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발전? 우리 마을에 와서 한 번 살아봐!”

월성 핵발전소 단지 옆에 자리한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들이 흉가처럼 남아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준공을 앞둔 거대한 체육관이 작은 마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방사능 오염으로 공사가 멈췄지만, 만일 오염이 발생하지 않아서 준공했더라도 골칫덩이였을 것이다. 시골 마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체육관이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서 목격한 체육관은 도쿄전력이 주민 복지 사업으로 건설 중이었다.
 
2011년 4월, 후쿠시마의 시골 마을에서 거대한 체육관을 발견했을 때 우리 지역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어어어, 경주에도 있는데. 월성원전 주변 마을에 한수원이 건설한 큰 건물들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은 핵발전소 주변의 작은 마을에 대형 건축물이 들어선 것도 똑 닮아 있었다. 체육관, 목욕탕, 마을회관 등 다양한 이름표를 달고 있는 대형 건축물은 기실 핵산업계를 위한 것이다. 주민을 위한 시설이라면 주제넘은 큰 덩치가 아니라, 주민이 이용하고 관리하기 편리한 아담한 건물이면 충분하다. 작은 마을의 거대한 건축물들은 핵산업계의 대형 확성기였다. 
“원전 주변 마을은 이렇게 잘산다.” “주민과 상생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주민들의 선택

 
월성 핵발전소 옆에 사는 한  주민의 집 바로 옆은 제한구역 으로 농사가 금지된 구역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4년 전 늦가을, 그러니까 2015년 10월에서 11월 사이였다. 황분희 어머니는 경주에서 영덕까지 몇 차례 먼 길을 나섰다. 당시, 영덕군은 신규 핵발전소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한수원은 영덕에 사무실을 꾸리고 핵발전소 건설이 영덕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긴다고 떠들썩하게 홍보했다. 어머니는 작은 힘이지만 거짓 홍보에 속지 말라고 영덕 주민들에게 얘기하고 싶어서 몇 번이고 영덕을 찾아갔다.
 
한 번은 황분희 어머니가 마을회관에 모여 있는 주민들에게 일장 연설할 기회가 주어졌다. 어머니는 양남면 나아리에 살고 계신다. 마을 가까운 곳에 6기의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이 있다. “핵발전소 때문에 영덕이 획기적으로 발전한다면, 30년 넘게 핵발전소하고 같이 살아온 우리 마을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사는 마을이 돼야 하는데, 한 번 우리 마을에 와보소.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한 번 와보고 투표하소. 핵발전소 받아들이면 절대로 아니 됩니더”라고 외치는 어머니의 열변은 나 같은 반핵 활동가들의 백 마디 설명보다 나았다.
 
그해 11월 11일~12일, 이틀간 치러진 영덕군민 주민 투표에 1만1209명이 참여했다. 결과는 핵발전소 유치 반대에 91.7퍼센트의 몰표가 나왔다.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영덕 주민의 압도적 승리였다. 정부와 영덕군과 한수원은 주민 투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한수원의 지역발전, 경제발전 사탕발림이 영덕에서 허물어졌다. 영덕대게와 송이버섯 등으로 유명한 영덕 주민은 핵발전소 없는 발전 전략을 선택했다. 주민 투표 업무를 지원하면서 월성원전을 다녀간 영덕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 말씀이 “경주 바닷가 마을에 가보니 우리보다 못 살 데, 잘 산다고 하더니만 영덕이 훨씬 좋아~ ”였다.
 

혹세무민 토론회

 
그랬다. 당시 내가 둘러본 영덕의 항구들이 경주보다 훨씬 활기찼다. 특히, 월성원전이 있는 나아리 마을의 형편은 말이 아니다. 마을 중심의 상가들은 빈 점포가 다수를 차지한다. 신월성원전과 핵폐기장 건설 때 반짝 특수를 누리던 유흥업소들이 건설 이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유리창은 깨지고 먼지가 쌓여 덩그러니 버러진 점포들은 때론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자아낸다. 그리고 마을에 남겨진 주민들은 더욱 핵발전소에 목을 매게 되었다. 보수 언론은 이러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악용해서 핵발전 찬가를 생산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작년 7월 지역 방송사의 토론회에 출연한 적이 있다. 주제가 “원전 폐쇄, 지역 파장은?”이었는데 상대 토론자의 주장이 가관이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경북의 원전 관련 일자리가 연간 1200만 개 없어지고 10조 원의 손실액이 생겼다는 것이다. 경북 도지사에게 정책을 자문하던 토론자의 입에서 거짓 선동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10조 원의 손실이 사실이면 울진, 영덕, 경주의 주민들은 이제 길거리에 나앉을 일만 남았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들의 방식으로 계산하면 영세사업장인 경주환경운동연합도 연간 73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뻥튀기 지원금

