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 아직도 삽과 망탱이 메고 갯벌로 걸어나간다

우리갯벌 둘러보기/잊혀졌던 갯벌, 우정갯벌

 

아직도 삽과 망탱이 메고 갯벌로 걸어나간다

 
지난 2월 12일자 월요일, 시화호가 해수호로 확정되었다는 정부의 입장 발표가 신문을 비롯한 모든 뉴스미디어에서 일제히 보도되었다.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시화지역 간척사업의 실패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 되었다.
 
이 결정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내만의 입구와 하구를 통째로 막아 지역 갯벌과 바다를 없애는 한국식 대단위 간척사업에 대해 일종의 경종을 울린 셈이 된다. 그리고 아직도 공사진행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새만금 간척사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시화와 새만금이라는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던 지역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의 대단위 간척사업이 수도권과 가까운 곳에 현존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정호와 시화 간척농지

 
시화호의 남쪽과 접하고 있는 지역인 경기도 화성군의 남쪽에 위치한 우정지구 간척사업이 그것이다. 어쩌면 우정호 하면 ‘아하’하고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시화호가 해수호로 될 경우 시화호 간척농지에 농업용수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개발부서에서 인공호수의 이름으로 여러 차례 언급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진 담수호일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정호도 담수 호수가 되기까지는 멀고 험한 길을 가야할 것 같다. 왜냐하면 큰 담수 유입원이 없는 점이나 물막이 공사 후 뚜렷한 수질 개선 계획이 없는 점은 시화호와 아주 닮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오염원이 적다는 점이 시화호와는 다르지만 수질정화시설이 없다면 시화호와 꼭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고, 적어도 2005년까지는 그러한 시설이 들어설 조짐이 없다고 한다.

농업용수의 질이 확보된다고 하여도 멀리 떨어진 시화호까지 물을 보내는 공사를 해야 하는 개발부서의 입장도 딱하다. 우정지구도 일반인들의 관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사이에 90% 이상의 공정을 마쳤고, 마지막 물막이 공사만 남겨 놓은 상태이다. 그러니 포기하기에도 어려운 처지가 새만금과 너무나 비슷하다.

우정지구는 1980대 후반에 간척사업 기본계획이 확정된 화옹지구(화성군과 옹진군 지역의 간척사업지구라는 뜻일 것임. 당시에는 안산시 대부도는 옹진군에 속하였음) 간척사업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화옹지구는 1991년부터 8년간의 공사기간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전체 사업지구는 우정단지와 대부단지로 나뉘고, 대부단지는 다시 대부도 남쪽 지역과 화성군 서신면 해안지역으로 구분하였다. 화성군의 중간에 오래 전부터 남양만으로 불리던 큰 내만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우정지구이다. 이 만은 화성군의 서신면, 마도면, 남양읍, 우정면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에 이미 남양지구라는 간척사업지구가 있어 가장 많은 부분을 접하고 있는 우정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이 곳의 갯벌을 우정갯벌이라 하였다.
 

기로에 선 갯벌어업

 
우정면은 화성군에서 가장 큰 면이며, 전반적으로 어업과 농업을 겸해왔던 전형적인 경기지역의 해안 지역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경기도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갯벌어업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갯벌에서 생산되는 조개류의 생산량으로 따져보아도 화성군에서 늘 50% 이상을 차지했다. 우정면 어민들은 전국 수산증식왕, 도 수산증식왕, 증양식 우수 어촌계, 새어민상 등 어업에 관련된 여러 종류의 상을 자주 수상하였으며, 수상횟수는 경기도에서 으뜸이었다. 대상 수산물이 바지락 등 갯벌에서 나는 것이었으니 어민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곳 갯벌의 생산력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남양만, 즉 우정지구의 남쪽해안을 따라 내륙 쪽으로 차례로 있는 매향리, 화산리, 운평리, 원안리, 호곡리 등이 이곳 갯벌어업의 본산이었으며, 만의 북쪽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넓은 갯벌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조개뿐만 아니라 건강망 어업(建干網: 갯벌에 말뚝을 박고 그물을 설치하여 어업을 하는 일종의 정치망 어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차가 큰 이곳은 간조가 되면 폭이 4∼5㎞나 되는 갯벌이 나타난다. 그물은 바로 간조 시에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곳에 조금 못미처 설치된다. 어민들은 갯벌에 나 있는 크고 작은 갯골과 수로를 파악하여 수로의 마지막 입구를 중심으로 그물을 설치한다. 골을 따라 내려오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골마다 어업을 주관하는 마을이나 어민들이 있게 마련이고 자연스럽게 골의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이곳 매향리에서부터 호곡리까지 아홉 개의 큰골이 있었다는데 모두 별도의 이름이 있었다. 마루펄, 중골, 앞장, 수추마루, 경기선, 관살, 새바탕, 상거리, 벽개 등이 그것이다.

