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 집중기획-부활하는 새만금

법원, 새만금 사업 제동걸다

-서울행정법원 새만금간척 공사집행정지 판결
 
법원이 생태가치에 주목해 국가주도 사업을 중지시킨 유명한 예가 있다. 텔리코 댐(the TellicoDam)과 시어(the snail darter, 민물고기의 한 종류)에 관한 미 법원의 판결이 그것이다. 사건개요는 이러하다.

1973년 미의회는 「멸종위기에처한종에관한법률」(The Endangered Spe cies Act of 1973)을 제정, 통과시켰다. 이 법은 “모든 연방 부서와 기관은 내무부 장관의 협력을 받아 멸종위기에 처한 종들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또 내무부 장관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결정한 종들의 서식지가 파괴 또는 변형되지 않도록 할 필요한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본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들의 권한을 이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된 뒤 내무부 장관은 ‘시어를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목록에 올려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받았다. 장관은 시어가 유전적으로 독특하고 다른 어종과 생식적으로 구별되는 살아있는 실체라고 인정하고 시어를 위기종 목록에 등록했다. 나아가 델리코 댐이 완성되면 시어의 유일한 서식지인 소테네시 강 부근은 완전 수몰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 지역을 시어의 위기에 처한 서식지(Critical Habitat)로 선언했다. 이 선언이 나온 뒤 댐의 완성과 저수지의 저수는 시어의 멸종을 초래하는 행위, 즉 「멸종위기에처한종에관한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어 댐 건설을 막기 위한 청구가 제기됐다.

지방법원은 이 청구를 기각했다.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아마도 저수지의 저수가 시어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댐을 건설하려는 연방정부의 프로젝트가 거의 다 완성되어 변형이 불가능한 시점에서 법원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오랜 뒤에 제정된 법을 적용하여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지방법원에 의하면 법정에서 논란이 된 그 무렵에 이미 댐 건설 프로젝트는 약 80퍼센트 완성되었고 전체 프로젝트를 폐기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이 없는 관계로 만약 프로젝트가 영구히 중단된다면 약 5300만 달러가 회복 불가능한 채무로 낭비될 지경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1심 법원의 결론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위 판결은 항소법원에서 파기되었다. 항소법원은 “의회가 적정한 입법에 의해 △텔리코를 본법의 적용에서 면제시키거나 △시어를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목록에서 삭제하거나 △위기의 시어 서식지를 물리적으로 재규정하지 않는 한 1심 법원은 그 프로젝트의 완성을 영원히 금지하라”고 명령하였다. 항소법원의 논리는 간단명쾌하였다. 본법의 문언, 연혁 및 구조를 검토하면 의심할 나위 없이 ‘의회가 멸종위기에 처한 종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 남을 새만금 공사집행정지 결정

 
서울행정법원은 2003년 7월 15일 법원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10여년 이상 논란거리였던 소위 새만금 공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하라는 공사집행정지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법원의 결정을 단순히 개발 대 보전이라는 대립구도에서 ‘보전’ 쪽에 손을 들어준 결정이라고 해석하는 건 표피적인 판단일 듯싶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그보다 더욱 무겁고 깊은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선, 이번 결정은 일반행위원리에 따른 결정이었다. 우리의 모든 의식적 행위에는 반드시 특정한 목적이 있기 마련이고, 만약 그 행위목적의 달성이 불가능 내지는 현저히 곤란하다고 여겨질 때는 우리는 그 행위를 폐기 내지는 변경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이러한 행위원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사업규모가 크던 작던 간에 정부정책에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자원개발은 새만금의 사업목적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법원은 정부가 수립한 수질보전대책-이대책은 우리나라에서 ‘이론상’ 시행이 가능하다고 본 거의 모든 수질 대책을 총망라한 것이다-은 그 이행에 지출될 돈의 과다문제는 그만두고라도 이것에 의하더라도 수질목표달성이 매우 어렵다고 보았던 것이고 이에 따라 사업의 잠정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재판부가 ‘사전예방의 원칙’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사전예방의 원칙은 이미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에서 천명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특정행위로 인하여 심각한 또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의 우려가 있을 경우 피해를 방지할 유효적절한 예방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그 행위가 승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만약 방조제가 완성되어 해수의 유입이 차단되는 경우 단기간 내에 새만금 하구갯벌에 서식하는 어패류 등이 모두 폐사하게 되어 시화호와 같은 죽음의 호수가 예견되며 위와 같이 한번 파괴되거나 오염된 환경은 그 회복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복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회복에 많은 비용과 장기간의 시간을 요하게 되는 등 엄청난 손해를 입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고 하며, 이러한 예견되는 피해 발생을 방지할 유효적절한 조치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일단 사업의 진행을 보류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사전예방의 원칙을 그대로 구현한 결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결정은 사법적극주의 정신이 녹아있는 선례라는 가치를 지닌 결정이다. 사법부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현행 법제도의 합헌성을 전제로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현실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법의 보수성이라는 기본속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범위 내에서 사법부의 행정부 등에 대한 견제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려는 경향성을 ‘사법적극주의’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 사법부의 경향성은 사법적극주의 보다는 사법소극주의에 더 가깝다는 지적이 더 우세한 것 같다. 사법적극주의적 태도를 취하느냐 아니면 사법소극주의적 태도를 띠느냐 하는 것은 대체로 법원의 행정부에 대한 존중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사
 

