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뜻새뜻 03] 한국에서 ‘원자력’이 ‘핵’을 터부로 만든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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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원자력’이 ‘핵’을 터부로 만든 유래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우라늄을 이용하는 전력생산방식에 대해 현재 우리나라가 정한 공식적인 명칭은 원자력발전(Atomic Power Plant)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원자력이 아니라 핵을 뜻하는 ‘Nuclear’를 써서 Nuclear Power Plant라고 한다. 왜 우린 일반적 언어관행을 떠나 핵발전 대신 원자력발전이라고 쓸까?

1975년 20년간의 베트남 전쟁이 남베트남에서 미군 철수로 끝났다. 베트남 파병까지 하며 이 전쟁에 몰입했던 박정희 정권에게 베트남 전쟁은 일종의 유사체험이었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한반도 유사시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국들의 참전을 보장하는 계약의 ‘선불금’과 같은 의미였다. 미국에게 버려지는 베트남의 운명을 보니 ‘계약금 낸 정도’로는 불안했다. 

박정희정권은 한국이 버려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담보물, 유사시 최강의 방어전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도 미국이 포기하지 않는 나라가 되기 위한 한국의 이중 방어책은 핵무기 보유라고 박정희정권은 생각했다. 1974년부터 한국은 ‘890’이라는 핵무기 개발사업을 시작했다. 

재외 한국인 과학자들의 애국입국을 기획해 연구단을 꾸리고, 캐나다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경수로형보다 더 쉽게 추출할 수 있는 중수로형 핵발전 플랜트를 수입했다. 월성의 핵발전소가 그것이다. 벨기에로부터는 핵폐기물을 가공해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핵재처리시설도 수입하려 했다. 이 시도는 미국의 반대로 좌절됐다. 1976년 초 한국은 핵재처리시설 수입협상을 중단했다. 그해 말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모두 폐지됐다. 미국은 대신 한미 군사훈련 수준을 한층 높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만들어 한국의 안보불안증을 달랬다.

그런데 한국의 안보불안증을 자극하는 충격파가 시작됐다. 지미 카터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한반도 미군의 철군이 시작된 것이다. 핵무기 개발은 재추진됐다. 1978년 박정희정권은 프랑스로부터 핵재처리시설 수입을 비밀리에 시도했다. 그러나 그 또한 미국의 탐지에 걸려 다시 좌절했다. 박정희정권은 미군과 안보기관을 공략했다. 미국은 1979년 5월 주한미군 철수를 백지화했다. 금 간 군사적 신뢰 상황에서 ‘신의 창’에 대한 박정희정권의 의지가 어떤 식으로 지속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박정희는 그해 10월 26일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피살됐다. 그전 몇 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미국의 유신체제 비판이 이어지고 있었다.

박정희정권을 대리해 등장한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은 부족한 정통성을 감출 미국이라는 최대 우방의 승인이 필요했다. 미국의 요구 가운데 하나는 ‘핵무기 포기’였다. 신군부는 재래식 전력의 압도적 우위와 이를 입증할 미군의 성의 표시를 요구했다.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신군부는 이후 10년 넘게 한국의 통치자였고 미군은 재래식 무기를 한국에 안정적으로 수출할 수 있었다.

신군부는 집권과 동시에 박정희정권 때 만든 핵주기 상의 주요 공정 연구과 실행집단인 <한국핵연료개발공단>과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한국에너지연구소>로 개명했고, <한국핵연료주식회사>를 <한국원자력연료주식회사>로 바꿨다. 이후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핵을 핵이라고 부르는 모든 언명이 사라지고 ‘원자력’이 사용됐다. 이러한 언어 바꿔치기의 효과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사이비 신화를 강조하여 세계1위의 핵발전밀도 국가, 전력소비 대국 한국을 낳는 프레임을 구축하는 데 이용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면 사단이 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운운하는 기만적 말장난을 허물어야 ‘탈핵의 프레임’도 살아난다. 원자력발전이 아니고 핵발전이다. 핵발전의 아비가 핵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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