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부안사태 교훈 잊었나? _ 양이원영




산자부, 유치공모도 자기 입맛대로?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는 이번에 새로 공고한 핵폐기장 부지선정방식이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성을 확보한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지난 18년간 늘 반복돼 온, 돈을 앞세운 부지선정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으로는 지역민들이 핵폐기장 부지 청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관련 절차를 더욱 완화했다.

한때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가 핵폐기장 추진 주무 부서였던 1994년 당시, 과기부는 굴업도에 핵폐기장 부지를 지정해 핵폐기장을 건설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그 업무가 산자부로 이관되자 산자부는 2000년에 또다시 핵폐기장 부지선정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당시에도 겉보기에는 절차상 자율공모방식으로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자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듯 했다. 그러나 굴업도 추진 당시 지역지원금을 500억원에서 2127억원으로 올리는 등 핵폐기장 유치에 혈안이 돼 있던 산자부는 신청하는 지자체가 없자 공모시기를 연장하면서까지, 지역지원금을 2929억원으로 상향조정하면서까지 일을 벌였다.

정부, 유치청원 기준 낮춘 진짜 속내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은 지난해 부안반핵항쟁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바 있다. “향후 유치청원은 주민 2분의 1 이상의 서명을 근거로 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다시 정부가 핵폐기장 유치청원을 받으면서 윤 전 장관이 언급한 기준은 3분의 1로 줄었고 더구나 그 단위도 군 단위가 아닌 읍과 면으로 축소됐다. 한 읍과 면의 유권자 가운데 작게는 200여명의 서명만 받아도 유치청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입법청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청원은 10분의 1 이상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3분의 1로 그 기준을 높였다”고 밝히고, 청원의 효력을 발생시키는 자치단체장의 신청, 자치단체 의회의 신청, 유치청원을 통한 주민의 신청 가운데 주민의 신청을 선택한 것도 가장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는 방식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유치청원이야 실제 부지가 될 읍과 면 지역 유권자의 3분의 1로 가능하지만, 정작 핵폐기장을 ‘받느냐 마는냐’를 결정하는 것은 군 이상 행정단위 유권자의 2분의 1 이상을 얻어야 가능하므로 절차와 민의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볼 때 ‘후퇴’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반핵운동을 주도하는 주민대책위와 활동가들은 정부가 유치청원 기준을 낮추어 다수의 지자체로 하여금 경쟁시켜 국민 여론에 영향을 주려는 계산이 있지 않은가 의심하고 있다. 더구나 이는 한 기관에서 하나의 사업을 두고 펼친 ‘일구이언’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산자부는 현재의 11개 유치청원 지역 외에 삼척을 유력한 후보지로 생각하고 삼척의 유치청원 그룹들과 의사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박현철 기자 parkhc@kfem.or.kr
게다가 당시에 산자부는 해당 지자체의 유권자 절반 이상의 서명을 확보하도록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이하 한수원)에 지시해 할당된 서명을 채우도록 서명을 매수하거나 거짓 주민번호를 도용하는 등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당 지자체가 아닌 해당 지자체의 읍·면·동 유권자의 3분의 1만 채우면 되도록 그 규정이 완화됐다. 결국 전체 4만8천여 명의 유권자가 있는 완도군의 경우 생일면 유서리의 유권자 973명 중 356명의 청원자가 서명함으로써 유치청원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게다가 핵폐기장이 추진되는 지역의 건설업자에게 수의계약이 약속되면서 지역의 건설업자가 앞장서서 서명을 모으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정부가 핵폐기장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그 안전성이 최우선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지원금을 놓고 이를 미끼로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핵폐기물을 꺼진 연탄재와 멈춘 자동차에 비교하는 등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나서서 막아야 할 정부가 이러한 폐단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지역지원금을 통한 지역 개발만을 강조해 핵폐기장이 건설되면 그 지역은 잘 살게 될 거라고 현금보상설로 괜한 허상만 심어주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청원한 각 지역마다 현금보상설과 부채탕감설이 또다시 등장해 지역 주민들에게 헛된 바람만 불어넣었다.

전력공급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핵폐기물은 화학적 독성이 강하다는 청산가리와 다이옥신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위험한 것으로 취급된다. 핵폐기물질과 같은 방사성물질은 인공적으로 원자 내부의 핵을 분열시킴으로써 주변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방사선을 내뿜는다. 그 때문에 핵폐기물은 다루기가 극히 힘들다.

핵폐기물을 최소한 300년에서 수십 만년간 주변과 격리시켜 안전하게 보관하자면 해당 부지의 지질학적 안전성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더구나 처리할 수 없고 미래세대에 위험만 전가하는 핵폐기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전력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부안 주민들이 핵폐기장 건설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지역이기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체 전기의 40퍼센트 이상을 수도권에서 쓰고 있다. 인구 7만도 되지 않는 지역 주민들이 핵폐기물을 받지 않는다고 지역이기주의라고 몰아세운다면 형평성과 환경정의 차원에서 크게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핵발전소를 통해 전기를 쓴 모든 국민들이, 특히 그에 대한 혜택을 많이 받은 수도권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핵폐기물을 포함한 전력공급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2000년 이후 정부의 핵폐기장 추진 정책변화

