벌
이 맞닿은 일대가 온통 밝은 초록색이었다. 그것은 잘피라고 불리는 거머리말 군락이었다. 색깔
에 이끌려 얕은 바다 속에 뛰어 들었고, 바짝 엎드려 수초 사이를 살펴보니 수많은 작은 생물들
과 어린 물고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도 이렇게 풀이 무성한 곳이 있다니. 그
때만 하더라도 이 바다 속 수풀의 중요성을 몰랐다.
수풀을 나와보니 하얀 모래밭이 곱게 펼쳐져 있었다. 가까운 서해안에도 이렇게 한적하고 아름다
운 곳이 있는데 서울 사람들이 이런 곳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당시에
는 그런 여유를 부릴 만한 처지가 아니어서 수초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지만 언제
나 이곳에 꼭 한번 다시 와야지 하는 다짐을 하였다. 이곳은 섬의 서남쪽 해안에 위치한 이일레
해수욕장이었다.
다른 두 기억은 최근의 것으로 연안생태계 복원에 관한 연구 조사지역을 이곳으로 정하여 다시
오게 되어 생긴 일들이다. 연구내용 중에 하나가 모래언덕(砂丘)에 관한 것인데, 조사지역을 수
색하던 중 문득 예전에 찾았던 적이 있었던 승봉도를 생각해 내었고 찾아와 보니 적지였다. 하나
는 지난 가을 출장에서 다른 일행보다 하루 늦게 도착해서 생긴 일이었다. 먼저 와 있던 일행들
은 내가 도착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눈치였다. 모종의 내기가 있었고 그것은 잘피밭에서 채
집한 생물의 이름에 대한 것이었다.
한 일행이 개불을 잡았으니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생물을 보니 자포동물인 바다선인장이었
다. 밤에 만지면 옥색 발광을 해 생긴 바다랜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호류의 일종이었다. 자포동
물이란 쏘는 세포를 가진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전날 잘피밭에서 갈맛조개와 바다선인장 몇 개체
를 채집하였고, 바다선인장을 개불로 오해한 채집자가 다른 일행에게 우겨 날 것을 먹으려 했었
던 것 같았다. 억세고 질긴 육질과 쏘는 듯한 느낌에 먹지는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던
것이다. 요리 방법을 몰랐으나 알게 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어민들도 이 생소한 생물에 의견이 분분하였고 결국 생물학자의 도움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개불
이라고 확인이 되었으면 함께 나가 더 잡으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개불이
아님이 밝혀졌고 당사자는 잠시나마 자연학자라는 사실을 잊고 식욕에 빠졌던 것을 난감해 하였
다. 아직도 그 이야기만 나오면 멋쩍어 한다. 그 후 그 동료는 새로운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또 요리를 도맡으려 하였던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도 못내 쑥스러워 ‘내가 인천에서 결혼 때문
에 섬에 들어와 펄을 자주 나가질 않았더니...’라고 말하여 한바탕 일행들을웃겼다.

바람이 만들어 낸 갯벌
다른 한 이야기는 이일레 해수욕장에 있는 샤워장겸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인데 어느 외국인 선교
사가 섬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지어 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용도폐기가 되어 있다.
삼분의 일 이상이 모래에 파묻혔는데 이는 모래의 이동이 활발한 해안에서 모래의 움직임에 잘
몰랐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바다로부터 육지 쪽으로 날아와 쌓인다. 많이 쌓이는 곳은 수 센티
미터가 넘는다. 이 때는 모래사장 위로 낮게, 그러나 빠르게 모래가 옮겨가는 것을 육안으로 확
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계절에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구조물이 있으면 그 주변에 높
게 퇴적되는 것이다. 막대기만 꽂아 놓아도 모래가 쌓인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주민들도 경험
을 통해서 이 문제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서해안 어촌 취락구조가 경치
좋은 모래해안을 향해 서향으로 조성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닫을 수 있었다.
승봉도의 이일레 해수욕장은 모래갯벌로 분류할 수 있다. 걸어다녀도 좋을 만큼 퇴적물 입자가
굵어 모래가 우세한 지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통 해안의 형태는 파랑에너지가 우세한가 아
니면 조석에너지가 우세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갯벌은 조석에너지가 우세하고 완만한 경사가 있
는 해안 환경에서 발달한다. 파랑이 절대 우세한 해안은 동해안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다. 이
러한 해안을 갯벌과 구분하여 해빈이라고도 한다.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조석 차이에 의한 넓은
퇴적물 벌판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해안에는 모래언덕들이 열 지어 생성된다. 이는 바람의
영향에 의한 것이며 바람이 센 곳에서는 파랑 세기도 크게 마련이다.
조차는 크지만 바람이 강한 서쪽으로 노출된 서해안에서는 어떤 지형이 나타날까? 퇴적물 벌판
은 드러나겠지만 내만이나 후미진 곳에 비하여 퇴적물 위의 해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강할 것이
다. 따라서 고운 퇴적물 입자가 머물기가 어렵고 해안의 경사도도 보다 급하게 변할 수밖에 없
다. 그러므로 간조 시에 벌판이 생기겠지만 혼합갯벌이나 펄갯벌에 비해 좁을 것이다. 그리고 강
한 서풍계열의 바람 때문에 갯벌 배후에 경사진 모래언덕이 생기고, 적절한 퇴적물 조성과 알맞
은 영양물질이 공급되면 저조선 부근에 초록색 잘피밭을 볼 수도 있다. 서해안, 특히 도서지방
의 서쪽 해안에서는 이와 같은 모래갯벌을 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조건을 갖춘 곳이면 잘피밭
이 없는 경우는 있으나, 모래갯벌은 항시 존재한다.

