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4] 새만금, 내초도 어민들의 목소리 “뻘이 사그리 죽어가꼬… 어디 가서 식모라도 살아야제”

새만금, 내초도 어민들의 목소리

“뻘이 사그리 죽어가꼬…
어디 가서 식모라도 살아야제”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두고 북쪽의 금강과 남쪽의 만경강이 만나는 곳, 동방석학(東方碩學)인 최
치원이 출생한 금돈시굴의 설화가 전해지는 이곳 내초도는 옹기종기 100여 가구가 모여 입섬, 새
섬, 멍애섬 세 마을을 이룬 작은 어촌 마을이다. 100여 가구라 하지만 홀로 혹은 두 분이 살아가
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초도로 떠나오면서 멋진 촌장이 되어 보겠노라고 다짐하던 것이 벌써 5년전 일이다. 아직도,
아니 늘 그 말을 기억하는 까닭은 지금 내 알량한 삶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멋진 촌장이라
니, 지금의 내 삶과 얼마나 거리가 먼 얘기인가.
급류에 휩쓸려 마구 떠내려가는 한 사람을 생각해 본다. 기운은 빠졌고, 물살은 거세다. 하늘까
지 울리는 그 비명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일 뿐이지, 어쩜 뻔히 듣고 있으면서도 나 몰라라
외면해서일 뿐이지, 오늘의 내초도는 결코 평화롭지 않다.
새만금간척사업이 10년여 동안 진행되면서 갯벌은 서서히 생명을 잃게 되었고 방조제가 쌓일 때
마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위치한 생활쓰레기 매립
장과 산업폐기물 처리장에서 흘러나오는 악취와 유독가스는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
다. 여전히 바다는 들숨, 날숨을 하며 생명활동을 하고, 갯벌 속에는 생합 바지락 맛조개들이 속
살을 내밀고, 농게 밤게는 옆으로 거닐고, 도요 물떼새들은 하늘을 날고 있다. 언제라도 내초도
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축복의 땅이었다.
그러나 스러지고 있다. 물먹은 토담집이 서서히 무너지듯 갯벌이, 마을이, 고향이, 사람이 스러
져간다. 평화로운 바다, 그럴듯한 겉모습을 보이지만 많은 것들이 속으로 짓물러 가고 있다. 어
디까지 떠밀려야 끝이 있는 것일까. 떠나갈 사람 모두 떠나가는 주름 같은 갯벌에 주름진 삶만
이 남았다. 손주들 재롱에 즐거워하실 노년의 삶이 버려진 듯 쓸쓸하고, 그래도 놀릴 순 없는
몸 갯벌에 나가기 위해 바쁘다. 한손에 갈퀴를 들고 고꾸라질 듯한 위태한 몸으로 맛조개를 뽑
아 올리고, 매서운 바닷바람 맞으며 무릎으로 기어 갯벌을 파헤친다.
“그래도 벌어먹고 살것다고 이렇게 나왔는디, 뻘이 사그리 죽어가꼬 조개들이 모두 절단 나버렸
당게. 아무리 파도 있어야제. 이번 설만 지나면 어디론가 나가야 쓰것어. 이렇겐 못산당게. 어디
가서 식모라도 살아야제.”
바다만 바라고 사는 사람들. 더도 덜도 아닌 바닷사람들. 바다가 썩고 어패류가 폐사하는 것이
도시사람에겐 그저 얘깃거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식모살이라
도 떠나야겠다는 동네 아주머니의 말에 망연히 마주할 뿐, 무어라 말할지를 모르겠다. 큰 잘못
범하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 지천에 많은데 무엇 큰 잘못했다고 갯벌과 함께 욕심 없이 사
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잘못된 국책사업에 수많은 어민의 생계가 막막하게 되었다
는 사실을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은 아는지. 나라에서 하는 일을 힘없는 우리가 어찌하겠냐고, 바
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한 어민이 웃으며 말하지만, 그 웃음 뒤에 남아있는 체념의 앙금, 그
게 아려 보인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몇 가지 것들이 구체적인 것이 되었고, 어촌에 관한 문제 또한 앎의
문제에서 삶의 문제로 바뀌게 되었다. 새만금사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어떠니, 해결책이 무엇이
니 하는 얘기는 이젠 낯선 얘기가 되고 말았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몇 안 되는 나의 이웃들. 그