· 2000년 6월~2001년 2월 : 산자부, 지역지원금 500억원에서 2127억원으로 상향조정 후 핵폐기장 유치공모, 청원 지역 한 곳도 없음.
· 2001년 6월 : 산자부, 공모시기를 6월말로 연장하면서 지역지원금을 2929억원으로 올림. 또 산자부, 지자체 유권자 과반수 이상 서명 받으라고 한수원에 지시해 유치위원들이 각 지역에서 물의를 일으킴. 7곳에서 서명을 통한 청원이 들어왔으나 신청 지자체 없음.
· 2001년 7월 : 산자부, 핵폐기장 추진을 사업자 주도방식으로 전환 결정함.
· 2001년 12월∼2002년 8월 : 산자부, 종합건축사무소인 동명기술공단에 용역 의뢰해 후보지 결정.
· 2003년 2월 4일 : 영광, 고창, 울진, 영덕 4곳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결정 발표함.
· 2003년 6월 27일 : 산자부, 유치공모안을 재공고해서 7월 15일까지 지자체장 신청 받기로 함. 지방의회 의결 부분을 삭제함.
· 2003년 7월 14일 : 부안군수, 부안군의회 부결에도 불구하고 핵폐기장 부지 신청함.
· 2004년 2월 11일 : 산자부, 부안을 예비신청 단계로 하고 핵폐기장 유치 공모안 공고함. 읍·면·동 3분의 1의 서명만 받으면 유치청원 가능하게 함. 주민유치청원 없어도 지방의회에서 의결을 통해 신청 가능하게 함.


핵폐기물 문제의 근본은 핵발전소에 있다. 정부와 한수원이 계획한 것처럼 핵발전소를 확대해 나가다 보면 핵폐기장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게다가 원료인 우라늄은 30∼50년이면 고갈되고 만다.

정부가 세운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15년까지 현재 핵발전소 양을 두 배로 늘리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리하지 못할 핵폐기물의 양이 계속 증가하는 계획을 고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계획에 의하면 2012년에 전력 예비율이 42.5퍼센트에 달해 발전소 절반이 불필요해진다. 권장하는 예비율은 15퍼센트 정도이므로 한번 가동하면 가동을 멈출 수 없는 핵발전소와 같은 대형 발전소의 건설은 사실상 건설할 필요가 없는데도 정부는 핵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해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핵발전소를 확대하는 현 정책을 바꿀 방법과 대안은 계속 나오고 있다. 문제는 상생 정치를 천명한 노무현 정부가 한낱 이익집단에 불과한 한수원에 휘둘려 핵폐기물 포화설이나 핵발전소가 필요악이라는 주장을 믿고 국민을 뒷전으로 미루면서 부안사태의 교훈을 쉽게 잊었다는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결국에 정부의 핵폐기장 정책을 실패로 이끌어 다시 한번 엄히 가르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희생하는 민초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양이원영 yangwy@kfem.or.kr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 부장


핵폐기장 유치청원 이후 각 지역은

전북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김종건 핵폐기장·핵발전소 추방을 위한 범고창군민대책위원회 집행위 차장

지난 5월, 광승리 이장과 몇몇 어민들이 핵폐기장 부지선정에 대한 청원을 산자부에 제출했다. 현재 유치청원한 광승리는 조용한 분위기지만 부안사태를 직접 목도한 고창군민들은 한쪽 지역이 살자고 전체를 죽일 수 없다며 분노하고 있다. 게다가 어업피해보상과 지역개발을 미끼로 꼬드긴 한수원 직원의 비도덕적 행위를 질타하고 있다. 또한 물밑작업으로 여전히 해리면을 들쑤시고 다니는 한수원 직원들 때문에 주민간 갈등이 생기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기성면 삼산리·북면 고목리
이규봉 울진반핵연대 대표

울진은 현재 산포리, 삼산리, 고목리 주민들이 핵폐기장 유치청원을 낸 상태이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울진군에서는 군수 및 의회가 9월 15일까지 신청하기로 돼 있는 예비신청을 하지 않기로 군의회를 통해 정식 결의하고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한 이를 알리는 공문을 정부와 산자부, 과기부, 행자부, 한수원 등 5개 기관에 보내 입장을 천명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울진 지역에 여전히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유치하기 위해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자금을 써 가며 개발업자들에게는 개발사업권을, 주민들에게는 금품을 살포하며 종용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울진발전포럼을 만들어 물밑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등 주민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어 분노를 사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김동열 삼척시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삼척은 주민들과 대책위의 완강한 반대로 핵폐기장 유치론자들이 서명작업을 하지 못해 유치청원지역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원덕 지역의 일부 유치론자들은 여전히 핵폐기장을 유치하기 위해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이후에도 청원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삼척은 핵폐기장 유치위원회와 반대 대책위가 논의를 통해 청원하지 말 것을 서로 합의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자체장이나 의회의 의결로 단독 신청할 경우 상황이 달라져 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전북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
이현민 핵폐기장 백지화·핵발전소 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 정책실장

부안 주민들의 의지는 단호하다. 정부가 아직까지 예비신청 지역으로 부안을 지목하고 있지만 결코 부안 땅에 핵폐기장이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 부안 주민들의 굳은 생각이다. 부안 주민들은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해 여전히 목요일마다 촛불 집회를 열고 석달 가까이 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현재 부안 주민들은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핵폐기장 유치 추진 일정이 또다른 부안사태를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부안 민주광장에서 오는 7월 9일 전북도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백지훈 기자 backjh@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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