사라져가는 잘피밭과
모래언덕
잘피밭은 해양생물의 산란장으로 주목을 받는 서식지이다. 퇴적물로만 된 갯벌에 수풀을 만들어
다양한 생물의 서식 공간을 마련하며 유기오염 물질을 흡수하고 주변 생태계에 유기물을 제공한
다. 그러나 이 녹색공간은 안정된 생태계에서 잘 발달하지만 퇴적물 조성 변화와 오염에 민감하
여 쉽사리 훼손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습지 중에서 식생이 존재하는 습지와 그렇지 않은
습지는 산란장 기능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 식물의 숲은 그만큼 생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곳이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같이 조차가 큰 곳에서는 갯벌 가장자리에 자라는
염생식물이 침수시간이 짧아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 잘피밭의 중요성이 잘 알려지지 않아 그동안 경시되어, 왕성한 해안개발
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남해안의 경우는 과거 해안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이젠 일반 해안에선 거의 찾을 수가 없고, 도서지방에는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잘피밭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한 미국, 일본, 캐나다, 일본 등 연안국가들은 훼손된 잘피밭을 복
원하는 데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고 있다. 잘피밭은 열대지방에서도 흔히 발견되는데 앞서 언급
한 기능들이 여러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특히 오염에 약한 산호초와 주변에 천해대가 없
는 탓에 이 수초대의 역할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잘피밭이 없어지면 산호초가 죽고
수산자원, 특히 어류자원이 감소하며 끝내는 해안침식을 유발하곤 하였다. 우리 해안의 자원 감
소도 이들이 자랄 만한 환경을 파괴한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양목장화는 이런 잘피밭
을 복원하는 일부터 해야 하지는 않을까?승봉도의 잘피밭에는 갈맛조개가 많았고, 낙지, 민꽃
게, 각종 갯지렁이, 작은 어류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물이 들면 이 주변에서 그물로 물고
기 잡는 장면도 가끔 목격할 수 있었다.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잘피의 서식밀도는 예
전보다 줄어 수풀이 빽빽하지 않았다. 찾는 생물들도 적지 않게 줄었을 것이다. 그런 원인에 대
해서는 전문가와 주민 모두 해수욕장 남쪽에 생긴 짧은 방조제형의 어항 시설을 지적하였다. 시
기적으로도 그렇고 그 정도의 구조물이면 해수의 흐름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래사장의 모래도 자꾸 줄어든다고 하였다. 자연은 참으로 관리가 힘든 것이라는 생각
을 들게 한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승봉도의 갯벌과 모래언덕에서는 자연의 건강함을 발견할 수 있다. 모
래 경사면에 자라는 통보리사초, 해당화, 갯메꽃이 자라고 있으면서 모래해안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 식물들은 모래가 쌓이면 조금씩 솟아올라 강한 생명력을 유지한다. 지하 줄기는 옆으로 자
라 번져나가지만, 모래를 헤치며 수직으로도 잘 성장한다. 수직으로 자란 줄기는 대부분 일 미
터가 넘는다. 사구식물들이 어울려 자라며 꽃을 피우는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자연
해안의 아름다움 중에 하나이다. 이런 곳의 자연마저 사라지면 나중에 습지를 복원할 기회가 와
도 원생태계가 없어 실행이 불가능해진다.

글·사진/제종길 jgje@kordi.re.kr
건국대학교 생물학과와 서울대학교 해양학과를 나와, 호주 디킨대학교에서 해양환경학으로 박사
후 과정을 이수하였다. 현재 한국해양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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