예전에는 그물을 대나무나 싸리로 만들어 죽렴방이라 하였으며, 이 때는 일자형이었다. 약 30년 전에 나이론 그물이 나오면서 그물 제작이 자유로와지자 V형이 되었고 그물에는 고기모임통 그물을 붙였다. V형의 꼭지부분에는 ‘내상’이라는 모임통을, 그리고 양쪽 끝에는 ‘화리’라는 모임통이 있었다. 조업은 2월부터 11월까지 하고 중간 7월 중순부터 한 달간 금어기를 가졌다. 보통 하루 한 두 차례 고기를 회수해 오며 한 달 중 24일 가량 조업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건강망으로 농어, 숭어, 꽃게, 학꽁치, 망둥어, 삼치, 전어, 병어, 방어, 갑오징어, 꼴뚜기 등 약 30여 종의 어족이 잡혔다. 이들이 이 갯벌지역을 회유하는 주요 어족이었을 것이다.
 

간척으로 그 자원과 문화도 사라져

 
경기도에서 인공어초 사업 효과 조사를 하기 위해서 화성군 어민들을 만났을 때 이들은 남양만이 경기도 바다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산란장이라면서 이곳이 간척으로 사라지고 나면 경기도 바다의 어업 생산량이 크게 줄 수밖에 없음을 확신하였다. 공사중이지만 지금도 이미 어획량과 어종이 줄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산란장을 다 없애놓고 어초시설은 왜 만드냐고 불평을 하였다. 그나마 남은 수산자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방조제 앞쪽에 산란장용 어초를 투하하여 남양만으로 산란을 위해 오는 어종들이 산란할 수 있도록 하라는 충고까지 하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에게 수산물을 공급해주었던 바다의 가치가 방조제를 만든 이후 만들어질 땅보다 못한 것일까? 그 가치를 알면서도 어민들은 왜 간척을 허락하였을까?

우정지구 일대의 지명을 보더라도 이 지역이 전통적인 삶이 갯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발안은 갯벌이 골짜기를 이루며 깊숙이 들어앉은 곳이라는 뜻에서 뻘안으로 불리다가 벌안, 그리고 발안으로 변했다고 한다. 실제 옛날 지도를 보면 발안지역까지 갯벌이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다들(海坪洞), 해산물이 풍부하여 종류와 맛이 다양한 곳이라는 뜻의 백미리 (百味里), 천일염이 많이 났다는 백석포, 그리고 고잔, 광평리, 수문개, 뱃고지, 구리섬(굴섬), 낭개, 뚝미, 방죽머리 등 갯가를 연상하는 이름들이 많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호곡리에서는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듯한 새끼 삽을 가지고 갯벌을 나서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반 삽과 비교하면 길이는 반 정도 되고 날은 3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삽을 가지고 나간다. 조개들이 많이 사는 모래성분이 우세한 퇴적물을 살짝 들춰내기가 쉽기 때문에 이런 채취도구를 만든 것 같다. 갯벌이 많은 지역에서 비교적 전통어업이 잘 보전되고 있으며 지역의 특산 수산물에 따라 어업방법과 어구가 약간씩 다르기 마련이다. 방조제 공사가 시작된 이후 퇴적상의 변화로 어획량이 많이 줄었고 이전과는 나는 곳이 달라졌지만 어민들은 서식지를 잘 찾아낸다. 이곳에서는 가무락잡이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사리 때면 삽과 망탱이를 메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을 걸어 나가는 어민들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산과 바다, 염습지가 함께 존재하는 곳

 
호곡리 갯벌에는 자연해안이 유지되어 있는 곳이 있다. 아마 군 주둔지여서 그동안 잘 보호가 되었던 것 같다. 갯벌 복원을 연구하던 팀들이 원 갯벌의 모델을 찾고자 오랜 시간을 보내고 여길 찾았다고 한다. 이곳은 방조제 공사 이후 변화를 겪는 곳이어서 복원 연구와 함께 간척 후 해변생태계의 천이를 관찰하기에 이상적이었다.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조사할 수 있었고, 실험시설들까지 훼손되지 않고 지켜지니 연구를 하기에 최고의 장소로 손색이 없다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해안 산자락이 바로 갯벌과 맞닿아 있고 그 사이에는 염생식물 군락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원 해안선은 하구가 아닌 곳에서는 대부분 산자락과 연결되었던 것 같다. 산과 바다 그리고 염습지 이 세 가지 자연요소가 함께 존재하는 곳이 갯벌의 본디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는 그 자연이 주는 자원도 풍부하지 않았을까? 다시 한번 갯벌 복원의 꿈을 꾼다.
 
글·사진 / 제종길 jgie@kordi.re.kr
 
건국대 생물학과와 서울대 해양학과를 나와 호주 디킨대학에서 해양환경학으로 박사후 과정을 이수했다. 한국해양연구소 책임연구원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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