 
작년 6월 15일, 한수원은 이사회에서 월성1호기 폐쇄를 결정했다. 이후 경주시는 월성1호기 손실액 보상을 요구하면서 연일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경주시의 주장에 따르면, 432억 원의 세수 손실이 발생한다. 법정지원금은 발전량 1kW당 0.5원, 지역자원시설세는 발전량 1kW당 1원이 발생한다.
 
 
그러나 경주시의 계산은 사실과 다르다. 경주시는 월성1호기의 가동률을 90퍼센트로 계산해서 미래의 세수 손실을 뽑았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월성1호기의 평균 가동률은 38.7퍼센트에 불과했다. 가동이 중단된 해를 제외해도 평균 가동률은 57.4퍼센트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월성1호기는 수명을 연장한 노후핵발전소이고 2016년 9월 12일 규모 5.8의 지진 이후에 계속 땅이 흔들리고 있다. 월성1호기 폐쇄는 올바른 정책이다.
 
경주시가 월성1호기 손실액을 과다하게 부풀린 면이 많으나, 변방의 농어촌 도시에 핵발전소를 6기씩 가동하면 지방 정부는 꽤 많은 세수를 거둔다. 그러나 국영기업인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세금 수입이 증가할수록 정부의 지원은 보이지 않게 줄어든다. 다른 도시가 정부 예산으로 상하수도 관로를 교체할 때 경주시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돈으로 상하수도 관로를 교체한다. 그리고 핵발전소를 받아들이는 순간 다른 발전 가능성을 희생해야 하므로 영덕군민의 핵발전소 반대 결정은 매우 현명했다. 
 
핵발전소 덕분에 경주 시민의 삶이 윤택해졌다면 2005년 핵폐기장 유치 당시 27만7천 명이던 인구가 현재 25만6천 명으로 감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최근 부동산의 공시지가를 많이 올렸다. 전국 평균 9.4퍼센트, 경북 평균 6.84퍼센트, 경주 평균 6.51퍼센트 상승했다. 땅값 상승이 좋은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상승률을 어떻게 봐야 할까? 
 

수용소의 황분희

 
이제 6년째로 접어든다. 양남면 나아리의 주민들이 월성원전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날짜가 2014년 8월 25일이다.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이곳 마을도 노인들이 많다. 평생을 들판과 바다에서 삶을 일궈온 노인들이 고향을 등지겠다고 이주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렇지만 이주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핵발전소 주변에서 더는 살아갈 희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분희 어머니는 나아리 마을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소변 검사를 했더니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의 몸속에서 어른보다 더 많은 방사능이 검출됐다. 어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방사능 없는 안전한 곳으로 이사 가길 염원하며 천막농성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어머니는 말한다. “여기는 수용소지요. 수용소! 이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방사능을 계속 맞으면서 살아야 해요!” 어디 방사능뿐이겠는가? 월성원전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을 것이다. 지난번 지진으로 집채가 흔들릴 때는 누구보다 공포가 엄습했을 것이다. 
 
핵발전소 주변에 산다는 건 천형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집과 논밭을 팔고 이사를 하고 싶어도 부동산 거래가 일절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발목 잡혀 떠날 수 없는 곳. 감히 어느 누가 핵발전소 때문에 잘 먹고 잘산다고 함부로 말하는가! “우리 마을에 와서 한번 살아봐!” 끝없는 외침이다.
 
김진선 씨는 월성핵발전소 바로 옆에 산다. 발전소가 들어설 때마다 지역이  발전할 것이란 한수원의 말을 믿고 집을 새로 지어 임대를 시작했지만 들어오겠 다는 이는 없다. 그의 집뿐만 아니라 마을에 사람보기도 힘들다는 그는 마을을  떠나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아 떠날 수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글 /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