들이 겪는 쉽지 않은 삶만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인훈이 할머니의 덤덤한 얘기 속에 배인 아픈 삶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적지 살아온 얘기 엮으
믄 서너 권도 넘을게유. 근데 얘기 할려믄 자꾸자꾸 눈물이 나와. 그래 얘기 못혀지.” 아들은
새만금사업으로 받은 보상금을 놀음으로 몽땅 날려 화병으로 죽고, 며느리는 손자를 놓아둔 채
도시 어딘가로 나가버렸다. 뭉뚝뭉뚝 더듬어 얘기하는 할머니의 팔십 평생, 굽이굽이 아픔 배인
삶이다. 어쩌면 삶은 그리도 철저히 할머니 한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물들였는지, 진득한 기쁨
으로부턴 늘 그만한 거리로 격리돼 온 백발의 삶.
“그래도 할머닌 밝게 사시잖아요?” 여쭙자 “속상한 일 있을 적마다 꿀꺽꿀꺽 썩혔지. 근디 손
자놈이 걱정이여. 내가 눈 딱 감아버리면 그놈은 누가 돌본당가.”
며칠째 인훈이가 학교에 안 갔다. 초등학교 2학년,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인훈이는 책가방 신
발 등을 스스로 감추고 아침이면 어디론가 숨어 학교를 피했다.
숙제가 싫다고, 친구들이 공부 못 한다고 흉보는 게 싫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젊은 나이에
화병으로 돌아가신 아빠, 도시 어딘가로 돈 벌러 나간 엄마. 무뚝뚝한 철부지 사내아이지만, 엄
마 아빠가 보고 싶은 거다. 마음속 뻥 뚫린 허전함은 싫은 공부만이 아니라 엄마 아빠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아무도 그 마음 알아주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만금사업으로 무너져 내린 한
가정의 아픈 삶 속에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어쩔 수 없었다.
군산 시내로 나가는 시내버스 안, 바지락조개 값이 너무 떨어졌다고 직접 소매를 하기 위해 버스
에 탄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뒷자릴 남겨둔 채 서서 얘길 나눈다.
“요즘은 정말 돈이 귀해.”
“돈 될 건 바지락밖에 없는디 키로에 1500원밖에 안 주니.”
“아무개넨 1300원씩에 팔았대.”
“그래도 소비자가 살 땐 3000원이라니 그러고 보면 중간 상인만 돈 번당게.”
“이래 갖곤 자식 못 갈쳐.”
기사 눈치 보며 한쪽에 실은 바지락 자루, 바지락은 차에서도 구박을 받는다. 오늘은 또 얼마를
벌어 자식 차비라도 댈지.
가끔씩 강아지 ‘단비’가 어울릴 뿐, 친구도 없고 동네에 또래가 없어 하루 종일 혼자 노는 민
지. “민지야, 넌 커서 여기서 살고 싶니, 아니면 고모 살고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니?” 집에
자주 놀러오는 민지에게 아내가 물었다. 민지가 벌써 3학년이 되었다. 같은 반에 세 명이 있는
데 남자 아이가 둘, 여자아이는 민지 혼자뿐이다.
“내초도는 싫어요.”
“왜?”
“심심해서요. 숙제하고 나오면 아무도 없어요.”
심심해서 내초도가 싫다는 민지. 그건 민지만한 어린아이뿐이 아니다. 바다만 의지할 수 없어 떠
난 많은 사람들, 그들도 심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이 떠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가 버
리는 무심한 세월이 싫어서, 두려워서 떠난 것이 아닌가. 잃어버린 살맛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들
에게까지 번져 있다.
뿌리가 야위어 가고 있는 것이다. 새만금 사업으로 공동체가 파괴된 어촌 어디나 그러하듯 눅눅
하고 어둑한, 슬픈 이야기가 많다. 남모르는 한숨과 눈물이 배어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함
께 사는 이들을 향한 나의 애정은 쉽게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서툰 글조차 야위어 가는 ‘뿌
리’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감히 바라고 빈다.

임춘희 heui2323@hanmail.net
내초도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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