법적극주의의 승리

 
재판부는 정부의 재개결정이 2년 이상에 걸친 공동조사단의 결과에 바탕한 것이라는 점, 수질보전대책을 제대로 실행할 것이라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있다는 점, 사업중단결정은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저하시킬 것이라 점 등을 고려하여 사업계획에 다소 문제는 있지만 정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기각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각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의 연구결과 보고서를 무조건 신뢰하지 않았고, 또 수질보전대책의 이행에 대한 정부의지를 무조건 존중하지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관련 자료를 정밀하게 검토하였고 그 결과 잠정적으로 사업중단결정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법적극주의의 태도이다.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중 어느 것이 법원이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인가 하는 질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재판부에게 자유위임된 일종의 가치선택의 문제로 결국은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동안 특히 대형국책사업에 대해서 우리 사법부의 결정이 지나치게 사법소극주의적 경향성에 편향되어 있다는 지적이 전부터 있어왔다. 사실 새만금 소송을 하기에 앞서 변호인단 사이에 심각한 논란이 있었다. 즉 재판에 질 것이 분명한데도 소송을 거는 것은, 그 패소판결이 정부의 논리나 입지를 강화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해 득보다는 실이 많으므로 소송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와 논란이 됐던 것이다. 미리 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위와 같은 사법부의 대체적인 경향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농림부도 마찬가지 예상을 한 것 같고 그래서 소송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이 나와 국가주도 대형사업들의 허실을 내외에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정책 합리성 높이는 계기


이번 재판부의 결정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이런 판결도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을 우리 사회가 가지도록 한 효과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월드컵 4강 진출이 국민에게 심어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과 유사한 것이다. 앞으로 다른 대형 국책사업도 사법부에 의하여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이상 정부로서는 정책의 수립과 추진과정에서 정책의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확보하는 데 더 신중할 것이고 또 관련 법 절차를 더 잘 지키려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식자연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법부가 과연 정부가 어렵게 결정한 국가정책을 중단시키는 것이 정당하냐’는 질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문제는 건전한 비판과는 거리가 먼 트집잡기에 불과하다. 왜 민주국가의 헌법이 굳이 국가 권력을 쪼개어 소위 3부(입법-사법-행정)에 그 일부를 각각 맡기고 있는 것인지 그 본의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법부는 ‘사법권’을 행사한다. 사법권의 심판대상에는 당연히 행정부의 행위도 포함된다. 사법부가 법을 기준으로 행정부의 행위를 판단하여 만약 하자가 있는 경우 그 행위의 무효를 선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절로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라는 기능이 작동하게 된다. 이것이 삼권분립이 예정한 권력통제 메커니즘인 것이다.

법원은 공사중단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실을 분명히 인지하였지만 이러한 손실은 앞으로 투입될 천문학적인 공사비용 및 방조제 완공으로 인하여 파괴될 새만금갯벌의 생태·경제적 가치와 따져 보면 감수해야 할 손실이라고 보았다. 이번 결정은 법원이 관련 이익들을 충분히 저울질하고서 내린 더없이 성실한 결정이다.
 
박태현 parkhc@kfem.or.kr
공익환경법률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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