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 약속하고 ‘원전안전’ 폐기하는 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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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은 언제나 자신을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강조해왔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해 박 당선인이 전제한 조건은 국민의 안전이었다. 박 당선인의 핵에너지 공약 요지 또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전 관리와 지속가능한 에너지수급 기반 마련’이었다. 그러나 ‘약속’과 ‘안전’을 강조하던 박 당선인은 시작부터 ‘약속’을 저버리고 ‘안전’을 내동댕이쳤다. 

지난 1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시켰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인 2011년 10월 원전 안전규제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직속기구로 독립시켰던 원안위를 다시 과거의 후진적 체제로 돌려버린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강조하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하고 식품의약안전청을 처로 승격시키면서 정작 가장 핵심적으로 국민안전과 직결된 원전사고를 관리 감독할 기구의 위상을 무력화했다.   


원자력 마피아에 원전 안전 정책을 맡긴 박 당선인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력발전 관련 기술을 진흥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한 부처에서 담당해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오랫동안 두 나라에 원자력안전규제기관의 독립을 권고해왔다. 후쿠시마 이후 지난해 6월 일본은 과거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던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환경성위원회로 독립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도 원안위를 독립시켰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원안위의 강화가 아니라 폐기안을 내놓았다. 사실 이는 박 당선인이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를 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위원으로 임명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장 교수는 원자력학회장 출신으로 원안위 강창순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졸업한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수십 년간 원전 관련 정부 주요 직책을 병행하며 국내 원전산업의 확대를 위해 앞장서온 인물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는 “후쿠시마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국내 원자력계의 각종 행사와 토론회 등에서 더 강력한 원자력산업의 확대를 주장해왔다. 이 두 사람은 원자력마피아 수장의 계보를 이어오며 원전정책과 운영, 안전 규제 등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으로 원자력 확대를 추진해왔다. 

원안위마저 강 위원장이 수장 자리를 맡아 형식적인 감독 업무를 해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전 분야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자 이를 골치 아프게 여겨왔다. 원안위 발족 이후 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한편 안전규제에 대한 책임 주체가 분명해지면서 원자력 안전문제가 우리 사회 주요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당선인조차 유럽연합 수준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노후 원전의 안전성 검토를 통해 폐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공약을 내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원자력계는 아예 원안위의 무력화를 통해 원전 안전 문제를 주요한 사회적 이슈로 삼지 못하게 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바로 장 교수가 인수위원에 들어가서 첫 번째 한 일이 바로 원안위 폐기였다.


핵개발 부추기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추진  

박 당선인과 원자력계의 공조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16일 박 당선인은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등 미국 정부 합동 대표단을 만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허용을 위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공식 요청했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미원자력협정은 미국 동의 없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박 당선인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요구는 미국에 의해 무산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개발 계획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은 원전산업 진흥과 함께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가 미국의 반대로 좌절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강 위원장, 장 교수와 같은 이들이야말로 원전산업과 핵개발을 위해 박정희 정권이 집중적으로 육성한 원자력 장학생들의 대표 주자들이다. 게다가 장 교수는 박정희 정권 시절 대한 적십자사 사무총장을 역임한 장우주의 아들로 박정희 키드로 불리는 인수위원이다. 그동안 국내 원자력계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여러 차례 추진되어왔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야망을 접지 않고 있었다. 원자력계를 대표하는 장 교수와 아버지 세대의 2세들과 함께 새 정부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박 당선인이 만나 다시 아버지 계획을 재시도하고 있다. 

원자력계 대표주자 장 교수의 인수위원 임명, 독립기구 원안위 폐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추진 등 일련의 발표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핵에너지 정책은 분명해졌다. 유럽연합 수준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노후 원전의 안전성 검토, 향후 20년간의 전원 믹스를 통해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되면 원전 건설을 재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이 모두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이 드러난 셈이다. 원안위가 폐기된 마당에 노후 원전 안전성 검토의 강화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되면 원전 건설을 재검토하겠다는 것도 애초부터 하나마나한 얘기였다. 나아가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원전 르네상스 정책을 기반으로 더 적극적으로 공고한 원자력국가를 만들어 나가려고 할 것이다.  


독일도 원전 폐기 결정하는 데 35년 걸렸다

박근혜 정부의 핵에너지 정책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우리나라에 원전산업이 시작된 이래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원전 확대정책이 중단된 적은 없으며 이명박 정부 때처럼 보수정권이 집권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원전 정책이 추진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탈핵운동 진영은 정권 교체를 통해 탈원전 사회로의 변화를 바라왔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노후 원전 폐쇄와 신규원전 중단이라는 구체적인 탈핵공약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노후 원전이 있는 부산, 경주는 물론 신규 원전 예정지 삼척과 영덕, 그리고 송전탑 건설 후보지 밀양에서 원전 폐쇄와 중단, 송전탑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부산에서는 고리 원전 1호기 폐쇄하겠다는 신문광고도 실었다. 탈핵진영은 후쿠시마 이후 형성된 새로운 탈핵운동을 통해 비록 탈핵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얻은 것도 많다. 노후원전 폐쇄(79퍼센트)와 원전확대반대(71퍼센트)에 동의하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탈핵운동의 조건도 과거보다 나쁘지 않다. 세계적인 탈원전 흐름과 재생가능한 에너지 산업의 폭발적 성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는 건 없다. 독일도 원전 폐기 결정을 하는 데 35년이 걸렸다. 독일 시민사회는 탈핵운동을 대중화하고 싱크탱크를 만들고 100만 개가 넘는 시민발전소를 만들며 탈원전 사회를 준비해왔다. 한국 탈핵진영도 후쿠시마를 통해 만들어진 탈원전 운동의 힘을 바탕으로 현장을 지키고 시민들과 함께 시민발전소를 만들고 대안을 만드는 실력을 쌓아가면서 탈원전 사회를 준비하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8년 동안이나 산을 오르내리며 송전탑 반대운동을 해온 밀양 주민들이 대선이후 가슴으로 쓴 피켓 문구에 그 답이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바람이 어디로 불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겠다”.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회 위원장 kimhj@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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